“그래? 정말 잘됐구나. 축하한다!”
구금자가 이렇게 아들 청아의 고중때 동창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최윤희가 슬며시 강현수의 팔을 당기며 동창들과 조금 사이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간다.
“저 구금자와 반장네 아들은 지금 상해교통대학에서 석사공부를 하고 있지요?”
“그걸 윤희도 알고 있었어?”
“오늘 아침, 구금자 한테서 들었어요.”
최윤희는 대학시절부터 유일하게 강현수와는 이처럼 마음을 열고 허물없이 속심말을 터놓는 친구로 지냈었다. 그것은 강현수가 언젠가 전반 동창생들 앞에서 자기의 부친은 문화대혁명때 현행반혁명분자가 되여 수쇄를 차고 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려준후부터였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잔뼈를 굳혀오며 농사지을줄밖에 모르던 강현수의 아버지는 모주석을 신처럼 모시던 문화대혁명때 어느 날 현성에 있는 백화상점에 가서 책상우에 올려놓고 모시는 모주석 석고상을 사게 되였다. 강현수의 부친은 당시 돈으로 5원이나 주고 상반신으로 된 모주석 석고상을 사서 장알 박힌 손에 정히 받쳐들고 백화상점에서 나오게 되였는데 그 상점의 큰 출입문을 열며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덤벼치며 밖에서 뛰여들어오던 어떤 젊은이와 마주 부딪쳐 그만 손에 들고있던 석고상이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뚝 떨어졌다. 단통 모주석은 머리와 몸체가 두동강 났다. 그러자 무식한 실농군인 강현수의 아버지는 너무나 아까운걸 벼렸다는 생각에 무의식중에 발로 동강난 모주석의 머리를 찼던것이다. 어쩌면 위대한 모주석의 머리를 발로 차다니? 바로 그렇게 천추에 용서못할 큰 죄를 저질러 당장에서 체포되여 수쇄를 차고 감옥으로 끌려갔던것이다...
“호- 저 금자와 반장네 아들은 머리가 비상한가 보지요. 좋은 대학을 간걸보니...”
“좋은 대학이란게 뭐요. 금자는 지금 겉으로는 저렇게 아들 동창생들 앞에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어도 속으로는 눈물을 떨구고 있을거요.”
“그건 왜요?”
“말할라면 길지...
일호와 금자네 그 청아라는 외동아들은 어릴때부터 참 총명한 아이였어. 세살될 때 벌써 아버지가 원고지 네모칸 안에다 글을 한자한자 써넣는걸 보고 만년필을 쥐고 원고지 네모칸에다 점을 하나씩 찍었는데 한권에 백장씩 되는 원고지 여섯권에다 몽땅 점을 찍어놨다는 그런 애요. 그렇게 자라난 애가 초중에서 고중으로 올라 갈땐 전 할빈시에서 1등으로 할빈 3중에 붙었다니까. 할빈 3중이라면 어느만큼 대단한 학교인가 하면 우리 흑룡강성에서 청화대학, 북경대학으로 가는 학생이 해마다 각각 백여명쯤 되는데 이 한 학교에서만 절반씩 나온단 말이요... 그런데 저 집에 큰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 애는 공부에 열중하지 않아 자기 보다 훨씬 뒤에 섰던 아이들도 청화대학, 북경대학에 척척 붙는데 겨우 상해교통대학밖에 가지 못했단 말이오...”
“아니, 금자와 반장네 집에 큰일이 생겼댔다니? 그건 대체 무슨 일인가요?”
두 눈이 동그래진 최윤희는 강현수의 팔을 당기며 점점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간다. 백일호네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궁금해나는 최윤희다.
“이건 절대 입밖에 낼수가 없는 말이오. 차차 조용한 기회가 생기면 윤희한테 말해주지.”
“아니, 현수는 저를 그렇게 못 믿어요? 제가 그렇게 말이 헤픈 녀자던가요?”
최윤희는 기색이 심각해지는 강현수가 한사코 도리머리를 저을수록 점점 더 강렬한 충동이 생겨 끈질기게 강현수를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이 일은 진짜 윤희 혼자만 딱 알아야 하오! 혹시 백일호나 구금자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날이면 내라는 인간은 그들 부부한테서 너절한 양아치로 버림받게 될거요. 아니, 눈에 쌍불을 켜고 날 죽이자고 덤빌런지도 모를 일이요.”
“그렇게 무서운 일인가요?”
“그렇다니까.”
강현수는 경계하는 눈길로 주위를 한바퀴 살펴보고는 최윤희에게 목소리를 낮추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일호와 구금자의 아들 청아가 고중 2학년 후학기를 다닐 때 일어난 일이다.
당시 백일호는 영국옥스퍼드대학에 가서 공부하고 있을때였는데 어느 휴일 날 할빈 3중 학생숙사에 통일로 기숙을 하고 있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모자가 마주앉아 저녁을 먹다가 청아가 갑자기 어머니에게 엉뚱한 질문을 들이댄다.
“어머니, 어머니의 피는 무슨 형인가요?”
“내 피는 O형이야.”
“그럼 아버지는요?”
“네 아버지 피형도 엄마와 꼭 같은 O형이지.”
“그럼 저의 피는 왜 O형이 아닌가요?”
“그게 무슨 소리냐?”
“어제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체검사를 했는데 저의 피는 A형이라고 해요.”
“어? 방금 뭐라고 했어? A형이라구?”
“예!”
구금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하얀 백지로 변했다. 부모의 피형이 모두 O형이라면 자녀의 피형도 무조건 O형으로만 될수있을뿐 다른 피형은 절대 나올수 없다는걸 구금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놀라는 기색을 보이자 아들 청아도 두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구금자는 아들에게 침착한 자세를 보이려고 애썼다.
“호-그건 틀림없는 오진일거야. 너희 학교에 와서 신체검사를 했다는 그 돌팔이 의사들의 차실로 너의 혈형과 어느 다른 학생의 혈형이 바뀌여 졌겠구나.”
구금자는 밥이 모래알 같아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상을 물리자 바람으로 자기 침실로 들어간 구금자는 급급히 남편 백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금자는 남편에게 방금들은 청아의 피형 얘길 그대로 전하고 과연 청아의 피형이 A형인 날이면 세상에 이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또 어데 있겠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청천벽력이였다. 뜻밖에도 집에서 날아오는 그런 놀라운 전화를 받은 백일호 역시 가슴은 천근 바위가 누르는것마냥 무거워지며 숨이 콱콱 막혔다. 피형 검사는 어느 의사를 막론하고 아주 신중하게 대하는 일이므로 오진했을 확률은 거의 없을것이라고 봐야 했기때문이였다.
“피형이야 어찌됐던 청아는 우리 두 사람의 목숨보다 귀중한 아들이 아니오?! 그러니깐 절대 피형 말은 더 입밖에 꺼내지 않는게 좋겠소. 그리고 당신도 더는 그 생각을 하지 마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질것이고 생각을 단념하면 모든 질서가 옛날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거요... 하긴 이 일은 언제 터지던 꼭 터지게 될 일이니 그냥 이대로 덮어 둘수만은 없을것 같소. 그러니 나도 여기에서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며 차근차근 대비책을 연구해 보겠소...”
수만리 밖에서 들려오는 남편 백일호의 말이였다.
안해 구금자는 기둥 같은 남편이 부드럽게 안위해주는 전화를 받고도 놀란 새처럼 가슴이 할딱거렸다. 불길한 징조가 날카로운 쇠발톱으로 변하여 여린 가슴벽을 폭폭 후비는것만 같았다.
(청아의 피형이 A형이라? 그렇다면 19년전 병원에서 해산할 때 다른 아이와 바뀌운것이 아닌가?)
실로 악몽같은 무서운 그림자들이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가끔가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운 사실들이 텔레비젼 뉴스에 나올 때도 남의 일이지만 너무 기가 차서 혀를 끌끌 찼던 구금자였는데 그런 날벼락이 자기 몸에 떨어지다니 혹시 무서운 악몽이 아닐가 싶어서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도 본다.
(이럴수가 없어! 절대 안돼!!...)
구금자는 피터져라 입술을 꼭 깨물었다.
(혹시 내 배속에서 떨어진 친 혈육이 이 세상 그 어디에서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운명은 그 애를 19년전에 벌써 남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19년간 몸과 마음을 송두리채 몰부으며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아들은 오직 청아뿐이야. 그러니 우리 청아, 백청아만이 내 아들이고 내 혈육인거야!)
구금자는 꼭 쥔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스스로에 침을 놓고 또 귀띔했다.
그녀는 남편의 주장을 따르기로 마음 잡고 그저 하루 빨리 남편한테서 신통한 방책이 나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아들 청아가 준비 없는 부모의 뒤통수를 급작스레 후려칠줄은 백일호도 구금자도 천만 뜻밖이였다.
그 일이 있은지 두달후, 구금자는 학부모회의를 한다는 청아 담임선생의 통지를 받고 할빈 3중으로 가게 되였다. 그때는 고중 2학년 후학기 기말시험을 치고 여름방학을 눈앞에 둔 림박이였다. 그런데 청아가 다니는 고중 2학년 리과 3반의 담임선생이 학부모회의 시간을 몇분 앞두고 구금자를 조용히 부르는것이였다.
“백청아 부친이 몹시 편치 않다고 하던데 병이 좀 호전되였어요?”
“아니, 우리 청아 아버진 지금 영국에 있는데 몸이 편치 않다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담임선생의 엉뚱한 물음에 구금자는 갑자기 전기라도 대인듯이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잡아 묻자 담임선생이 하는 말이 청아는 간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병호리를 한다며 두달간 거의 수업을 포기하고 줄 병원으로만 뛰여다녔다는것이다. 그래서 학습성적도 반에서 줄곧 1~2등을 다투던 애가 이번기말 시험엔 18등으로 형편없이 곤두박질 쳤다는것이다.
순간, 구금자는 눈앞이 아찔해 났다. 청아는 휴일마다 꼭꼭 집으로 돌아와 세끼 밥을 먹고는 자기 방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를 했었다. 그러니 두달간 청아는 학교도 속이고 부모의 눈도 감쪽같이 속여왔던것이다.
구금자는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영국에 있는 남편 백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백일호는 그 이튿날로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서 할빈으로 날아왔다.
백일호가 돌아오자 구금자는 청아를 집으로 불러 세식구가 조용히 앉았다.
“이 두달 사이, 청아 넌 생부, 생모를 찾아다녔구나.”
백일호가 입을 연다.
“네가 그렇게 한건 절대 잘못이 아니다. 내라고 해도 나를 낳아준 부모가 만약 다른 사람인줄 알게 되면 그 사람들을 찾으려고 노력했을거다. 다만, 그렇다면 정정당당하게 아버지, 어머니에게 알리고 떳떳하게 찾았어야 더 명지한 행실이였다는것이다.”
백일호는 엄숙하게 이젠 머리가 다 큰 아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용서해 주십시오!”
오래동안 침묵을 지키던 청아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방금 너의 아버지도 잘못한 일은 아니라고 하지 않았니...”
구금자는 기가 푹 죽은 아들이 더없이 안스러워 청아의 등을 쓰다듬어준다.
“그래 친부모는 찾았느냐? 그것부터 궁금하구나.”
백일호가 이렇게 묻자 청아는 구김없이 사실 경과를 솔직히 부모님께 털어놓는다...
머리가 비상한 청아는 어머니가 할빈 남강구 ‘부산병원’에서 아침 9시에 자기를 낳았다고 어릴 때 들려주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강구 ‘부산병원’을 찾아가 자기의 출생 년월일을 밝히면서 그때 당시 이 병원에서 어린애가 몇이 출생했는가를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저런 교묘한 수단을 써서 마침내 병원 당안고에 보존하고 있는 그 당시 기록부를 찾아볼수 있게 되였다. 그 기록부에는 당시 출생한 애는 남자애 둘, 녀자애 둘이였는데 한 남자애의 부모이름은 ‘백일호, 구금자’였고 다른 한 남자애 부모의 이름은 ‘진명개, 왕려홍’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다면 진명개와 왕려홍이가 틀림없이 자기의 생부, 생모일것이라고 청아는 판단했다. 그래서 이런 이름을 가지고 시공안국을 찾았는데 공안국에서 아무런 증명도 없이 찾아온 한 고중학생의 요구를 들어줄리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