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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군-연구발명에서 제2의 인생길 개척
http://hljxinwen.dbw.cn   2008-12-18 09:06:38
 
 

  ——— '조합식 항진 에너지절약주택' 발명자 신창군씨의 사업실적

  흑룡강신문=하얼빈 2008.10.30

언제면 시간대에 관계없이 지진이 갑작스레 발생해도 생명피해를 최대한 줄일수 있을가? 이는 인류 공동의 념원이다. 특히 이번 '5.12'사천대지진으로 수만명의 생명이 목숨을 빼앗기고 수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빚어낸 시점에서 이같은 념원은 더욱 간절해졌다. 하지만 이제 멀게만 느껴졌던 념원이 이루어질 그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앞으로 항거할수 없는 자연재해로부터 인류를 지켜줄수 있는 '조합식 항진 에너지절약주택'이 연구 및 설계에 성공, 중국지진국공정력학연구소의 실험검측 및 통과단계를 거쳐 이제 시장에 투입되여 일반주택에 보급시키는 일만 남았다. 특히 '조합식 항진 에너지절약주택'의 전반 연구(설계는 다른분이 책임졌음)를 독립적으로 완성하고  통과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약 3년간 수많은 심혈을 기울려온 분이 조선족이라는 면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분이 바로 흑룡강성 오상시 출신인 신창군씨(68세)이다.

  신창군씨는 1959년 19세때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군하였고 5년뒤 길림성 영길현 마호촌 당지부 부서기, 1968년에는 흑룡강성 오상시 민락향 홍화촌 당지부서기직을 맡았으며 1973년~1993년까지는 오상시 민락향기업 공장장, 할빈창녕급수설비공장 부공장장, 길림성 연길시급수설비공장 공장장, 료녕성 대련시급수설비공장 공장장으로 20년간 급수설비 관련사업에 종사해 오면서 장악한 정보, 기술을 기초로 1994년부터는  대련시삼우물설비유한회사를 세워 자기회사를 경영하게 되였다.

  겉보기에 화려한 경력, 하지만 자기회사를 세우기까지의 사업도로는 순풍에 돛단배처럼 순조로운것만은 아니였다. 1973년, 오상시 민락향기계설비공장(향 기업)에서 공장장직을 맡은 당시 실리콘정류전기용접기를 생산하여 통화강철회사, 안강강철회사 등 전국의 큰 강철회사로 제품을 판매하면서 달 300만원의 수입을 창출하게 되였고 회사운영도 날개를 단것처럼 순조롭게 움직이는듯 싶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당시 회사는 수입이 많다는 리유로 '자본주의로선'에 걸리게 되였고 공장장인 신창군씨도 자칫하면 감옥살이를 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향과 현 령도들의 수차 교섭과 설복하에 결국 벌금 15만원을 부과하는것으로 일을 마무리 하게 되였고 그 뒤로 몇년간은 로임을 챙겨줄정도로 근근히 회사를 운영했다. 이때 신창군씨는 인생길에서 처음으로 큰 좌절을 당하게 되였다. 그리고 1987년, 연길시급수설비공장에서 공장장직을 맡았을 때 당시 계약회사에서 계약분쟁(당시 개인은 계약을 할수 없었음. 신창군씨는 민락향과 계약하고 민락향에서 연길시와 계약했음.), 탐오죄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꼬집어 내는 바람에 3년간 힘들게 회사를 운영해왔지만 결국 상응한 보수를 받을수 없게 되였다.

 

7개월의 조사결과 신창군씨는 경제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것이 증명되였지만 계약상으로는 일정한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였기때문이다. 이렇게 소송을 하는 과정에 심신이 극도로 지친 신창군씨에게는 또 다른 가슴아픈 일이 일어날줄이야! 병환에 있던 안해가 안타깝게도 영영 곁을 떠나가 버렸던것이다. 그 뒤로 그는 마음아픈 기억만 있는 곳을 떠나 당시 호구문제를 해결해주는 조건으로 대련시급수설비공장의 공장장으로 초빙되였다.

 

'조합식 항진 에너지절약주택'의 발명자인 신창군씨가 리문방씨(설계책임자)와 검측의기로 실

  험을 하고있다.       /한동현 기자

  이렇게 좌절도 여러번 당했지만 연구에 남다른 애착심을 가지고있는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꼭 성공해야겠다는 더 큰 야심을 품고 시대와 시기를 제대로 포착하는 예리한 안광으로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하는데 전력을 다 했으며 관련정보를 장악하면서 회사경영에 모지름을 썼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자기회사를 설립해서부터 10년간 8개 국가급 특허를 획득했는데 그중 세계우수항목이 1개, 국가우수항목이 1개가 포함되였다. 제품이 생산된후면 다른 회사들에서 모조품들이 많이 나와 애간장을 태운적도 없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소송에 걸리는 시간, 정력이 아까워 아예 또 다른 제품을 개발하군 했단다. 그제날 여러번의 좌절이 오늘날 신창군씨가 더욱 연구에 몰두하고 많은 공헌을 하려는 일념을 불태워놓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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