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6월 녕안시인민정부는 선후로 발해진에 제2문화관, 신안진에 조선족문화관을 설립하였다. 1959년 조선족문화관에서 처음으로 녕안현조선족문예종합공연을 조직하여 전 현의 조선족군중들과 사회 여러분야 지도자들의 중시를 받았다.
1962년 녕안현과 해림현이 갈라지면서 녕안현위에서는 발해진에 '조선족문화소'를 세웠는데 조선족문화관의 직능을 모두 감당하였다. 신주석(1958년--1979년)이 관장이고 관원 4명이 있었다. 1965년에 이르러 녕안조선족대중문화활동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강서, 향수촌 구락부에서 창작한 문예종목이 국가급 무대에서 공연되여 주은래 등 령도들의 접견을 받았다.
1982년에 찍은 녕안시조선족문화관 사무실 모습. 이 건물은 녕안시 문물보호단위로 되였다.
1973년부터 1976년 리정일, 김춘선의 지도하에 조선족문예골간훈련반이 지속적으로 꾸려지면서 200여명의 문예골간을 양성하였다. 문예골간들은 많은 문예종목을 창작하여 녕안현, 목단강지구 및 흑룡강성의 각종문예경연에서 우수한 성적을 따내였다.
1980년 5월 녕안현 리동민 현장의 배려로 발해문화소를 녕안현조선족문화관으로 승급시키고 김동진(1980년--1999년)이 관장으로 임명되였다. 1982년 9월 녕안시조선족문화관은 발해진에서 녕안진으로 옮긴후 사업환경이 크게 개선되여 조선족문화관의 제반사업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해마다 각종 류형의 문예골간훈련반을 꾸리고 많은 청소년인재들을 양성하여 대학교와 중등전문학교에 문예특장생을 수송하였다.
그후 리순옥, 리정일, 김용광이 선후로 관장직을 맡았는바 문화관은 정기적으로 녕안현조선족문예공연을 조직하여 조선족사회의 문화생활을 더없이 풍요롭게 꾸며갔다.
리춘화(2004년--2015년)가 관장직을 맡으면서 출국바람으로 침체되였던 녕안시조선족문화활동은 새롭게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2006년 창작한 무용 '천수관'이 목단강시음력설야회에 공연되여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으며 2007년에는 조선족예술단을 꾸려 맹활약하였다. 2012년에는 '녕안 류두문화절'대형 경축대회 개막식, 페막식공연에서 명성을 날렸다. 현재 류신홍이 관장으로 임명되여 녕안시조선족문예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70년간 녕안시조선족문화관은 정부가 설립한 공익성 문화기관으로서 조선족대중문화예술을 보급하여 전통민족예술을 보호하고 력사적 문화명맥을 전승하는 과정에서 마멸할 수 없는 공헌을 하였다.
70년간 녕안시 조선족 문화예술활동은 그 영향력이 매우 컸는바 수많은 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다. 악기에서 리죽연, 리정일, 장성만, 김용광, 배석복 등이 선후로 관현악단을 조직하여 이름을 떨쳤으며 무용에서 리정녀, 김춘선, 리순옥, 최미정, 리춘화가 우수한 종목들을 창작하여 성내외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김동진, 윤일산, 전경업, 량명석, 최화길 등 골간으로 수백편의 문학작품을 창작하고 수십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조선족문화관은 녕안시조선족들의 정신적 문화예술의 수요로서 전민의 문화소양을 상승시키고 보완하는 핵심적 의의와 기능을 갖추었다. 오늘도 녕안시조선족문화관은 초심을 잃지 않고 민족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그 명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전시 조선족문예단체들을 굳게 단합하여 활기차게 앞으로 내달리고 있다.
출처:흑룡강신문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