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제 관계를 보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요동치는 국제 정세속에서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에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
우선 지난 지난 4일(현지 시간) 벌어진 미(美) 이민당국의 한국인 집단체포 사태를 들 수 있다. 미국에 투자하라고 해서 투자한 기업의 기술자들에 대해 군사작전과 같은 체포작전을 벌인 것은 동맹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야만적 행위였다. 한국은 돈 주고 뺨을 맞았다. 세계 어느 나라도 투자자를 이렇게 대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의 유력 언론인 워싱턴포스트(WP)는 8일(현지 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직원들이 대거 구금되면서 한국 사회에 충격과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는 이날 서울발 기사를 통해 미국의 안보 동맹국인 한국은 이번 사태를 동맹 정신에 어긋나는 "특이하고, 충동적이며, 모순적인" 행동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우방 미국을 향한 격앙된 여론을 조명했다. 한국은 불과 몇 달 전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결과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약속한 직후라 충격파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사과도 유감 표명도 없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반응이다. 내년 중간선거를 의식해 불법이민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이제 한국을 포함한 대미 투자국들은 자금 조달은 물론 불법 이민 단속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투자 의욕이 꺾이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중국의 글로벌 거버넌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전쟁과 일방주의에 지친 국가들이 속속 중국과의 연대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인도이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반중친미 외교노선을 걸어온 국가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문제 삼아 인도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자 모디 총리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지난 8월말 천진(天津)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SCO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난 2001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과 함께 만든 다자 협의체로, 2017년 인도·파키스탄, 2023년 이란, 2024년 벨라루스 등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현재는 회원국이 10개국으로 늘었다. 중국이 명실상부하게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는 글로벌사우스 다자주의 연대의 중심국이 된 것이다.
습근평 중국 주석은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김정은 조선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불러 모으며 '반서방 연대' 좌장의 입지를 과시했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냉전시대인 1959년 이후 66년 만이다. 이날 열병식에는 26개국 정상이 참석해 중국 중심의 다자주의 연대를 보여주었다.
구소련 붕괴 이후 통합으로 가던 국제 질서가 일방주의와 다자주의의 대결 구도가 된 것은 미국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동맹이든 경쟁국가이든 예외없이 고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은 자유주의 이민국가인 미국의 가치에 어긋난다. 미국은 돈은 얻었을지 모르나 세계인의 존경은 잃었다. 미국이 건국 정신, 헌법 정신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