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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두번째 고향을 찾아왔습니다”
//hljxinwen.dbw.cn  2024-08-09 13:55:36

  상해지식청년들 두번째 고향-화룡시 룡문향 룡문촌 룡문제2촌민소조를 찾아 촌민들과 회포 풀어

  8월의 태양이 이른아침부터 뜨거운 열기를 내뿜던 지난 3일 룡정시 대중식당은 환락의 분위기로 차넘쳤다.

  상해지식청년 6명과 화룡지식청년 2명이 두번째 ‘고향’인 화룡시 룡문향 룡문촌 룡문제2촌민소조를 찾아 촌민들과 만난 것이다.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해지식청년들과 촌민들.

  1969년, 시대의 요구에 의하여 ‘지식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은 대도시를 떠나 룡문제2촌민소조에 정착했다. 하향할 때만해도 17~18세의 소년, 소녀들이였던 이들은 이젠 인생 고래희를 바라본다.

  “당시 룡문제2촌민소조에 13명이 하향했습니다. 모두가 건재하고 있지만 이번에 사정 때문에 8명밖에 오지 못했습니다.”

  상해지식청년 정태가 말했다. 그는 이번을 포함해 룡문제2촌민소조를 세번 방문했고 이번에는 안해와 손녀까지 데리고 왔다.

  “이번 모임은 룡문제2촌민소조 촌민들의 모임을 계기로 이뤄지게 되였습니다. 상해지식청년들과 화룡에서 내려온 지식청년들과 만나게 되여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50년 전 룡문제2촌민소조 대장 사업을 했던 김장일이 말했다.

  몇십년간 못 만났던 친인을 만난 듯 이들의 화제는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그땐 연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연변이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봤습니다. 몇날 며칠을 달려왔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모든 것이 생소했습니다.”

  상해지식청년 하경요가 말했다. 그는 이번까지 룡문을 세번 방문했다고 한다.

  “55년 전, 뻐스에서 내려 처음 화룡땅을 밟았을 때 우리는 길가에 무성한 돌피를 보고 놀랐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부추’를 먹을 줄 모르는가 했습니다.”

  부추와 돌피를 구분할 줄 몰랐던 이들이다. 그들은 길가에 푸르싱싱하게 자란 돌피를 보며 놀랐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웃었다.

  세월이 흘러 아득한 옛말로 되였지만은 이들의 추억은 청춘에 머물러있었다.

  “재교육을 잘 받고 빈하중농처럼 근면하게 살려고 천방지축 달리다 보니 웃음거리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우리 집체호의 한 친구는 기음 매기에 나섰다가 곡식과 잡초를 구분 못해 곡식을 싹 매 버려 대장에게 혼난 적도 있습니다.”

  어쩌면 눈물을 찔끔 짰을 법한 일이건만 돌이켜보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감미롭기만 하다.

  촌민들과 마주앉은 이들은 우리 말을 한두마디씩 던져 장내에 웃음을 몰고 왔다.

  물고기를 ‘물의 고기’라고 하고 ‘떡’을 ‘뜨기’라고 말하는 이들을 보면서 촌민들은 강산이 다섯번 변하는 동안에도 우리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이들이 고맙게 느껴진다고 했다.

  “미안하게도 저는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밖에 모릅니다.”

  예전에는 거의 완벽하게 조선어로 대화했으나 인젠 거의 다 까먹었다면서 왕미영이 쑥스런 표정을 지었다. 왕미영은 이번을 포함해 룡문을 두번 찾아왔다.

  “정말 힘들었지만 힘들었던 경력은 저에게 큰 원동력이 되였습니다.”

  정태가 말했다. 그는 룡문집체호에서 10년을 보냈다. 그는 룡문제2촌민소조 촌민들을 통해 감사와 고마움을 알았고 촌민들과 함께 역경을 이겨냈던 모든 시간이 그로 하여금 사업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해로 돌아간 후 건축회사의 주요 부서의 책임자로 일하다가 퇴직했다.

  “2012년에 왔을 때만해도 우리가 10년 살았던 집체호가 있었습니다. 2017년도에 왔을 때에는 절반 무너진 집체호가 있었구요. 그런데 이번에 와보니, 집체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쉽습니다.”

  마누라와 손녀에게 집체호생활을 수없이 얘기해줬던 정태는 이번 걸음에 집체호 옛터만 보여주게 돼서 너무나도 아쉽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추억 속에 조선족은 어떤 모습일가?

  그들은 가족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괴롭거나 불편했던 기억은 하나도 없고 고마운 기억만 남았다고 했다.

  “룡문제2촌민소조는 우리의 두번째 고향입니다. 고향 연변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룡문을 찾은 림애연이 진심 어린 어조로 말했다.

  가정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일년에 한두번씩 상해로 돌아갔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사람들은 집체호에 남아서 설명절을 보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몇해 만에 한번씩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 당시 가장 외로울 때마다 찾아주고 품어준 사람이 바로 ‘두번째 고향’ 사람들이라고 했다.

  촌민들 역시 지식청년들에 대한 유대감이 깊었다. “몇해 전 일이 있어 오빠와 같이 상해로 갔습니다. 상해에서 지식청년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만나자 바람으로 저의 이름을 불러줬습니다.”

  몇해 전 상해로 가 지식청년들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류명해(62세)은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류명해의 기억에 의하면 지식청년들은 자기 또래의 어린아이들을 항상 목마를 태워줬다고 했다.

  “마을사람들 이름을 거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리를 찾아 모여온 20여명 촌민들을 보면서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라고 했다.

  그리운 얼굴들이 있는 한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두번째 고향’ 찾을 것이라고 했다.

  “한 집체호에서 몇년간 생활하다가 50년 만에 이렇게 만나니 기쁜 심정을 어떻게 표달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고향사람들과도 이렇게 한자리에 앉을 수 있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화룡에서 룡문으로 하향지식청년으로 내려왔던 황정자의 말이다.

  촌민 차정남도 이렇게 감정을 중히 여기고 찾아오는 지식청년들이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다고 했다.

  “이들과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 것입니다. 서로를 축복하면서 서로의 집으로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행사를 주최한 김장일이 말했다.

  김장일에 따르면 3일부터 5일까지 룡문제2촌민소조 촌민들은 상해지식청년들과 화룡지식청년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고 한다.

  오가는 이야기가 감동으로 너울 치는 시간, 가슴으로 대화하는 이들에게 있어 언어 장벽은 문제가 아니다. 아동저수지에 행장을 풀고 회포를 나누면서 래일을 약속할 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기자는 귀로에 올랐다.

  출처:연변일보

  편집: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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