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0일 오전 9시, 치치할시 조선족한락연연구회와 치치할시 조선족문화원의 공동 주최로 치치할시 룡사공원 격언정(음악당)앞에서 한락연 서거 77주년을 기념하여 각 조선족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뜻깊은 추모행사를 가졌다.
치치할시 조선족한락연연구회 리금숙 부회장이 한락연 렬사의 혁명사적을 소개한 후 그의 생전 업적을 기리고 숭고한 혁명정신을 이어받을 각오로 가슴 앞에 흰꽃을 단 전체 임원들이 머리를 숙여 애도를 표하였다.
격언정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한장면. /강명찬 찍음
치치할시 조선족한락연연구회 회장에 따르면 1904년에 청정부가 가장 일찍 건설한 중국 근대 원림 력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룡사공원은 치치할시의 랜드마크로 알려지고 있는데 격언정(格言亭)은1929년에 치치할시정부 시정국 공정과 과원 겸 룡사공원의 감리(원장)인 중국 미술업계에서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우는 인민예술가이며 세계 반파쇼투사이며 중국 미술계의 첫 공산당원이며 중국 조선족으로서 가장 일찍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중국공산당의 저명한 정치활동가인 한락연 렬사가 생전에 설계하고 건축한 것이다.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백색의 정자 건물은 10미터 높이에 정면은 삼각형으로 설계되였는데 그 우에 시계판 모형이 박혀 있어 처음에는 이 정자를 ‘종정’(钟亭)이라고도 불렀다. 격언정이 수건되여서는 정기적으로 명언 경구가 쓰인 족자를 걸어놓아 사람들에게 계발을 주고 교화하는 장소로 되였는데 이것이 바로 격언정으로 변신된 계기가 되였다. 격언정은 올림푸스산에 있는 고대 그리스예술의 최고 성취를 대표하는 아태네신묘를 축소,간소화하여 예술처리를 거쳐 설계한 것인데 지금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원래의 격언정 앞에 있는 녀장(女墙)에는 예서체로 된 ‘락원’이란 두 글자가 박혀 있어 암흑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동경의 등불이 되여 설계자의 락관적인 일면을 보여주었다.
추모행사의 일환으로 행사 참석자들은 그 당시에 건축된 미술관 그리고 구소련령사관 옛집터 건물안에 진렬된 한락연 사적관을 참관하였다.
이번 활동에는 치치할시 조선족한락연연구회와 치치할시 조선족문화원의 임원들 외에도 치치할시 선명예술단,조선족합창단, 장백산예술단, 선명촌무용단, 메리스구 선명촌 등 여러 단위와 사회단체의 령도와 대표들이 참석하였다.
격언정 앞에서 부분적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강명찬 찍음
치치할시문화활동센터 관리위원회 김종련 부회장은 사적관을 돌아본 후 이번 활동에 참가하여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같은 조선족으로서 매우 자랑스럽고 자호감을 느낀다”며 "앞으로 혁명선렬들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전승하고 발전하는데 일조하겠다”고 다짐했다.
출처: 흑룡강신문 전창국 특약기자
편집: 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