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보일러를 안고 천진공항에 내려 천진역에서 다시 기차를 하루종일 타고 심양에 도착했어요. 당시 눈앞으로 자동차가 10분에 한대 꼴로 지나가는 정도였는데 지금 심양을 보십시요. 서울 못지 않게 너무나 발전해 있지 않습니까?"
한국인 김관식(78세)은 중국에 진출한 1993년 당시를 회고하며 중국의 발전 속도에 감탄한다.
김관식은 현재 료녕성 무순시 망화구(望花区) 탑욕진(塔峪镇) 대전자촌(大甸子村)에서 신한민속촌(新韩民俗村)을 운영하면서 중국인과 한국인, 주변이들로부터 존경 받는 기업가, 자선가로 정평이 나있다.
차이나드림을 안고 칠전팔기 창업사
한국 경상북도 상주시 출신 김관식은 한국에서 보일러 개발 관련 발명특허 여러개를 갖고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15년간 규모가 큰 보일러공장을 운영하던 중, 1992년 경쟁업체의 급증으로 공장 운영이 부진했다. 급기야 해외 진출을 결심하고 1993년에 지인의 주선으로 한국과 가깝고 말이 통하는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심양에 진출, 심양의 동북제약그룹 의료기계공장과 합작 계약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중국에는 부피가 크고 소음도 크고 환경오염까지 심한 석탄보일러가 위주였는데 김관식이 개발한 기름보일러는 시장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반백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족의 반대도 무릅쓰고 무작정 중국을 찾아 시작한 사업이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부도나게 되였다. 트렁크에 짐을 싸고 귀국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무순시 망화구 구장이 찾아왔다. "이 좋은 기술을 가지고도 이대로 귀국하면 아쉽지 않겠냐?"며 망화구의 부지를 저렴한 가격에 내줄 테니 공장을 세우고 재도전 해보라고 제안했다.
구장의 제안에 김관식은 무순에 신한보일러유한회사를 세우며 재창업을 시작하였다. 곧바로 1994년에 운명의 기회가 찾아왔다. 서탑에 2,000여평방미터의 한국식 사우나가 들어서면서 그의 사업에 전환을 가져왔다. 신생 사물 사우나에 현지 부유층이 많이 찾아왔다. 사우나가 신한 기름보일러를 설치하여 200여개의 샤워기에서 전부 사계절 온수가 흘러나오고 오염도 적고 비용도 절감된다는 소문이 어느새 서탑가를 넘어 온 심양에 퍼지면서 신한보일러는 없어서 못파는 '귀하신 몸'으로 되였다. 동북삼성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흰눈처럼 날아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선불금만 받은 채 주문 업체들에 납품했는데 잔액이 제때에 입금되지 않고 현금 거래는 적고 어음 거래가 많아 적지 않은 손실을 보게 되였다.
포기를 모르는 그는 대담히 탑욕진의 5만평방미터 되는 황산을 도급맡아 신한민속촌을 건설한다.
민속촌 꾸려 중한 문화 교류에 가교 역할
무순 신한민속촌은 심양 서탑에 위치한 김관식의 사무실에서 40여킬로미터 떨어진 차로 한시간 거리다. 부지면적 5만평방미터 되는 민속촌은 그동안 김관식 대표가 한화로 10여억원 투자하여 자연관찰 체험장, 중한신민속촌 연수관(공연, 강당, 식당), 장독박물관, 례절 교육장(두개), 황토방, 농장, 주말농장 체험장, 가족 숙소, 원두막, 그네·씨름·널뛰기·투호 민속놀이장 등 각종 체험시설을 보유하고 있다.제2례절교육장에는 한복 수백벌이 진렬되여있으며 황토방에는 우리 민족의 전통 악기, 생활도구, 그릇 등이 올망졸망 진렬되여있는가 하면 연수관은 500명을 동시에 용납할 수 있다.김관식에 따르면 그동안 무순과 심양, 철령 등 지역의 한족, 조선족 학교 학생들만 해도 연인수로 5만여명이나 민속체험을 다녀갔다고 한다.
민속촌내에 자리한 무순신한식품회사는 막걸리, 된장, 고추장 등 다양한 민족 전통 음식을 생산해 전국 각지에 널리 판매하고 있다.
김관식은 2019년에 성급호텔 등을 유치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미루어졌지만 방역형세가 좋아지면 곧 건설되여 민속촌 규모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받은 이상으로 돌려주는 중국의 후한 인심
김관식은 "받은 이상으로 돌려주는 게 중국의 후한 인심"이라며 민속촌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조선족로인들의 감동사연을 특별히 소개한다. 최근 몇년 코로나로 회사 사정이 힘든 것을 알고 김인순(87세), 최원학(83세), 장금섭(73세) 등 조선족 로인들이 도우미로 발벗고 도와나섰다. 로인들은 민속체험하러 온 여러 민족 학생들에게 한복 고름 매는 법, 절 하는 법, 민속 음식 만드는 법 등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민속촌으로부터 한푼의 보수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들의 인연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관식은 "중국 진출 이듬해인 1994년부터 서탑가두에 안도조선족로인협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뵙게 되였지요. 그 때까지만 해도 로인들의 형편이 엄청 어려워보였어요. 하여 한국에 다녀올 때 돋보기 300개를 사와 로인들에게 하나씩 선물했고 음력설, 단오, 추석, 년말 총화대회 때에 민속음식을 차려드리거나 경제적으로 지원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분들의 형편이 많이 유족해져서 제가 오히려 그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감명깊게 말한다.
김인순, 최원학 할머니는 원래 로인협회의 회장과 부회장이였는데 이들은 김관식 대표를 칭찬해마지 않는다. "김관식 대표는 주변의 조선족학교와 한족학교에 장학금도 아낌없이 쾌척하군 합니다. 또 년초에 돼지와 염소를 사서 한족 빈곤호들에게 나눠주는 등 현지사회 공익 자선에 발벗고 나서고 있습니다. 이 분은 사업가라기보다 자선가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인품에 감동 받은 조선족 로인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신한민속촌의 자원봉사자로 일해왔던 것이다.
비빔밥 제작중인 김관식 대표(우1)와 자원봉사자들
신한민속촌의 민속문화례절교육체험관에는 김관식 대표가 그동안 중한 량국 관계 부문, 사회단체로부터 받은 감사패, 공로패, 위촉장 등이 수백개 진렬되여있었다. 김관식 대표는 근 5백개가 될 거라고 한다.올 봄에 김관식 대표는 비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였다. 한국에 있는 아나와 세 자식들이 코로나 방역정책 때문에 중국에 오기 어렵게 되여 김인순, 최원학, 장금섭 로인이 선뜻 나서서 입원비를 대신 내주고 평소 그의 통역일을 도와주던 73세의 장금섭로인이 일주일 남짓 병간호까지 해주었다고 하면서 김관식은 감개가 무량해 한다. "있을 때 베풀었던 게 이제 그 배로 되여 되돌아온다"며 중국의 후한 인심에 탄복한다.
'기회의 땅' 중국 진출은 중국을 60-70% 정도 료해한 후에
"한중 수교 30년 만에 중국이 이룩한 성적은 너무나 괄목할 만합니다"라는 김관식 대표,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대상국으로, 한국은 중국의 제3 무역대상국으로 발돋움하며 량국 관계도 거족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을 잘 모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한국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끈기, 인내심, 정부의 정책과 포치에 절대 복종하는 애국심, 단결심, '만만디(慢慢的)'라 불리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는 너그러움과 느긋함 등 이런 국민성이 중국을 세계의 제2대 경제체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김관식은 중국 발전의 저력을 하나 둘 손꼽아본다.그는 심양 진출을 원하는 한국인들에게 계속하여 가교 역할을 해주고 있는데 "지금도 투자자들로부터 상담 련락이 륙속 들어온다"며 최근 한국에서 날아온 투자자들의 리력서를 보여준다."중국에 진출해서 성공을 이루려면 급급히 투자하느라 서둘지 말고 머리를 비우고 우선 중국에 대해 열심히 공부를 해라.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잘 학습하고 그들의 문화와 그들과 사귀는 법도 잘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출처: 길림신문
편집: 김연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