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건군절을 맞이하여 료녕성조선족련의회 리홍광 회장, 김수남비서장, 김창선 부비서장 일행은 7월 28일, 료양지역의 조선족 항미원조 로전사를 위문했다. 리림 회장을 비롯한 료양시조선족련의회 회장단도 동참했다.
이날 일행은 선후로 로전사 양옥륜(92세), 신덕균(94세)을 위문하고 위문금을 전달했다. 사정상 장찬준(93세) 로전사는 아들 장경호(료양시조선족련의회 로인분회 회장)가 대신 위문금을 전달받았다.
양옥륜은 1951년 9월에 참군해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다. 1954년 2월 귀국 전까지 지원군 모 륙군병원에서 부상병 간호를 담당했으며 집체 3등공을 2차례 수여받았다. 1955년 3월에 제대한 후 선후로 흑룡강성 오상현, 치치할시, 료녕성 금주시, 복건성 미산시 등 지방병원에서 근무하다가 1970년 3월 료양시제1인민병원(현재 료양시중심병원)에 전근됐다. 그해 7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그는 선후로 내과 간호장, 약국 주관약사로 근무하다가 1987년 11월에 정년 퇴직했다. 재직기간 ‘우수간호장’, ‘선진사업자’, ‘최우수 의무일군’ 등 영예를 안은바 있다.
신덕균은 13세에 흑룡강성 연수현 아동단장을 맡았고 18세에 연수현간부훈련반에 참가했으며 1951년 2월에 참군해 3월 8일에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다. 기간 그는 3등공을 3차 세웠고 귀국후인 1956년 4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귀국후 모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대련의 장비기술혁신 부처에 배치받아 근무했다. 기간 대련경비사령부로부터 3등공 2차와 기술혁신성과 2등상 영예를 안았으며 북경에서 모주석 등 당과 국가 지도자의 접견을 받았다. 제대후 료양철합금회사 무장부 부장에 임직했고 기간 ‘우수무장간부’, ‘우수공산당원’ 등 영예를 수차 안았다.
장찬준은 1950년 5월 무순에서 참군했다. 그해 11월에 중국인민지원군 후근부대 모 련에 편입되여 통역을 맡았다. 1952년 귀국후 줄곧 지방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했고 1957년, 가족을 끌고 무순에서 료양시 조광촌으로 이주해 농업에 종사해왔다.
한편 같은 날 리홍광 회장 일행은 료양시조선족련의회 사무실과 활동장소를 둘러보고 무용련습이 한창인 료양시조선족련의회 무용팀 성원들을 만났다. 그는 무용팀에 “무용련습을 잘 하여 향후 료녕성 문화예술 교류활동에서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고 덕담을 건네면서 “성내 여러 조선족예술단체들과 함께 ‘문화하향’ 활동을 활발히 벌일 것을 희망한다”고 했다.
출처:료녕신문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