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부터 촬영가 김광영(61세)의 40여년 촬영생애를 돌아보는 개인작품전이 연변미술관 갤러리에서 펼쳐졌다. 김광영이 1976년부터 지금까지 창작한 작품들중 68점이 전시됐다. 전시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 사진학과에서 정년을 맞은 김광영의 퇴직기념이기도 하다.
전시에는 다큐멘터리사진, 샬롱사진, 광고사진, 개념사진 등 다양한 쟝르가 포함됐다. 통상적으로 촬영가들은 한개 분야를 파고드는 데 비해 김광영의 촬영령역은 이처럼 폭이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쟝르를 가르치려면 제가 먼저 섭렵해야 하니까요.”
13일에 있은 인터뷰에서 그는 개념사진을 두고 부언했다.
“촬영은 다른 예술쟝르에 비해 많이 보편화됐습니다. 누구나 수시로 사진을 찍을 수 있잖아요. 그런 가운데 누군가는 부단히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할 것이고 내가 하는 이런 시도가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불씨를 지필 수 있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미술학 박사 리영일은 이번 전시를 두고 “김광영 선생님의 작품이 다큐사진에서 개념사진에로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가 이 세상을 가독하는 여러가지 시점을 하나의 전시로 묶어 내놓은 장”이라고 개괄했다.
사진 한장도 귀했던 1970년대, 사진기는 더욱 사치품이였지만 소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여름에 행운스럽게도 사진기 한대가 차례졌다며 김광영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중고 이안 반사식 사진기였는데 그것을 손에 쥔 순간부터 촬영과의 끈질긴 인연이 시작됐다. 촬영을 배우기 위해 김광영은 주변의 촬영사들을 찾아다녔고 지어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는 의사에게 사진 현상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집의 안방을 털어 암실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는 정보결핍의 시대였어요. 자료도 선생님도 없던 시절이였죠.”
1981년 김광영은 연길시공공뻐스공사 산하의 우의사진관에서 일하던중 《연변일보》에 사진기사를 투고하게 됐고 그의 이름 석자가 활자로 번듯하게 찍혀나갔다.
“41년이나 지난 지금이지만 1월 8일자 신문이였다는 것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제가 평생 촬영을 견지하게 된 계기가 되였습니다.”
그 후 김광영은 연변대학 조문학부에서 4년간의 학업을 마친 뒤 선후하여 《길림신문》, 《지부생활》에서 사진기자 겸 미술편집으로 몸을 잠그었다. 그러다가 촬영을 전업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한대학 영상예술학부에서 2년간의 학업을, 한국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석사연구생 공부를 마쳤다.
“저는 사진학과의 첫 조선족 석사연구생이자 첫 외국인류학생이였어요.”
그 기간에 김광영은 현대사진과 현대사진의 발전추이에 대해 폭넓은 인식을 가졌다.
1999년 1월 《연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광영은 “사진영상은 비체계적인 자습을 통해서 성장한 인재만으로는 전반 촬영계를 이끌 수 없다.”고 지적하며 21세기에 대비해 연변촬영분야를 선도할 우수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연변대학에 사진학부가 설치돼야 한다고 력설했다.
이 기사를 당시 연변대학 교무처에서 근무하던 김병민(원 연변대학 교장)이 보게 됐고 이것은 연변대학에서 촬영인재 양성을 추진하는 하나의 계기로 되여 1999년부터 연변대학 신문학과에서 사진촬영 및 아나운서 지망생 60명을 모집했다고 한다.
2000년부터 연변대학 미술학부에서는 사진학과를 설치하고 학생모집을 시작, 이는 김광영이 나중에 평생을 몸 잠근 평생직장으로 됐다. 2003년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김광영은 처음에 북경영화학원 촬영학부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연변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 사진학과에서 러브콜을 보내오자 곧 마음이 동해서 자리를 움직였다.
그때부터 올해 3월에 퇴직하기까지 김광영은 수많은 촬영인재를 양성했으며 그중 많은 학생들이 이제는 매체와 대학가에서 촬영인재 및 중견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연변미술관과 연변대학 미술학원, 연변촬영가협회에서 이번 개인전을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써준 데 대해 그는 무척 고마워했다.
“작품의 사이즈, 높낮이, 조명 등이 디테일하게 계산된 것은 물론 암실 재현, 촬영체험코너까지 준비됐어요.”
김광영은 연길은 비록 전시문화가 아직 보편화되지는 못했지만 전시수준은 국내 기타 도시에 비해 꽤 높은 수준이고 관객들의 눈높이도 비교적 높은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6월 3일에 자치주 창립 70돐을 맞아 펼쳐진 ‘천지아리랑’ 미술 축제 및 작품전시회는 약 1개월 동안 연인수로 관객 5000명을 접대하며 연변미술관 설립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고 소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전시 관련 정보를 제때에 알지 못해서 찾아오지 못할 뿐, 관객들이 미술이나 촬영 전시에 대한 관심도는 날로 뜨거워진다고 설명했다.
김광영은 자신이 소유한 촬영분야 명작서적과 화책들로 간간이 독서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 이런 서적들을 모셔둔 자료실을 학생들이 마음대로 열람할 수 있도록 열쇠를 복제해서 나눠주기도 했다.
퇴직은 했지만 그는 여전히 연변촬영가협회 부주석, 중국촬영가협회 회원, 한국사진작가협회 명예 회원 등 사회직무를 맡고 촬영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월에는 연변녀성촬영가 10인요청전시를 기획, 이미 3기를 원만히 진행했고 6월에는 연변의 제1대 촬영가들인 채규익, 최정록, 허길재 등 3인의 작품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출처:연변일보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