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신하고 명쾌한 작품속에서 그는 수채화의 특색을 살려 감동적이고 수분을 가득 머금은 화필과 맑고 투명한 색채 그리고 단순하고 개괄적인 조형으로 쾌적한 생활을 그려냈다. 기복이 있는 푸른 산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몇줄기의 연기 그가 그린 산수, 풍경은 평안한 분위기 속에 시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그가 바로 한락연이다. 1898년 길림성 연길시 룡정촌의 한 조선족 농민 집안에서 태여났고‘중국의 피카소'라는 미명을 가진 걸출한 인민 예술가이다. 한락연은 어려서부터 회화 예술을 매우 좋아했다. 1920년에 류해속이 주최하는상해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고 그후로 쏘련으로 류학을 떠났으며 프랑스, 영국, 스위스, 화란, 이딸리아로 넘어가 사생, 회화를 시작했고 1937년에 귀국했다.
1944년에 한락연은 안해와 딸과 함께 서북에서 사생 생활을 하였다. 그의 발자취는 신강, 감숙, 청해 등지에 널리 퍼졌으며 현지의 풍물을 묘사하면서 민중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돈황석굴, 키질석굴 예술에 대해 깊이 있는 고찰을 진행했고 키질석굴 예술의 연구에서 창조성인 사업을 했다. 이 시기에 한락연은 대량의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한편으로는 중국 전통 예술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어 석굴 예술이라는 민족문화의 보물을 사회적으로 인식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소수민족의 풍토와 인심을 예술적으로 보여주었다.
류희림 중국미술관 연구원은 한락연에 대해 “그는 문화의 보물 창고이다.”고 평가했다. 한락연은 일생동안 조국의 동북과 서북, 중원의 대지를 두루 밟으며 일생의 정력을 다했다.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