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거치고 힘겹게 한세기를 걸어오면서 만리강산 곳곳에 빛나는 붉은 발자취를 남겼다.
항일련군의 혁명의 불길이 타올라서부터 황무지를 개간하기에 이르고 대국의 중점 사업 추진에서 북쪽 전선으로 향하면서 백년간 "붉은 발자취"는 천년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흑토지를 깨웠다.
흑룡강텔레비전방송 뉴스프로그램 위챗공중계정은 대형 특별프로 "동방홍에서 태양승까지"--클라우드에서 만나는 흑룡강성 100대 "붉은 발자취"를 선보여 3갈래의 발자취를 따라 시공간을 넘어 잘 알려지지 않은 파란만장한 "붉은 력사"를 되새겨본다.
"동방홍 태양승(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태양이 솟아오르네)……" 이는 노래 "동방홍"의 가사 첫소절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가 '동방홍'과 '태양승'은 흑룡강 경내의 두 기차역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 멀리로 뻗어나간 철로는 마치 우리를 파란만장한 세월 속으로 안내하는 것 같다. 이제 '동방홍'역에서 출발하여 서쪽 '태양승'까지 가는 길에 호두요새(虎头要塞)를 거쳐, 만경량전(万顷良田)을 건너, 북국의 얼음도시의 중후함을 만끽하고 무쇠사람정신의 세례를 거쳐 공산당원의 발자취를 따라 룡강의 100년 발전의 맥박을 짚어본다.
제15역 중공북만분국 유적지
중공북만분국 유적지는 할빈시 빈현 빈주진 삼위로현교육국 정원내에 위치해 있다. 중국 전통의 '사아식(四阿式)' 파란 벽돌 회색 기와 건축물로 당과 국가지도자 진운동지가 업무를 보고 생활하며 전투에 참여했던 곳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투항을 선포했다. 국민당 반동파들이 내전을 발동하고 동북을 점령하려고 했다. 중공중앙은 국민당 반동파의 음모를 분쇄하고 '북으로 발전하고 남으로 방어하는' 전략적 방침을 제때에 제정하였으며 '동북에서 우리 군의 힘을 발전시킴과 아울러 동북을 통제하는 것을' '목전 전 당의 주요임무'중 하나로 간주했다. 이러한 형세 하에 중공중앙은 동북국을 설립하고 진운을 특별 파견하여 중공북만분국을 구성하도록 했으며 기관을 할빈에 설립했다.
1945년 11월 16일, 진운은 간부들을 이끌고 할빈에 도착한 후 중공북만분국의 정식 설립을 선포했다. 진운이 서기직을, 고강, 장문천, 장수천, 리조림이 위원직을 맡았다. 얼마 뒤, 북만분국은 중앙의 지시정신에 따라 거처를 할빈에서 철수하고 빈현으로 옮겼다. 11월 23일, 할빈에서 빈현으로 철수 이주하는 과정에 토구들의 습격을 당했다. 다행히 북만분국과 송강성 군구 로7퇀이 맞서 싸워 토구들을 전부 섬멸했다. 24일 오후, 진운이 북만분국 기관인원을 이끌고 빈현에 도착했다. 이로부터 홍색 혁명의 씨앗이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리기 시작했다. 기관은 현성 서북모퉁이에 위치한 전 천주교회당에 설치했다.
진운이 중공북만분국과 송강군구를 인솔하여 이곳에서 업무를 본 5개여월간, 당중앙의 전략배치를 열심히 실행하고 조사연구를 깊이있게 전개하는 한편, 당정건설을 강화했다. 인민무방, 토구섬멸, 매국노청산, 일본침략군 및 그와 결탁한 괴뢰정권의 토지를 배분하는 등 업무에서 업무경험을 제때에 총화 및 보급하고 실제와 결부시켜 방침정책을 제정하는 등 북만지역의 혁명투쟁을 효과적으로 령도함으로써 인민해방전쟁의 승리, 홍색정권의 공고화와 발전을 위해 불굴의 업적을 세웠다. 북만분국의 입주로 하여 빈현은 여러 분야의 업무가 북만지역의 선두를 달려 북만지역의 정치군사지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당시 동북의 '작은 연안'이라 불리기도 했다. 1946년 6월, 중공북만분국이 동북국에 편입되면서 그후 중공북만분국기관, 송강성당정기관을 다시 할빈으로 옮겼다.
중공북만분국 유적의 전반 전시청면적은 100평방미터로, 진운이 그 당시 혁명활동에 종사했던 모습을 찍은 사진, 자료 및 그때 사용했던 쇠침대, 면이불, 사무용 책상과 걸상, 구석장, 옷장, 벽난로 등 문물을 비롯한 24건의 수장품이 전시되여 있다. 루추하고 소박한 문물로부터 그 년대 물질조건이 아주 간고했음을 보아낼 수 있다.
평범하면서도 특수한 건축물은 그 시기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기록하였으며 농후한 혁명력사를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