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어느 봄날, 한국 서울 한강공원에는 다소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공원 바닥에 앉아 무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었는데요. 이날은 바로 ‘2016년도 멍 때리기 대회’가 개최된 날이였어요. 무슨 이런 황당한 대회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한다’라는 나름의 거창한 메시지를 내세웠던 대회입니다. 당시 유명 가수가 이 대회에 참가해 우승까지 거두면서 더욱 화제가 되였었죠.2014년 한국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서 열린 첫 대회를 시작으로 멍 때리기 대회는 중국,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들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대회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리유는 단순히 전례 없던 독특한 대회였다는 점에만 있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현대인의 심리가 ‘제일 멍을 잘 때리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라는 대회의 취지와 맞물려 주목을 받았던 것이죠.
실제로 많은 연구는 ‘멍 때리기’가 결코 쓸모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나은 뇌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행위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어요. 그중 가장 대표적인 연구는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가 지난 2001년도에 진행한 연구입니다. 그는 사람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넋을 놓고 있는 상태에 있을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라이크 박사는 이 특정 부위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요. 뇌가 멍 때리기를 멈추고 다시 생각에 집중하게 되면, DMN의 활동은 줄어들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후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DMN가 활성화하면 그동안 습득한 정보가 정리되고 이후 뇌가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죠.
멍 때리기가 우리의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유명인과 비 유명인의 얼굴 사진을 차례로 보여준 뒤 인물의 얼굴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는데요. 그 결과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그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참가자들,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인물의 얼굴을 더욱더 빠르고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고 해요.
이처럼 멍 때리기는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의 뇌에 잠시나마 숨 돌릴 틈을 주는 행위입니다. 몸을 무리하게 움직인 뒤에는 휴식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해줘야 하듯이 우리의 뇌도 적절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가만히 있는 건 시간 랑비라는 그릇된 생각으로부터 우리는 벗어날 필요가 있죠.
‘유레카’라는 말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들어간 목욕탕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부력의 원리를 깨닫습니다. 뉴턴 또한 사과나무 아래서 멍하니 휴식을 취하던 중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냈죠. 때로는 잠깐의 휴식이 골머리를 앓던 나의 고민에 해결책을 가져다줄 수도 있으니, 멍하니 시간을 날려 보냈다고 스스로 자책하지는 말자고요!
/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