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 제대로 보지 못한 간나새끼들 다시 와서 똑똑히 보거라! 내 이건 말이야, 너희 사내들것보다 더 힘이 좋아 나원... 중국글 상형문자에 아버지란 ‘부’자를 어떻게 그렸는지들 알어? 손에 도끼를 쳐든 남자야. 나원, 그게 바로 힘을 상징하는거야. 그 힘의 발원지는 어디에 있는줄 알아? 바로 이거야, 이거! 나원... 미국이 이라크에 쏜 미사일이 어떻게 생겼는지들 알어? 내 이것처럼 생겼어. 나-원!”
아래도리를 홀랑 벗은 뚝배기는 오히려 성수가 나서 고함을 질러댄다.
인간의 심리란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을 때는 그 비밀을 지키고 숨기려고 갖은 애를 바득바득 쓰다가도 일단 그 비밀이 탄로되거나 공개되는 날이면 그 당시뿐이지 왕왕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들 생각하는것 같다. 뚝배기가 지금 그랜다.
“꼴좋다. 우리 동창들만 보기는 아깝구나.”
“저 자식 앞세우고 태양도 유람지로 나갈가?! 우리는 뒤에 따라다니며 돈이나 벌고...”
“야, 야, 그러다간 어느 정신병원에서 방학을 해 환자를 다 풀어놨는가 하겠다.”
남성들이 네 한마디 내 한마디 지껄인다. 이럴 때 강현수는 몰래 뚝배기를 겨냥하고 사진기 샤타를 눌러댄다.
... ...
8월의 폭양은 이 땅을 통채로 삶아내고 지져낼듯 싶다. 바람마저 한점 없어 공기도 불처럼 타는것만 같다. 이런 무더위엔 수영장이 최고 피서지다.
뚝배기를 혼내준 동창들은 수영복을 갈아입고 다시 수영장으로 뛰여들었다. 유독 김만융교수만 야식장 그늘밑에 앉아 대머리가 쓴 책을 읽고 있다.
인공으로 품위있게 만든 수영장은 너비 30미터, 길이 80미터가 되여 수십명이 동시에 들어가 놀만하게 만들어졌다. 그런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은 동창들이 헤염을 치고 물싸움을 하며 즐긴다. 그런데 대머리의 두 손이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가만있지를 않는다. 그는 지금 슬슬 이 녀자의 젖가슴도 다쳐보고 저 녀자의 엉뎅이도 만져본다. 어떤 녀성은 모르는척 슬며시 도망가고 어떤 녀성은 눈을 한번씩 흘기기도 한다. 대머리의 손이 어느 사이 빨간 수영복을 입은 구금자의 엉뎅이를 슬쩍 만진다. 그랬더니 구금자는 단통 독기어린 눈으로 대머리를 한참이나 쏘아본다. 대머리는 얼른 그 매서운 눈길을 피해 딴곳으로 얼굴을 돌린다. 그는 물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도 사람을 가려야겠다는 생각이 펄쩍 든다. 그렇게 가려야 할 녀성은 구금자와 최윤희였다. 아무리 동창들 사이가 허물없다 해도 구금자는 원체 단정한데다 어마어마한 백일호의 안해이고 최윤희는 쉰고개를 바라봐도 여직 남자들을 꺼려하는 처녀의 몸이니깐.
성만이는 한근짜리 코를 벌름거리며 아까부터 주영주만 살펴보고 있다. 어제 밤 숲속에서 대머리하고 놀던 수작이 자꾸만 눈앞에서 얼른거려 사타구니에 달린 작대기가 시계바늘이 여섯시반을 가리키던것이 열두시를 가리키듯이 물속에서 대포처럼 꿋꿋이 살아났다.
목릉강변에서 자랐다는 주영주는 다른 운동도 잘할뿐만 아니라 헤염도 제법 잘 쳤다. 그래서 지금 팔다리로 멋지게 물을 가르며 혼자서 사람들이 없는 북쪽 끝까지 물고기처럼 오가고 있다. 성만이는 도랑물에서 대충 배운 개발헤염을 치며 주영주를 쫓아갔다.
“주영주, 헤염은 스타급이구만.”
“호- 하긴 지금도 저 송화강쯤은 얼마든지 건너 갈것 같아요.”
“날 좀 헤염을 배워주겠소?”
“이제 뭐, 그 나이에 헤염을 배운다고 그래요?”
“자, 자, 팔은 이렇게? 아니면 요렇게?...”
“아니, 오른 팔이 나갈땐 왼팔은 이렇게 들어와야지요.”
그렇게 헤염을 배우는척 하던 성만이는 슬쩍 주영주의 엉뎅이를 어루만진다.
“어머! 점잖지 못하게 왜 이래?”
주영주의 입에서는 대뜸 반말이 나온다.
“주영주는 점잖은가 뭐? 어제 밤에 숲속에서 뭘했는지 이 성만인 다 알거든...”
성만이가 꺼내는 말에 주영주는 숫기 없이 얼굴이 새빨개진다. 어제 밤 옛 남편이였던 대머리와 한 짓을 성만이가 알고 있을줄은 천만 뜻밖이였던것이다.
“인제 보니 성만이는 취취하게 남의 꽁무니나 따라 다니는 코구멍으로 구린내나 맡는 그런 존재였어?”
“가시 박힌 말은 그만 스톱하고 기실 이 성만이도 주영주를 진짜 좋아한다니까.”
“호, 그래? 저기 있는 우리반 남자들이 날 좋아한다면 난 다 받아줄수 있어도 성만이만은 싫어!”
“왜 나만은 싫은데?”
“사람은 몸에만 뼈가 있는것이 아니라 정신에도 뼈가 있어야 해. 그런데 성만인 언제부터 그렇게 변했는지는 몰라도 문어처럼 어디에고 뼈가 없어. 나는 돈이 많거나 마음이 고운 사람보다는 뼈가 있고 주대 있는 남자를 좋아해. 그가 거러지든 넝마주이든 그런건 난 상관 안해...”
이렇게 말하던 주영주는 갑자기 물속으로 몸을 숨기더니 저만큼 먼발치에 가서 머리를 쏙 내민다.
“호호, 헤염을 배우고 싶거들랑 꽁무니를 또 따라오렴.”
성만이는 닭 쫓던 개가 집 이영만 쳐다보듯 멍하니 멀어져 가는 주영주만 바라본다. 절로도 스스로가 싱겁기 짝이 없는지 입만 쩝쩝 다시면서...
동창들이 모여 벅적거리는 저쪽에서는 물싸움이 여러 패나 붙었다.
뚝배기는 분풀이를 하느라고 그냥 그냥 송옥이만 쫓아다니며 물을 퍼붓는다. 송옥이가 손이야 발이야 빌어도 소용이 없다.
‘비아바이’ 박재동이는 녀성들에게 포위되여 물벼락을 맞느라고 정신을 못 차린다. 화투에 나오는 비아바이가 볼수록 우스운 꼴이 되고 있다...
싸움
‘보배찾기’ 유희 뒤에 상품을 내걸고 놀기로 했던 오락은 그만 시간을 지체하여 삭제되고 말았다. 피서엔 제격인 수영장에서 오래 놀다보니 어느 사이 점심때가 되여 복무원들이 야식장으로 음식을 날라오고 있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은 구운오리고기며 순대며 소시지 같은 미리 익힌 음식들로 한상 차려졌다.
그런데 대형 양산들로 눈부신 해빛을 가리운 그 서늘한 그늘밑에 상을 차려 놓은지 반시간이 지나도록 수영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호텔로 들어간 녀성들이 좀처럼 오지 않고 있었다.
“계집년들은 남자들보다 신경이 하나 더 많은것 같아. 그 신경이 뭐인지 알아? 바로 화장신경이야. 천하에 계집이라고 이름만 지어 놓으면 하나 같이 왜들 저렇게 거울에 매달려 얼굴에 찍고 바르고 비비느라 분주한지 몰라...”
“그거 왜 그런지 너희들 알어?”
‘비아바이’ 박재동이 한술 뜬다.
“기실 녀자는 남자보다 못생겼거든. 그래서 자연미가 아닌 인공과 가공으로 못생긴걸 미봉하려고 암치뼈에 불개미 달라붙듯 하는거야.”
“그건 또 어디서 주어들은 리론이요?”
“임마, 버릇없이 주어듣다니? 이건 동물학을 전공하는 박사생들이나 연구하는 수컷과 암컷의 대비 리론이야. 이 세상의 동물들을 곰곰히 살펴보렴. 수컷과 암컷이 어느것이 고운가? 사자, 범, 수컷이 곱나 암컷이 곱나? 장꿩과 까투리, 수탉과 암탉 그래 어느것이 더 곱나? 다 수컷이 고운거야. 인간도 마찬가지거든. 다른건 다 집어치우고 얼굴만 살펴보아도 남자들은 얼굴에 보기 좋은 수염이 자연적으로 나지만 녀자들은 수염을 기르고 싶어 환장을 해도 날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화장이란 가공이 수요돼서 얼굴에 찍고 바르는거야. 다들 이젠 알았지?”
“그런데 형, 형도 저 뚝배기처럼 아래도리를 벗기우고 싶지 않거들랑 이젠 그만 떠드오. 저기를 좀 보오.”
비아바이가 녀동창들이 들었으면 벌떼처럼 접어들 소리를 하고 있을 때 아니나 다를가 깔깔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녀성들이 무리 지어 별무리호텔 뒤뜨락을 거쳐 야식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원, 저 미친 간나새끼들 바람에 배가죽이 허리에와 붙겠다. 나원!”
수영장에서 녀동창들한테 아래도리를 홀딱 벗기운 뚝배기는 아직도 그 분이 채 사그러 지지 않았는지 녀성들이 나타나자 눈을 흘기며 혼자 소리로 투덜거린다. 그는 맥주병을 하나 움켜쥐고 어금이로 뚜껑을 훌 열어 제끼더니 거꾸로 쳐든 병아구리를 입에 물고 꿀꺽꿀꺽 힘차게 마셔댄다.
“야, 너희들은 집에서 떠날 때 난벌 든벌 몽땅 보따리에 꿍져가지고 온거 아니야?”
강현수가 다가오는 녀동창들의 몸을 골고루 참빗질 하며 하는 소리다.
“난벌은 뭐고 든벌은 또 뭐냐?”
“이거 참, 답답하네. 대학에서 조선어문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이 난벌도 모르고 든벌도 몰라? 난벌은 밖에 나갈때 입는 옷이고 든벌은 집안에서 입는 옷이지.”
하긴 강현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만도 했다.
녀성들은 하나 같이 얼굴미용에 신경을 쓰듯 옷차림에 대한 간참도 각별했다. 강현수처럼 조금은 녀성적 기질이 있어 구석구석 세심한 관찰력을 가진 남성들의 눈으로 보면 녀동창들은 거의가 어제 낮에 별무리호텔로 들어설 때 입었던 옷이 다르고 저녁에 연회석에서 입은 옷들이 또 다르고 아침에 입은 옷과 수영이 끝나고 지금 갈아입고 오는 옷들은 알락달락 또 저마끔 달랐던것이다. 그중에서도 주영주는 색갈고운 치마와 원피스만 해도 여러벌 갈아입더니 지금은 또 소매가 없는 등거리 비슷한 적삼에다 가랭이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멋진 잠뱅이를 입고 나왔다.
유독 김순애만은 어제 하루는 파란색 양복을 입고 있던것이 오늘은 아침부터 빨간색 운동복을 입고 있다. 뚝배기가 하나하나 녀성들을 수영장에 밀어 넣을 때 의식적으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하튼 김순애는 요행 도망을 쳐 봉변을 면하는 몇몇 녀성들속에 끼여 있어 옷이 물에 젖지 않았던것이다.
그렇게 녀동창들이 모두 오자 점심식사가 시작되였다.
바람 한점 없이 찌는듯이 무더운 정오라 동창들은 하나같이 복무원들이 금방 랭장고에서 꺼내오는 시원한 맥주를 찾았다.
“야, 김운재 그 자식, 온다 해놓고는 끝내 바라오질 않는구나.”
“그 현장 어르신님 정말 너무해요.”
“현장이면 다냐? 그래 현장의 눈엔 애비 에미도 안보이고 4년이나 같이 공부한 동창들도 안 보인다냐?”
“괘씸한 놈 같으니라구. 이젠 권세에 미쳐 동창생들의 우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망나니로 변했군.”
“정말 너무하네요. 혹시 특별한 사정이 생겨 못온다면 못온다고 우리 동창들에게 전화 한통이라도 해야 하는게 도리가 아닌가요?”
“사정은 무슨 놈의 사정이야. 이젠 우리 동창들하구 같이 노는것 조차 시시해 보이겠지 나원.”
오늘 오전에 꼭 들어선다고 약속을 했던 화남현의 현장 김운재가 점심때가 되여도 꿩구어먹은 소식이자 동창들이 분해서 펄펄 뛴다.
“야, 야, 그 김운재라면 이젠 이름 석자도 꺼내지 말자!”
김성만이가 도리머리를 젓는다.
“내 어제 밤, 저 맥주병밑굽한테서 김운재 얘길 들었는데 그 녀석은 이젠 잘못 변해도 한심하게 변했더구나. 현장 자리에 바라오르니깐 직무상의 편리를 리용해 부정당 리득을 챙기느라 부패하기 짝이 없고 민족심이란건 꼬물만큼도 없어 글쎄 저 맥주병밑굽네 조선족중학교에 가서도 조선말은 한마디도 안하고 전탕 중국말만 한다잖아...”
“성만이! 자넨 내막도 잘 모르면서 그만 좀 떠들면 안되겠나? 내가 아는 김운재는 너희들이 생각한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거야...”
여직껏 한마디도 하지 않고 김운재를 죽일놈 살릴놈 하며 욕하는 소리들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강현수가 참다못해 한마디 내쏜다.
그런데 강현수가 이렇게 반박해 나서자 맥주병밑굽이 발끈하고 대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