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 중국 각지의 신문과 잡지의 소식보도와 평론에서 안종근 의사의 인격에 대하여 대단히 찬미하였다.
안중근이 권총을 들어 이토히로부미를 사격할 때의 상황에 대하여 홍콩의《화자일보》( 华字日报 )는 사설에서 "한국의 지사는 총을 쏘았다. 생명을 버리려는 마음을 가졌기에 그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었기에 손이 안정되었다. 손이 안정되었기에 탄알마다 명중하였다"고 묘사했다. 상하이의 《시보》(时报)는 소식보도에서 "이토를 사살한 한국인은 듣건데 매우 날쌔고 용감하다고 한다. 깜짝할 사이에 7발의 총알을 쏘았다"고 묘사했다. 상하이《신주일보》 (神洲日报 )는 "자객은 총을 쏜 다음 한국만세를 세번 고창하고나서 이토를 째려 보았다. 그는 태연한 기색으로 몸을 피하지 않고 러시아 군대에게 체포되었다"고 묘사했다. 베이징《정종애국보》(正宗爱国报)도 "자객은 체포될 때 대한만세를 높이 불렀고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고 묘사했다.
"안중근이 이토를 격사"DVVD제작 판매
조선에서 제작한 영화 '안중근이 이토를 격사'(상, 하)가 중
국에서 번역 방영되어 수많은 관중을 끌었으며 DVD등 영
상제품으로도 제작판매되면서 많은 인기를 모았다.
안중근이 체포된 후 하얼빈역내 헌병분파소에서 심문을 받을 때의 상황에 대하여 상하이 《신주일보》는 "안중근이 포박된 후 러시아 검찰관 미하레푸의 심문을 받았다. 자객은 조금도 무서워 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는 한국인이라 자칭하면서 오늘 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았고 불행한 한국동포의 원수를 갚았으니 다행이라 기뻐하였다"고 묘사했다. 《시보》는 안중근이 "러시아 경무국에 구인된 후 기색이 태연하였다. 침착하고 두려움 없이 모든 언어 행동이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고 묘사했다. 《동방잡지》는 안중근이 체포된 후 러시아 관원의 심문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러시아 사람이 이토가 중상을 입어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을 때 이 고려인은 곧 기뻐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보호해주신 덕택이라 찬송하였다"고 묘사하였다.
안중근이 체포된 후 하얼빈 주재 일본총영사관 지하실 감옥의 옥중 생활 정황에 대하여《민우일보》(民吁日报)는 "안중근이 하얼빈 감옥에 처음 들어 갔을 때 식사량이 매우 좋았고 잠든 다음 숨소리 조용하였다. 일본사람은 그가 잘 먹고 잘 자니 이제는 만족해 하는 것 같다고 "고 묘사하였다.
일본 당국이 안중근을 여순감옥으로 이송할 때 12명의 일본 헌병이 압송하면서 안중근을 묶어 기차에 밀어 넣었다. 도중에서 일경의 학대를 받은 안중근은 일경과 날카롭게 맞서 싸웠다. 이 정황에 대하여《하문일보》(厦门日报)는 "자객 안중근이 기차안에 있을 때 호송하는 일경을 보고 ‛나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나니 지사가 천직이로다. 너의들 나를 이와 같은 기차에 앉히다니 지사에 대하여 너무나 무례한다'라고 욕을 하였다"고 묘사했다.
안중근이 여순감옥에서의 투쟁상황에 대하여 《동방잡지》는 "나에게 사람이 먹지 못할 거칠고 냄새나는 음식을 주다니 너희들 무례하다. 이와 같이 박대하지 말고 나에게 대신의 예의를 갖춰주기 바란다"욕설했다고 묘사하였다.
안중근이 하얼빈으로부터 압송되어 여순감옥에 이르는 상황에 대하여 《신보》(申报)는 "역전 내외로부터 감옥에 이르기 까지 거리 주변에는 경계가 매우 엄하였다. 일경 수십명이 호위하여 걸어갔는데 안중근은 겁내는 기색 전혀 없이 태연자약하고 힘차게 걸어갔다. 연류된 여러 사람들도 머리를 쳐들고 떳떳이 걸었고 수심이 낀자 하나도 없었다"고 묘사하였다.
안중근이 법정에서 분노하여 이토의 죄약 15조를 적발할 때의 상황에 대하여《동방잡지》는 "안중근은 의기 양양하게 손을 휘두르고 발을 구르며 정의감에 피 끓어 목소리 우렁차고 입과 코에서는 불을 토하여 이토를 나라의 정사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라 질책하였다"고 묘사했다.
/서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