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 안중근의사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자이며 동양 평화를 위해 몸 바친 평화전사이다. 안중근이 법정에서 진술한 이토히로부미의 15조 죄악 가운데 그 하나로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가 있다. 안중근은 법정에서 “나의 목적은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유지에 있다. 이토를 사살한 것도 사적 원한에서가 아니라 그런 목적에서였다” 고 재삼 진술하였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서문에서 “동양평화를 위한 의전(义战 )을 하얼빈에서 개전하고 담판하는 자리를 여순으로 정했으며 이어 동양평화문제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는 바이다”라고 썼다.
중국의 각 신문에서도 안중근이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고 있는 소식을 보도하였다. 상하이에서 발행한 ‘신보’는 「안중근이 감옥에서 저서」란 제목을 달고 “듣건데 안씨는 지금 옥중에서 부지런히 저서하고 있는데 책이름은 동양평화라고 한다”고 보도하였다.
안중근의’동양평화론’의 내용에 대하여 장춘에서 출판한’길장일보’는 신문보도에서 “안중근은 사형언도를 받은 후 종일 앉아서 저서하고 있다. 그는 일본, 중국, 한국 3국의 연합평화회의를 여순에 개설하고 큰 은행을 설립하여 3국의 공동화폐를 발행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고 보도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의 주요 주장이라면 (1) 일본은 주변국의 침략을 중지할것 (2) 일본이 러일전쟁 때 점유한 대련 여순을 중국에 돌려줄 것 (3) 여순에 중, 일 한 3국대표로 구성되는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여 동양평화의 방략을 세우고 실천할 것 (4) 여순에 은행을 설립하고 3국이 통용하는 화폐를 발행할 것 (5) 중, 일, 한 3국의 청년들로 군단을 평성하여 여순항을 지킬 것 등 여순항으로 하여금 동양평화의 근거지로 만들자는 주장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이와같이 심도있고 원경이 있는 탁월한 평화사상을 발기했다는 것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교수대에 올라서기 전 3분간 동양평화를 위하여 기도를 드렸으며 “동양평화를 힘써 지켜달라” 는 임종유언을 남겨놓았다. 상하이 ‘신보’는 「안중근의 임종지언」이란 제목을 달고 “ 안중근은 어제 여순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으니 이토를 사살한 지 150일 만이다. 안씨는 임종시에 사형을 감시하는 각 관원들에게 동방의 평화를 이루기에 힘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고 보도했다. 상하이의 ‘신주일보’, 장춘의 ‘길장일보’,등 각 신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안중근이 임종시 유언을 보도하였다.
/서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