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 꼭 90년 전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는 명필이었다. 힘있고 단정한 글씨 하나하나에는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예리한 결기가 서려 있다. 손끝이 아닌 심장으로 써내려간 게 바로 그의 필치다.
그래서인가. 유묵에서는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려 했던 안 의사의 인간적 고뇌와 결의가 느껴진다. 나아가 민족을 향한 충정과 동양평화를 위한 소망도 먹물처럼 진하게 스며 있다. 변치않는 일편단심과 노심초사라고 하겠다.
지난 20세기를 명멸한 한국인물 가운데 문화재를 남긴 대표적 위인이 바로 안중근 의사다. 유품이나 유묵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로는 안 의사와 윤봉길 의사, 백범 김구 선생을 들 수 있다.
안 의사는 그중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를 남겼다. 보물로 지정된 유묵이 무려 여섯 점에 이른다. 특히 유묵 문화재를 남긴 위인으로는 안 의사가 유일하다.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한 대표적 지성이자 선비였던 거다.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은 깊은 내면적 성찰에서 비롯한 우국충정의 결과였다. 그리고 유묵은 그의 신념이 알알이 박혀 있는 결정체나 다름없다.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는 시대의 거인으로 우뚝 섰다.
무엇보다 안 의사는 노력하는 사색인이었다. 보물 제569-2호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荊棘)'이 그 한 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을 만큼 독서열은 대단했다. 다시 말해 타인의 생각과 견해에 마음을 활짝 열어놓았던 것이다.
수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또다른 유묵으로는 보물 제569-25호인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을 꼽을 수 있다. '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오랑캐 나라에서도 행할 수 있다'는 뜻. 안 의사는 신실함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
'일근천하 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도 그가 가슴에 새긴 문구였다. 주자에 나오는 이 글귀는 보물 제569-1호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와 짝을 이룬다. 한결같이 부지런히 일하면 세상에 어려울 게 없고, 100번을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는 얘기다. 여기엔 시공을 뛰어넘는 지혜가 담겨 있다.
안 의사 유묵의 정수는 역시 우국충정과 남아기개가 넘치는 필적들이라고 하겠다. 보물 569-22호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와 보물 569-26호 '임적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爲將義務)'가 그렇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던 그가 '적을 만나면 먼저 나가 싸우는 게 장수된 자의 의무'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건 당연한 귀결이다.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을 군인의 본분으로 여긴 그가 보물 제569-23호인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을 남긴 것도 마찬가지다.
글씨 끝에 꾹꾹 눌러 찍었던 장인(掌印)은 안 의사의 심벌이 되다시피했다. 이 장인은 왼손바닥에 먹을 묻혀 편 채로 찍은 것. 일관된 신념과 굳건한 결의가 드러난 이색 낙관이 아닐 수 없다. 약지손가락의 단지 흔적은 단호함과 비장함이 담고 있다.
안 의사의 필적에 박혀 있는 호연지기는 유묵의 가치를 한껏 끌어 올렸다. 경매시장에서 수억원에 거래될 정도로 유묵의 성가가 높다. 그러다 보니 정교하게 꾸며낸 가짜 작품이 간혹 나돌기도 한다. 그것도 유명세라면 유명세랄까.
순국 기념일인 26일 열리는 한 미술품 경매에 안 의사의 유묵이 출품된다고 한다. 서거 한 달 전에 썼다는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寧靜致遠)'이 그것이다. '욕심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란다.
이 작품은 7년 전 경매에서 2억1천870만원에 팔려 서예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목숨마저 초개처럼 내던졌던 안 의사의 고결한 뜻이 저잣거리에서 이끗을 다투는 상품으로 전락한 세태가 씁쓸하지만, 아무튼 후손들이 안 의사처럼 무욕과 청정의 삶을 살게 하는 귀감이 되면 좋겠다. 그의 교훈은 9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해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