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고시원 방화'로 희생된 중국 동포의 눈물 스토리 화상입은 아들의 발 수술위해 한국서 온갖 고생하다 참변 안타까운 소식 듣고 주위서 도움… 아들 서울로 불러 수술
24일 오후 한국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 1703호실,조용하던 병실에 '꺼억꺼억'하는 울음 소리가 퍼졌다. 창가 자리에 입원 중인 방일성(19)씨였다. 왼발과 정강이를 온통 붕대로 싸맨 방씨는 휠체어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 엄마가 그렇게 좁은 데서 살면서… 저 때문에 고생만 하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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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때 희생된 중국동포 고 리월자씨의 아들 방일성씨가
매형 김철(뒤)씨의 부축을 받으며 화상 수술을 도와준 김해성 한국외국인근로자지
원센터 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조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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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씨는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온 동포다. 그는 지난 12일 이 병원에서 왼쪽 발가락 사이를 떼서 발가락을 똑바로 펴고, 발목의 피부를 늘리는 수술을 받았다. 갓 돌이 지났을 무렵 펄펄 끓는 가마솥 물에 빠져 달라붙고 뒤틀린 왼쪽 발과 다리를 바로잡은 것이다.
하지만 일성씨가 수술받도록 하는 것이 '평생 소원'이였던 어머니 리월자(50)씨는 아들 곁을 지키지 못했다.
어머니 리월자씨는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일어난 고시원 방화 살인 사건 때 세상을 떠났다. '고시원 이웃'이었던 범인 정모(31)씨에게 온몸을 마구 찔렸다. 일성씨의 큰누나인 해란(28)씨가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리씨는 주검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있었다. 중국에 있던 일성씨는 둘째누나 해순(26)씨와 함께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어머니 리씨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지난 2006년 12월 말, 그해 한국으로 시집온 해란씨의 초청을 받아 입국비자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집간 딸의 사는 모습을 보러 올 요량이 아니었다. "나도 서울에 가서 일 좀 하게 해다오. 네 동생 다리는 고쳐줘야 할 것 아니겠니?"
◆한달 20만원짜리 고시원 살다 참변
리씨는 중국에서 1남2녀를 혼자 키웠다. 남편은 12년 전 리씨와 싸우고 집을 나간 뒤 아예 련락이 끊겼다. 방 한 칸짜리 창고 건물에서 네 식구가 생활해야 했다. 녀자 혼자서는 농사도 많이 지을 수 없어서, 리씨는 주로 남의 집 삯일을 다녔다.
리월자씨가 한국행을 결심한 가장 큰 리유는 아들 일성씨 때문이었다. 화상으로 피부와 인대가 달라붙은 발목에 심한 통증이 밀려오는 탓에 왼쪽 다리를 절며 다니는 아들을 볼 때마다 리씨는 혼자서 눈물을 훔쳐내곤 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한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한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엄마가 한국으로 떠날 때 저를 꼭 끌어안아 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아무 걱정 말라고. 한국에서 돈 많이 벌어서 제 발부터 고쳐주시겠다고…."
일성씨는 "그때 사랑한다고, 감사한다고 말씀드리지 못한 게 정말 한이 된다"고 했다.
한국에 온 리씨는 독하게 돈을 모았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3시간씩 식당에서 일을 했다. 중국에 남겨두고 온 둘째딸과 막내 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전화비를 아끼려고 2주에 한 번만 통화를 했다. 생활비를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1년 전쯤 옮긴 거처가 바로 사고를 당한 월세 20만원짜리 고시원이었다.
리씨가 숨진 뒤, 맏딸 해란씨는 사고 현장을 돌아보다가 또 한번 오열하고 말았다. 고시원 방 구석에 남아있던 찬밥 한 그릇 때문이었다. 해란씨는 "밥값 아끼려고 다 식은 찬밥을 먹어가며 악착같이 돈을 버셨던 엄마가 그 밥마저 제대로 못 드시고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된 생활 속에서 리씨는 늘 3년짜리 비자가 만료되는 '2009년 12월'을 기약했다. 중국에 돌아가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들의 수술'이었다. 아들이 여느 청년들처럼 걷고,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해란씨는 "어머니는 '일성이 장가보내서 며느리 맞으면 정말 잘 해 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리씨가 숨진 뒤 그의 꿈도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에서 뜻밖에 '희망'이 살아났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김해성 대표가 "아들 수술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숨졌다"는 사연을 듣고 일성씨를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화상 치료 전문 병원인 한강성심병원에서도 "수술비를 깎아주겠다"고 했다.
지난 11일 일성씨의 수술을 앞두고 남매들은 어머니의 유골이 안치된 서울 구로구의 조선족 교회를 찾았다. 누나들과 함께 기도하던 일성씨는 또 한번 눈물을 쏟았다. "그런 좁은 방에 산다고, 나 때문에 그렇게 고생한다고 왜 말을 안 했어. 엄마가 '좋은 데서 지낸다. 일도 편하다'고 자랑하니까 진짜 그런 줄 알았잖아."
◆6개월 정도 재활치료 필요
일성씨의 수술은 일단 성공적으로 끝났다. 병원 사회사업실에서 수술비와 입원비 중 500만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한국교회봉사단에서도 치료비를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일성씨는 당분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6개월 정도는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상태에 따라서 재수술을 받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누나들의 형편으로 앞으로 치료비용을 감당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일성씨는 "엄마를 빼앗아간 한국이 처음에 너무 미웠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다리가 다 나으면 운전을 배워서 나처럼 몸이 불편해서 려행을 못하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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