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양시 태자하구 철서가두 광휘조선족촌에 거주중이던 항미원조 로전사 신덕균 로인이 9월 13일 새벽 4시 55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군복무 23년, 당령 72년인 신덕균 로인은 1929년 8월 15일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여났고 7살 때 부모를 따라 흑룡강성 연수현으로 이주했다.
1946년 7월, 그는 할빈군정간부학교를 졸업한 후 토지개혁사업에 참가했고 1947년에는 당시 동북민주련군 제1중대 사령원이였던 리천우의 경비원으로 6개월간 근무했었다. 이후 군부대의 추천으로 상지중학교에서 2년간 수업을 받았다. 1951년초에는 모부대 고사포 63사에 합류하여 참모직으로 근무했고 1951년 3월 8일에 압록강을 건너 항미원조 전쟁에 참전했다.
항미원조 전쟁기간, 신덕균 로인은 번역을 비롯한 여러 후근업무를 책임졌다. 첫해인 1951년, 조선어와 중국어가 서툰 군사들을 위해 직접 신문스크랩(简报)을 제작하여 군사들의 언어장벽을 없앴다. 이듬해에는 부대내의 부족한 물자를 파악한 뒤 조선정부에 가서 지원을 신청해 신속하게 '물자 구멍'을 메웠다. 1953년에는 부대의 음식에 독극물을 투입한 녀간첩을 발견하고 조선정부에 즉시 보고하여 군사들의 생명안전을 지켜냈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항미원조 참전 3년간 총 3차례 3등공을 수여받았다.
1955년 6월에 귀국한 그는 7월에 중국인민해방군 화학병학교에 진학했고 1957년 3월에 졸업한 후 대련 려순 경비구 부서에 배치되여 방화제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기간 대련경비사령부로부터 기술혁신 3등공을 2차례 수여받았다.
전역후 료양철합금회사 무장부 부장직을 력임했으며 우수공산당원, 우수무장간부, 선진생산자 등 영예를 수차례 안았다. 1975년초에는 지진예측기를 개발해 해성지진 상황을 제때에 상급에 보고하여 3등공을 세웠다.
신덕균 로인은 2020년에 항미원조 출국작전 70주년 기념메달을, 2021년에 당령 50년 기념메달을 수여받았다.
출처:료녕신문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