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중앙텔레비죤방송 전파를 탄 안도현의 조선족줄당기기.
“멀고 먼 옛날, 구봉산 아래마을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과거시험을 치면 번마다 락방을 했다. 머리가 나쁜 것도 아니요,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아니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커다란 룡 한마리가 선비의 앞에 나타났다. 룡은 선비를 보고 과거에 급제하고 마을에 해마다 풍년이 깃들게 하려면 여차여차 해야 한다고 알려준 뒤 주문이 적힌 종이 한장을 건네주었다…
잠에서 소스라쳐 놀라 깨여난 선비가 보니 과연 주문이 적힌 종이 한장이 손에 쥐여져있었다. 선비는 참 괴이한 일이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룡이 꿈속에서 일러준 대로 구봉산 우로 올라가보았다. 룡의 말대로 웬 동굴 옆에 바싹 말라 죽은 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그가 당도하자 잎이 돋아나고 꽃도 피는 것이였다. 선비는 주문이 적힌 종이를 인차 불살랐다. 그러자 그 나무가 예쁜 아가씨로 변하더니 선비를 유혹하였다. 그러건말건 선비는 룡이 당부한 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산을 내렸다. 그 예쁜 아가씨도 선비의 뒤를 바싹 따라오면서 선비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것이였다.
걸음을 재촉하여 마을로 돌아온 선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랴부랴 문을 닫아걸었다. 얼마 안되여 밖에서 천지가 진동하듯 크게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틈으로 내다보니 아까 뒤를 따라 내려온 아가씨가 어느사이 수백년을 묵은 커다란 지네로 변해서 꿈속에 나타났던 룡과 싸우고 있었다. 워낙 오래되고 큰 지네라 얼마 가지 않아 힘이 부친 룡은 룡못으로 들어가버리고 지네는 다시 구봉산으로 올라가버렸다.
어곡전에서 열릴 줄당기기 가닥줄을 꼬고 있는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로인협회 회원들.(2010년)
그날 밤 선비의 꿈에 또 룡이 나타났다. 룡은 자기의 힘만으로는 지네를 죽일 수 없으니 다음날 마을사람들을 모아 구봉산에 있는 그 동굴 앞에 가 줄당기기를 하면 그 기운에 놀라 지네가 죽어버릴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이튿날 선비는 룡이 일러준 대로 마을사람들을 전부 동원하여 굵다란 줄을 들고 가 동굴 앞에서 두편으로 나뉘여 ‘영차! 어영차!’ 하고 웨치면서 힘주어 바줄을 잡아당겼다. 과연 굴 속에 있던 지네가 큰소리로 울부짖더니 죽어버렸다. 그러자 룡못의 물이 하늘로 기둥처럼 솟아올랐고 그 물기둥을 타고 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였다.
그 후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여 구봉산 아래의 원님으로 부임되였다. 룡의 은혜를 갚기 위해 원님이 된 그 선비는 해마다 마을사람들을 동원하여 줄당기기를 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늘의 풍속놀이로 되였다.”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인 조선족줄당기기에 깃든 전설이다.
조선족줄당기기는 2009년에 성급 무형문화유산 명부에 등재되였고 주요 보존단위는 안도현문화관이다.
민속학자 한광운은 “우리의 줄당기기는 농경문화와 이어져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 농사를 위한 지신과 룡신에 대한 신앙적인 행사들이 많이 행해졌지요. 한해 농사의 흉풍을 판단하는 점세행사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고 유래를 이야기했다.
농경생활을 해온 우리 민족은 땅은 농사를 짓는 기본바탕으로 지모신이 주관하고 있다고 여기였고 룡은 하늘의 비와 구름을 좌우지하는 신으로 천기를 주관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리하여 천체의 혜택으로 자란 곡식의 낟가리와 풀, 나무 등을 리용하여 줄을 만들어서 풍년을 기약하는 당기기 놀이를 만들어냈으며 이기고 지는 겨루기의 결과로 그해의 운수를 점쳤다. 이러한 주술적인 놀이는 후세로 전해지면서 장기간 유지되였고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신앙적 의미보다는 오락적인 놀이로 변하였다.
줄당기기에 대한 력사기록은 조선시기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림하일기》, 《동국세시기》, 《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서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림하일기》 권34 <화동옥삼편>에는 “과발하놀이(줄당기기)는 모두 신라, 고려 시대의 옛 풍습이다.”라고 기록했다. 조선시기에 줄당기기는 대중놀이로 어느 곳에나 모두 보급되였으며 년중 행사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민속놀이로 부상하였다. 보통 정월 대보름날에 많이 행해졌고 지방에 따라 5월 단오, 7월 백종 그리고 8월 추석에 행해지기도 하였다.
해마다 추석명절이 되면 안도현문화관은 조선족줄당기기 놀이를 펼친다.
안도현문화관 관장을 지낸 강덕수는 “줄당기기는 남녀로소가 함께 참여하는 단체놀이 가운데서 규모가 가장 큰 놀이로서 큰 마을에서는 하루에 놀이를 그치지 않고 며칠에 걸쳐 놀았습니다.”고 말을 건넨다.
안도현 장흥향 신툰에는 조선반도 경상도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고향에서 행하던 줄당기기놀이를 그대로 이어 벼짚으로 줄을 만들어서 정월 대보름에 줄당기기를 했다고 한다.
“그때는 줄을 드리는 일도 매우 중시해 정성을 다해서 마련했습니다.”
강덕수가 말을 얹는다.
해마다 추석명절이 되면 안도현문화관은 조선족줄당기기 놀이를 펼친다.
줄의 구조를 보면 머리줄, 줄목, 원줄, 동줄, 꼬리줄로 구성됐다. 줄을 드릴 때에는 마을에서 힘센 장정 수십명이 동원되여 책임지며 우선 줄을 드리는 데 필요한 벼짚이나 칡넝쿨을 충분하게 준비해는다. 그리고 이러한 재료로 든든하고 질기게 여러개의 작은 줄을 만들어놓는다. 원줄을 드리는 방법을 보면 줄을 높은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짚을 세갈래로 단단히 비벼서 세가닥으로 꼬인 태머리처럼 만든 다음 다시 그것을 합쳐서 굵은 세가닥으로 엮어진 줄로 드리는데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면서 쇠줄처럼 단단한 직경이 20, 30센치메터 되는 줄로 만든다. 계속해서 그것들을 3, 4개 합쳐서 그 우를 든든한 짚줄이나 칡줄로 여러겁 묶어 직경이 50, 60센치메터, 길이가 몇십메터 지어는 300, 400메터 되게 만들었다.
“줄당기기는 보통 길이나 강을 사이 둔 아래마을과 우마을, 북툰과 남툰 등으로 편을 갈라서 하였는데 큰 마을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두팀으로 나뉘여 겨뤘습니다. 시합을 하는 날이면 마을의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동원되는데 선수로 뽑힌 사람들외에는 모두 응원대로 조직되였습니다.”
시합을 하는 날이면 두 마을 사람들은 아침부터 농악대를 앞세우고 시합장소에 모여들었는데 줄당기기 장소는 보통 두 마을의 경계점에 있는 평평한 풀밭이나 마당이였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농기를 앞세운 농악대가 전문복장을 하고 꽹과리, 징, 새납, 장구, 큰북, 소고를 연주하며 그와 함께 무동들이 춤을 추며 뒤를 따른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먼저 줄을 메고 입장하여 줄을 련결한다. 줄은 각 편에서 시합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어깨에 메고 나오는데 줄 우에는 선줄군과 몇명의 힘장사들이 타고 있으며 총책임을 맡은 대장이 소리를 먹이면서 전진하는 방향과 속도를 지휘했다.
해마다 추석명절이 되면 안도현문화관은 조선족줄당기기 놀이를 펼친다.
줄당기기는 전체의 힘이 한데 모아져야 하기 때문에 편장이라 불리는 지휘자가 기발을 휘두르면서 지휘하는데 이때 <줄다리기노래>를 부르거나 “우엿싸! 우엿싸!”, “에싸! 에싸!” 하는 소리로 힘을 맞추기도 한다. 응원대나 농악대는 풍물연주에 박자를 맞추어 춤추고 웨치면서 자기 편을 응원한다. 이렇게 줄을 당겨서 줄의 중심점이 표시해놓은 결승선까지 이르며 시합은 끝난다. 이긴 편에서는 진 편의 줄까지 함께 메고 마을로 돌아가는데 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한바퀴 도는 모습이 그야말로 대단하다. 이러한 줄당기기시합은 이기는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해 줄당기기가 끝난 후 사람들은 줄을 칼이나 톱으로 베여다가 자기 논에 뿌리기도 했단다.
화룡현 남평진 부동촌 사람들은 동서로 향한 마을 중간길을 경계로 남촌과 북촌 두팀을 만들어 몇백명이 참여한 경기를 종종 벌려왔다. 줄도 벼짚으로 드렸는데 줄의 머리를 사람 키 만큼의 높이로 만들었다고 한다.
줄당기기는 해방 후에 계속 유지되다가 문화대혁명시기에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삼으로 만든 바줄을 당기는 놀이는 체육종목으로 남았다. 개혁개방 이후에 조선족의 전통적인 줄당기기놀이가 회복되고 안도, 룡정 등 지역의 부분적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이나 백종절에 진행했다. 지금도 농부절이나 정월 대보름이 되면 전통적인 줄당기기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조선족줄당기기 제4대 대표적 전승인인 안도현문화관의 류일은 1980년대부터 줄당기기 보존, 계승에 앞장서왔다. 그는 전통적인 줄당기기놀이에 현대 놀이공연 요소를 곁들여 놀이에 오락성을 가미했다. 놀이에 필요한 도구도 일부 뼈대 구조를 개선하여 사용과 보관을 더욱 용이하게 하였고 외관은 전통적인 줄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룡 고리를 추가하여 공연시 더욱 편리하게 했다.
줄당기기에 참여한 광소촌 주민들.(2010년)
류일은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다른 민족들한테도 줄당기기놀이가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서장 장족의 줄당기기는 방법이 다양하고 독특하며 매우 재미있는데 선수들은 바줄을 어깨부위에 걸고 옆으로 선 자세로 당긴다. 또 다른 방법은 선수가 서로 마주하고 서서 매듭을 진 바줄을 목에 걸고 목, 허리, 다리의 힘으로 당기는데 매번 장족의 민족명절에 진행되는 여러가지 경축활동에서 줄당기기가 특히 인기가 많다.
감숙성 림담현의 만인 줄당기기도 오랜 력사를 품은 민족줄당기기이다. 지금은 바줄이 와이어로프(钢丝绳)로 바뀌였는데 남북으로 두팀이 나뉘여 겨룬다. 보름을 맞아 줄당기기놀이가 시작되면 린근 시골에 사는 농민들이 현성으로 모여 남북팀에 참여한다. 많을 때에는 5, 6만명의 구경군이 모여들 때도 있다.
그리고 ‘개구리 줄당기기’는 쫭족들이 즐겨하는 줄당기기놀이로 선수들이 바줄을 사선으로 어깨에 짊어지고 몸을 옆으로 돌린 자세로 나아간다. 시합할 때 두 손과 두 다리를 동시에 사용하기에 개구리의 모습과 같다 하여 ‘개구리 줄당기기’라 불린다.
오랜 력사로 제각기 보존, 계승되여온 이런 줄당기기는 우리 나라에서 행해지는 중국농민체육대회와 소수민족체육대회에서 경기종목으로 지정되여있다.
“줄당기기는 줄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놀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완전한 협동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줄당기기에 대한 류일의 남다른 소견이다.
줄당기기, 그 옛날 농경사회에서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여 의례적으로 행하여지던 줄당기기행사는 오늘날에 와서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화합과 단합을 상징하는 놀이로 되였다.
출처:연변일보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