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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 수 없는 두만강을 끼고 ‘꿈틀’하는 ‘버들방천’
//hljxinwen.dbw.cn  2023-08-21 09:50:58

  버드나무가 강뚝을 이루는 그림 같은 풍경이였던 그곳, 그 푸른 숲이 궁극적으로 '방천'이라는 지명으로 남게 되였다.  

  
올 상반기에만 이 마을을 찾은 관광객은 연인수로 35.45만명이다.

  립추가 지난 방천엔 지금 가을 해빛이 부서지고 있다. 20여년 전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던 ‘오지마을’이였던 방천은 지금 밀려드는 관광객 맞이로 분주하다.

  마을에 들어서면 41채의 깔끔한 민박집이 눈에 안겨온다. 민박집은 조선족 전통건축 양식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엮어 지어졌다.

  마을 입구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유난히 정원이 예쁜 민박집이 눈에 띈다. 살짝 열려진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니 각종 꽃들과 잘 가꾸어놓은 잔디밭에 시선을 뺏기고 만다. 이때 빨래감 손질에 여념이 없던 민박집 주인장 김해련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몇년째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 마을 촌민인 그녀는 민박과 어업을 통해 해마다 7만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단다.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에게서 서로 다른 문화를 배워가는 재미가 있어요.”

  다녀간 사람들이 정성스레 적어준 방명록을 꺼내보이는 그녀, 아기자기한 정원을 가진 느긋한 느낌의 민박은 여유로워보이는 주인장을 꼭 닮아 있었다.

  이 마을 ‘토박이’인 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인 김만혁은 훈춘에 고속철도가 정식으로 개통된 2015년 9월 20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농민대표로 훈춘역에서 발차하는 첫 고속렬차에 올랐던 때를 기억하며 그는 “훈춘에 고속철도가 통하는 날도 오더라구요. 마을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고속철도 덕을 톡톡히 봤지요.”라고 감개무량해한다.

  아니나 다를가, 그해 국경절 황금련휴기간에 방천을 찾은 관광객은 연인수로 12만 6000여명에 이르며 기록을 돌파했다.

  개구쟁이들이 두만강에 뛰여들어 물장구를 치던 일은 이젠 옛말이다. 오로지 고기잡이가 생업이였던 어촌마을도 이젠 옛말이다.

  2.61억원이 투입된 마을 건설은 2017년부터 시작되였고 2019년부터 정식으로 운영에 들어갔다. 2022년 코로나 영향에도 이 마을의 촌 집체경제 수입은 60만원을 웃돌았고 촌민들의 인당 년평균 소득은 7만원에 이르렀다. 마을은 ‘중국 소수민족특색마을’, ‘중국 아름다운 휴양 마을’로 선정되였고 첫번째 성급 향촌관광중점촌에 입선했으며 길림성 향촌관광 10대 정품농촌과 두번째 전국 향촌관광 중점촌 명단에 올랐다.

  올 상반기에만 이 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연인수로 35.45만명이다. 올해 마을은 ‘마을과 기업의 협력’ 운영모식을 혁신적으로 도입해 기업과 함께 려행사를 설립하고 기업화 운영, 관리에 들어갔는데 이 프로젝트 추진으로 해마다 20만원의 촌 집체수익을 더 올릴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은 비여있는 집을 리용해 관광객 맞이에 나섰고 임대 수익은 려행사와 촌민들이 4대6 비률로 나눈다. 촌민들은 또 관광 주변산업을 개발하고 마을의 특색 수산물과 농특산물을 판매하여 소득을 늘이고 있다.

  방천마을의 ‘마을과 기업의 협력’ 운영모식은 성공적으로 마을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촌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현재 방천마을은 국가5A급 관광지 기준에 따라 업그레이드 및 개조중에 있다.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방천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동방의 첫 마을’이라 불린다. 마을이 형성된 건 청나라 동치 년간, 방천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청나라 광서 33년부터이다. 당시에는 ‘버들방천’으로 불렸다. 1938년 장고봉사건 이후 이곳 주민들은 일본군에 의해 강제 이전되였고 1947년에야 ‘변방의 산천’이란 뜻의 방천촌으로 재건되였다. 1957년 두만강물이 범람하며 촌민들이 안쪽으로 이주했고 1965년 촌민 강태원이 18명 조선족당원을 인솔해 다시 입주하면서 오늘날의 방천으로 발전했다.

  버들방천, 즉 버드나무가 늘어서있어 강뚝을 이루는 그림 같은 풍경이였던 그곳, 그 푸른 숲이 궁극적으로 ‘방천’이라는 지명으로 남게 되였다.

  ‘닭 울음 소리에 3국이 깨여나고 개 짖는 소리에 3강이 놀라며 꽃이 피면 이웃나라에도 향기 풍기고 웃음소리 3국에 울려퍼진다’는 말이 전하는 방천마을에 산재해있는 20여개의 늪 그리고 마을 뒤편의 30헥타르 남짓한 면적의 호수가 힘찬 기운을 더해준다. 둥그렇게 빙빙 에돌아 올라간 계단을 타고 마을 북쪽 끝에 자리잡은 조망탑에 오르면 마을 민속가옥의 지붕선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마을 서쪽에 위치한 사구공원을 찾아도 좋고 1억년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묻혀온 두만강홍련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방천을 찾았다면 뭐니뭐니해도 삼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룡호각이다. 그곳에 오르면, 저 멀리 멀리로 짙푸른 동해바다와 하늘이 이어지는 경이로운 광경과 마주할 수 있다.

  출처:연변일보

  편집: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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