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무용미육련맹이 공식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중국무용미육가대사전(中国舞蹈美育家大辞典)》 무용가명단에 연변가무단 창작실 부주임이며 안무가인 김희의 이름이 올랐다.
《중국무용미육가대사전》 프로젝트는 국무원 교민업무판공실에서 주관하는 중국중국어교육기금회 상청등교육기금회에서 협찬하고 문화및관광부의 비준으로 진행된다. 국가 1급 사단인 중국문화정보협회에서 주관하고 중국문련출판사에서 출판하는 《중국무용미육가대사전》에는 전국 범위에서 최종 선정된 100명의 무용미육종자사 이야기가 실리게 되는데 우리 나라 무용미육사업에서 거둔 성과를 전시한다는 데 무게를 뒀다.
북경에서 펼쳐진 <아리랑꽃> 공연 엔딩에서 안무가 김희(가운데)가 인사를 하고 있다.
중국무용가협회 회원, 연변무용가협회 부주석, 연변대학 예술학원 초빙교수인 김희는 길림성무형문화재인 ‘조선족부채춤’의 전승인이다. 2019년 국가예술기금 ‘농악무 예술인재양성’ 프로젝트 전문가로 초빙되였고 길림성 제13차 특별기여 중청년 전문기술인재, 길림성 개인 2등공, 길림성 로력모범, 연변민족문화전승발전 ‘특별기여인물’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40년을 무용과 함께 성장해오면서 쌓아온 경력도 화려하다.
대표작으로는 제3회 전국소수민족문예회보공연에서 대상을 수상한 음악무용시 <천년아리랑>, 2007년 제6회 중국무용 ‘련꽃’상 작품 은상을 거머쥔 무용 <서혼>, 제4회 전국소수민족회보공연에서 금상과 2013년 문화대상에서 우수극 종목상과 ‘문화’ 안무상을 수상한 대형 조선족창작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 2015년 국가예술기금자금지원프로젝트에 편입되고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회보공연에서 극종목 금상을 수상한 창작가무 <아리랑꽃>, 중국 전업무용예술의 최고상인 제11회 ‘련꽃’상에서 민족민간무용 부문 1위를 차지하며 금상을 수상한 <장고행> 등 100여편의 작품이 있다. 특히 <아리랑꽃>은 연변의 30년 동안의 긴 창작무극의 공백을 깼다는 데 의미가 크다.
한마디로 김희와 무용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녀는 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꺼내 승화시킨 것이 무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부터 말보다는 몸짓으로 소통하는 것이 수월했던 것 같았다. 저에게는 춤이 곧 소통이고 춤을 출 수 있었던 무대라는 공간은 가장 자유롭게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였다.”고 덧붙인다.
어린시절부터 예술적 소질이 많아 소학교시절 선생님이 팔방미인이라는 별명까지 만들어줬을 정도로 다방면으로 끼가 충분했던 그녀는 바람 대로 1982년에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하고 10년간 연길조선족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활약하다 그 뒤 연변예술학원에서 조선무용강사로 지냈고 1997년에 연변가무단 창작실로 옮겨 안무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무용창작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기반을 단단하게 다져갔다.
연변가무단 부단장 함순녀는 그녀를 “시간에 쫓겨 밤샘련습을 하면 다른 무용수들은 모두 지쳐 초주검이 되여있어도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늘 돌았다. 동료들 사이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무용수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좋은 작품을 내놓았을 때 만큼 가슴 벅찼던 무대로 김희는 타국에서 문화교류 공연무대에 섰던 때를 꼽는다. 그간 한국,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국가를 오가며 무대에 올랐던 그녀는 먼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짓고 한없이 반겨주고 박수쳐주던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김희는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늘고 몸도 만들어지는 무용은 솔직한 분야이다. 나는 그 점이 가장 좋다.”는 말로 무용에 대한, 또 무용가의 삶에 대한 절박하리 만큼 솔직한 사랑을 압축해 표현했다.
출처:연변일보
편역:김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