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연필을 들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보다 스마트폰 타자 입력하는 방법을 먼저 배운다. 성장해서 방문 학습지를 시작할 나이가 돼도 연필이나 종이 대신 태블릿과 디지털 펜을 더 많이 이용한다. 전자기기가 종이와 연필로 대체되면서 아이의 인지 발달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타자’보다 ‘손 글씨’가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
손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타이핑처럼 단순한 활동보다 뇌 성장에 이롭다. 손은 다른 신체부위보다 대뇌겉질과 더 많이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대뇌겉질은 운동·감각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로, 손을 많이 움직일수록 뇌가 많이 자극된다. 또한 손을 이용해 여러 활동을 하면 인지능력이 동원되기도 한다. 손을 많이 사용하는 활동, 예를 들어 종이접기를 하면 어떤 모양과 크기로 접을지 스스로 결정하고, 접는 부위를 누르는 강도도 조절해야 한다. 도안에 없는 새로운 모양을 접기 위해서는 창의력도 필요한데, 단순히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는 것만으로는 이 같은 복잡한 인지 경험을 할 수 없다.
특히 손글씨 쓰기는 ‘시지각(Visual Perception)능력’ 발달 측면에서도 타자를 치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 시지각능력은 단어와 단어 간 간격, 자모음 간 간격을 결정해 글자 배열을 구성할 때 활용된다. 평소 인식하지 못할 뿐, 우리는 종이에 글씨를 쓸 때 이처럼 복잡한 사고를 거친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사용할 경우 이 같은 사고를 거치지 않는다. 자판만 누르면 글자가 자동으로 배열·입력되기 때문이다. 손으로 글을 쓰면 자모음 간격이나 띄어쓰기 간격 등을 어떻게 할지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하게 된다. 반면 스마트폰은 단순한 ‘누르기’ 동작만으로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뇌에서 손으로 보내는 명령이 단순할 수밖에 없다.
실제 손글씨로 단어를 배운 아이들이 타이핑으로 배운 아이들보다 학업 성취도가 좋았다는 연구도 있다. 독일 울름대학 연구진은 4~6세 유치원생 23명을 대상으로 손글씨와 타이핑이 단어 습득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아이들은 16주간 손글씨와 타이핑을 통해 독일어 알파벳과 단어를 배웠으며, 연구진은 아이들의 학습 효과를 ▲알파벳 식별 ▲알파펫 이름 기억 ▲쓰기 ▲읽기 등 네 영역으로 나눠 측정했다. 그 결과, 손으로 글을 쓰며 단어를 배운 아이들이 타이핑으로 글자를 배운 아이들보다 몇몇 단어를 더 잘 읽고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필만의 감각 경험, 디지털 펜으로 대체 불가
태블릿 PC와 디지털 펜을 사용해도 종이·연필의 감각 경험을 온전히 대체하긴 어렵다. 연필로 글씨를 쓰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보다 고유 수용성 감각이 더 자극되기 때문이다. 고유 수용성 감각은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자각할 때 필요한 감각으로, 종이에 글을 쓰면 연필을 쥔 손의 힘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선의 굵기 ▲농담이 미세하게 달라져, 자신이 어느 정도 힘을 주고 있는지 계속해서 자각하게 된다. 최근에는 태블릿 PC도 필압에 따라 선 굵기와 농담을 조절할 수 있으나, 종이와 연필만큼 미세한 힘의 변화까지 반영되진 않는다. 종이는 색연필로 아무리 살살 그어도 미세하게 선이 생기지만, 태블릿 PC와 디지털 펜은 그렇지 않다. 태블릿 PC에 디지털 펜으로 글씨를 쓰면 종이에 연필로 쓸 때보다 고유 수용성 감각 경험이 부족해질 수 있다.
학습에 사용한 감각이 다양할 경우 배운 내용을 기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종이에 연필로 글자를 쓸 때 들리는 ‘사각사각’ 소리, 연필 끝에서 느껴지는 마찰, 힘 조절에 따라 달라지는 선의 굵기·농도 등 사소한 모든 감각이 아이에게는 ‘배움’이 된다. 타자를 칠 땐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게 전부기 때문에, 글자를 쓰면서 느끼는 감각이 지나치게 단순해질 수 있다. 또한 태블릿 PC는 화면이 매끈해 디지털 펜이 마찰력 없이 미끄러질 때가 많아, 종이와 연필을 사용할 때보다 감각 경험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출처: 종합
편집: 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