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게 장 씨, 어디 가시나?” “장보러! 설맞이 준비해야지. 당신네는 준비를 다 했는가...” “돼지고기, 강정, 완자...모두 준비했다네”. 매년 음력설이 다가오면 당신이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든 설맞이 준비는 과정 자체가 설이고 고향에 대한 향수이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백화점이나 대형슈퍼마켓이 많지 않았기에 설 준비를 하려면 농촌에서 열리는 큰 장에 가야했다. 그러나 향과 진에서 열리는 큰 장은 설을 앞두고 몇번 열리지 않기에 장이 서는 날은 유난히 벅적이고 흥성흥성했다. 그 시절에는 농촌의 큰 장에 나가봐야 진정 설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동북사람이라면 음력설에는 돼지고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돼지 허벅지, 돼지 족발은 간판 료리이다. 섣달 27, 28일부터 집집마다 돼지 머리, 돼지 허벅지, 돼지 밸, 돼지 갈비 등을 팔각, 산초와 함께 가마에 넣고 푹푹 삶기 시작한다. 오전내내 고기를 삶은 뒤 오후부터는 돼지 족발을 끓인다.
닭고기버섯찜은 동북의 4대 명료리 중 하나이다. 먹을 즉시에 잡아 손질한 토닭은 기름기는 많지 않고 껍질은 얇으며 고기는 쫀득하다. 야생 개암버섯에 당면을 넣고 끓인 닭고기버섯찜은 그 맛이 일품이다.
음력설이면 해마다 풍요롭기를 바라는 뜻에서 년년유여(年年有余)라고 덕담을 한다. 년년유여(余)는 년년유어(鱼)와 발음이 같아 집집마다의 설날 식탁에 물고기 료리가 오르고 있다. 추운 겨울 날 령하 20~30도의 실외에서 산 물고기는 바로 얼어붙는다. 이에 농촌 장에서는 얼린 물고기가 불티나게 팔린다.
과거 겨울에는 신선한 과일이 적다. 대신 얼린배, 얼린감이 겨울철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되였다. 매년 음력설이 다가오면 부모님들은 얼린배와 얼린감을 마련한다. 섣달 그믐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면 어머니는 얼린배와 얼린감을 한 대야 내와 찬물을 붓고 녹이기 시작한다. 얼린배와 얼린감에 하얀 얼음층이 생기며 절반쯤 녹았을 때부터 먹기 시작하는데 그때는 그맛이 세상 최고의 과일 맛이였다.
이밖에도 음력설 기간이면 집에 아이가 있든 없든 집집마다 한 두 박스의 아이스크림을 사다 실외에 쌓아 둔다. 따뜻한 집안에서 오래동안 수다 떨고 놀다보면 울기가 오르고 목이 컬컬하다. 이때면 아이든 어른이든 할것없이 아이스크림 박스를 둘러싸고 좋아하는 맛으로 골라 시원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안에서 아이스크림 먹기는 동북사람들만이 즐길수 있는 락이라 할 수 있다.
해바라기씨, 땅콩, 사탕도 빼놓을 수 없는 설음식이다. 동북의 해바라기씨와 땅콩은 유난히 고소하다. 설인사로 손님이 왔을 때 해바라기씨와 땅콩을 한 대접 꺼내 놓고 한담을 나눈다. 그때 해바라기씨와 땅콩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시절은 고기소를 넣은 물만두 한끼만으로도 설이고 풍성한 설날 밥상이였다. 요즘의 음력설도 여전히 ‘먹기’가 위주지만 닭고기 오리고기 등이 일상 반찬이 되고 새 옷, 새 신발도 마음을 설레게 하지 못한다.
어떤이들은 설분위기가 과거처럼 짙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의 물질생활이 갈수록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부동한 시대 설맞이 물품의 변화는 높아진 우리의 소비수준과 사람들의 달라진 소비방식을 말해준다.
설맞이 물품 구입이 농촌의 큰 장에서 백화점과 슈퍼마켓에로, 다시 인터넷 쇼핑에로 옮겨지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집에 앉아 손쉽게 여러가지 설맞이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설맞이 준비 방식의 변화는 시대의 진보를 말해주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설맞이 물품의 종류가 변하며 설을 쇠는 방식이 변하고 있지만 설맞이 준비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변하지 않고 있다. 설맞이 준비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고 삶의 맛이며 기쁨이다.
출처:동북망
편역:김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