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강대지 벼농사의 변천을 살펴본다
(흑룡강신문=하얼빈) 2018년 9월 25일 습근평 주석은 흑룡강성내의 북대황을 시찰할 때 "중국인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자기 손에 들고 있어야할 뿐만아니라 자기 식량을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2016년 5월 24일 흑룡강성을 시찰할 때 "식량안보는 국가안보의 중요한 기초이다. 량식생산경영의 모식을 새롭게 창조하고 생산기술조치를 최적화하며 각종 우대정책을 실시하고 농민들의 농사 적극성을 보호하며 량식생산의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지난해 오상시 민락조선족향 민락벌에서 가을걷이 전경을 드론으로 항공 촬영했다. /특별취재팀 한동현 기자
습근평 주석이 2년 간격으로 련속 두차례 흑룡강성을 시찰할 때 식량에 대해 강조한것은 되새겨볼 의미가 있다.
그만큼 식량문제가 중요하다는것을 설명할 뿐만아니라 흑룡강성의 식량안보 역할이 아주 중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인 밥 열공기 중 한공기는 흑룡강서 나온다
쌀은 세계 인구의 40% 정도가 주식으로 삼고 있는 곡식으로 세계 총생산량의 90% 이상이 아시아에서 생산되며 그 대부분을 아시아 사람들이 먹고 있다.
중국의 쌀생산은 장강을 경계로 하고 있다. 장강이북은 자포니카(粳稻)를 주로 심으며 장감이남은 보통 인디카(籼稻)를 주로 심는다.
오상시 민락조선족향의 농민들이 벼의 자연건조를 앞당기기 위해 참대 삼각대를 세우고 벼를 걸어놓고 있다. 이 기술은 일본에서 전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특별취재팀 한동현 기자(자료사진)
동북 3성(흑룡강, 길림, 료녕성), 강소성(江苏), 절강성(浙江), 운남성(云南), 안휘성(安徽)등 7개 성구의 자포니카 면적과 생산량이 각각 중국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그 가운데서 흑룡강성과 강소성의 벼농사 면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강소성의 자포니카 면적은 약 3000만무(200만헥타르)에 달해 1위를 차지했었는데 2010년부터 흑룡강성의 수전면적이 급격히 늘어나 강소성을 앞지르고 1위를 탈환했다.
현재 흑룡강성의 벼농사 면적은 6000만무(400만헥타르)에 달해 자포니카쌀을 생산하는 장강이북 14개 성의 자포니카 수전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며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흑룡강성의 경작면적은 중국 경작면적의 1/10을 차지하며 중국인 밥 열공기 중 한공기는 흑룡강성에서 나온다. 최근 흑룡강성의 벼농사 면적은 6000만무로 늘어나 건국 초기의 36배에 달하며 중국 벼농사면적 1위, 쌀 생산량 1위의 영예를 지녔다. 흑룡강성의 쌀 생산량은 년간 1600여만톤으로서 중국 1위, 세계쌀생산대국과 비교하면 6위에 놓인다. 이처럼 흑룡강성은 중국 식량안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습근평 주석이 최근 몇년사이에 두차례 흑룡강성을 시찰할 때 중국 밥 그릇을 강조한것도 바로 그 리유가 여기에 있다.
오상시의 한 농민이 소형수확기로 가을걷이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의 천하일미로 불리우는 오상입쌀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특별취재팀 한동현 기자(자료사진)
룡강대지의 벼농사가 걸어온 길
건국 70년래 흑룡강성의 벼농사의 변천을 살펴보면 7개 단계를 거쳐 오늘이 있게 됐다.
첫 단계는 회복건설 단계(1950~1955년)이다. 이 사이에 수전면적은 151.5만무에서 261만무로 늘어났고 단위당 생산량은 무당 142킬로에서 215킬로로 증가했다.
두번째 단계는 확대발전 단계(1956~1960년)이다. 수리건설을 통해 1956년 한해에 수전면적이 180만무 늘어 441만무에 달했으며 1958년에는 거의 500만무로 늘어났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으로 1958년 무당 생산량은 151킬로, 1960년은 79킬로로 생산량은 하강선을 긋었다.
항공방제가 현실화 되고 있다. 사진은 소형 항공기로 벼밭에 농약을 살포하는 장면이다. / 특별취재팀 한동현 기자(자료사진)
세번째 단계는 감소답보 단계(1961~1975년)이다. 생산의 맹목성과 자연재해 영향으로 1962년 수전면적이 193만5천무로 줄어들었다. 1975년까지 14년간 기본상 제자리에서 답보하는 상태였다. 당시 수전면적은 195~277만 5천무 수준이였다. 무당 생산량은 높았다 낮았다 하며 생산량이 불안정했다.
네번째 단계는 상승단계(1976~1980년)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되면서 새로운 정책이 실시되고 새로운 기술이 보급됨에 따라 벼생산이 회복 발전단계에 들어섰다. 1976년 수전면적이 345만무로 회복되고 1980년에는 300만무이상 수준을 확보했다. 생산량도 점차 늘어났는데 1980년 무당 생산량이 252.2킬로에 달했다.
다섯번째 단계는 급속발전 단계(1981~1990년)이다. 륙상모희식재배기술, 화학제초 등 새로운 기술이 보급되면서 벼농사의 소득이 뚜렷하게 증대했다.따라서 농민들의 벼농사열이 일었다. 너도 나도 한전밭을 수전으로 개답해 벼농사를 짓다보니 면적이 눈에 뜨게 늘어나고 생산량도 상승선을 긋었다.1981년부터 수전면적이 매년 100만무씩 늘어나 1990년에 1000만무를 돌파했다. 무당 생산량도 329킬로에 달했다.
여섯번째 단계는 고속발전단계(1991~2010년)이다. 중국의 경제구조조정및 재배구조조정과 더불어 륙상모희식재배기술의 대면적보급, 초희식재배, 영양단지뿌려심기 등 새로운 기술이 응용되고 또한 량질다수확 새 품종이 보급됨에 따라 수전면적이 배로 늘어났다. 2010년 흑룡강성의 수전면적은 4150만5천무에 달했고 무당 생산량은 440킬로에 달했다.
오상시 민락조선족향 민락촌에서 휴경제(免耕制)를 도입해 유기농쌀을 생산하고 있다. 심홍섭(왼쪽)지부서기와 농민합작사 류재득경리가 휴경논과 돈두렁을 사이둔 논의 벼 자람새를 살펴보며 휴경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한동현 기자(자료사진)
일곱번째 단계는 안정적인 발전단계(2011~2018년)이다. 국가의 최저보호가격 정책은 농민들의 벼농사 적극성을 보호했다. 벼농사면적은 줄곧 6000만무선을 확보하고 있으며 무당 생산량은 467킬로가량에 달했다. 2018년 기준으로 흑룡강성의 벼농사면적은 6000만무에 달했으며 전성 량식재배면적의 30%, 중국 자포니카 총면적의 50%가량, 총생산량은 630억근이상으로서 중국 벼총생산량의 15%가량을 차지했다.
현재 북위52도(北纬52度) 대흥안령 호마구(大兴安岭呼玛区)에서도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세계 벼농사 력사에서 제일 북쪽경계까지 내려간 것이다. 벼농사면적이 100만무 넘는 현, 시가 11개, 50만무 넘는 현, 시가 29개에 달하는바 흑룡강성은 이미 쌀농사의 대규모 집중 생산지로 발돋움했다.
유명한 종자개발 전문가인 동북농업대학 최성환교수(조선족)는 "한랭지역에서 벼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흑룡강성의 가장 큰 성공이다"고 말했다.
정말로 흑룡강성은 건국 70년래 한랭지역 벼농사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특별취재팀 리수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