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별세했다. 향년 80세.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 '코피 아난 재단'은 이날 트위터에서 "매우 슬프게도 아난 전 총장이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고통이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다가가 깊은 련민으로 많은 이들을 어루만져 주었다"면서 아난 전 총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프리카계 출신 첫 유엔 사무총장이였던 아난 전 총장은 유엔 사상 처음으로 평직원으로 출발, 최고 수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특유의 카리스마뿐 아니라 평소 공손하고 절제된 언행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1938년 영국 식민지였던 가나 쿠마시에서 부족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여난 그는 가나 과학기술대 재학 도중 미국으로 류학했다. 미네소타주 매칼레스터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엔에서 그의 경력은 24세였던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ㆍ행정담당관으로 시작됐다. 케냐 나이로비와 스위스 제네바, 이집트 카이로 등의 유엔 기구에서 일선 행정 경험을 쌓았고 인사관리, 기획예산 책임자, 감사관 등 요직을 거쳐 1993년 부트로스 갈리 당시 사무총장에 의해 유엔평화유지군(PKO) 담당 사무차장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4년 후인 1997년 1월, 제7대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다. 유엔 입성 35년 만이였고 평직원 출신 첫 번째 사무총장의 탄생이였다. 이후 유엔 개혁과 에이즈(AIDS) 확산 방지, 세계 빈곤 퇴치, 아프리카 내전 등 지역분쟁 중재 등과 관련해 여러 업적을 남겼다. 2002년 사무총장 재선에 성공, 2006년 말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선 42년간의 유엔 생활을 마무리했다.
특히 1998년 유엔사찰단 문제 협의를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 사담 후세인과의 직접 협상을 한 것은 그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일시적이나마 이라크와 서방의 긴장을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선 "불법적이다"라면서 반대하기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그에 대해 "9ㆍ11 테러,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국제적 혼란의 시기에 유엔 수장을 지냈다"며 "량심과 도덕적 중재자로서 유엔과 자신을 내던졌고 평화유지군이 지킬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신개념을 창안해 유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아난 전 총장은 2013년 2월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은 내게 가장 암울했던 순간이였다. 내가 그걸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재임 시절인 2001년에는 노벨평화상도 유엔과 함께 공동 수상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 이 상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던 데다 노벨평화상 100주년 기념 수상자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컸다.
퇴임 직후인 2007년 창립된 세계 원로정치인 모임 '엘더스'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3년 이 단체 회장에 올랐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도 만들어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에도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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