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 ·English ·Партнеры ·
 
전체기사  |  흑룡강  |  정치  |  경제  |  사회  |  동포사회  |  국제  |  진달래 작가방  |  톱 기사  |  사설·칼럼  |  기획·특집 PDF 지면보기 | 흑룡강신문 구독신청
您当前的位置 : 조선어 > 동포사회
[특별기획 8] '불이 꺼지지 않는 경제천국'에 진달래가 피다
//hljxinwen.dbw.cn  2018-01-31 10:30:00

  광둥지역 조선족 10만여명, 한국인 4만여명

  조선족 오랜 시점에 성장해가는 모습 실제 보여

  한국인 사회는 퇴보한다는 우려도 나와 아쉬워

  (흑룡강신문=하얼빈) 공장의 불빛과 건설현장의 불빛으로 밤이면 더욱 빛나는 도시, 광저우, 선전, 둥관, 후이저우에 가면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경제의 저력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인민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고자 1970년대부터 경제특구로 지정돼 '불이 꺼지지 않는 경제천국'으로 자리 매김한 개혁개방 1번지로 불리는 광둥지역에 진달래가 피었다.

광저우 웬징루한국사업가  입구에는 큰 돌에 새긴 표시가 세워져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수봉 김호기자 

   누리에 진달래 만발

  광저우, 선전, 둥관, 후이저우를 중심으로 조선족사회와 한국인사회를 아우르는 한겨레사회가 형성됐다. 현재 불완전한 집계에 따르면 광둥지역 조선족은 10만여명 , 한국인은 4만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인이 최고로 많을 때는 5만명으로 추산했었다. 지금은 나가고 들어오고 10-20%감소한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광주우 조선족은 3만여명, 한국인은 1만여명, 선전 조선족은 5만여명, 한국인은 2만여명, 둥관과 후이저우조선족은 각각 1만여명, 이 두곳의 한국인은 합쳐서 1만여명 되는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선전지역의 한국기업은 1000여개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의 최북단지역에서 남쪽지역으로 처음으로 자리를 옮긴 조선족은 군에서 제대해 광둥지역에 배치받아 사업한 분들이다.1952년생인 이정렬씨 역시 이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선양 출생인 이씨는 1970년 만 18세 되던 해에 군에 입대해 광둥푸산비행장에서 근무했다. 1995년 7월 1일, 25년이라는 군부대 생활을 접고 후이저우에 있는 더사이그룹에 배치받아 규률검사위 부서기로 사업하다 2012년 퇴직했다.

  선전심업실업유한회사 김재광총경리 등 10여명 역시 선전에 진출한 1세대로 꼽힌다. 김씨 역시 1982년 공정병으로 선전에 파견되었다가 후에 공정부대 전체가 일반회사로 바뀌면서 선전에 남게 되었다.

광둥성조선족연합회 이영춘회장이 인터뷰중에 포즈를 취했다./이수봉 김호기자

  광둥지역에 조선족들이 많이 진출하게 된 계기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일본기업이 대거 진출하면서 일본어를 배운 조선족청년들이 많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광둥지역에는 헤이룽장성 계서, 계동, 밀산지역의 헤이룽장 출신들이 많다.

  ‘계서현상’으로 불리울 정도이다. 당시 계서, 계동지역에 일본어 학교가 10여곳 있었는데 여기서 일본어를 배운 청년들이 하나둘씩 선전으로 진출했고 그 연줄로 동년배들이 많이 진출했다.

  80후들이 2000년부터 대거 광둥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조선족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당시 일찍 진출한 사람들은 아파트를 구매하고 상대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싸움하는 조선족들이 일부 있었는데 지금은 싸우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현지인들이 조선족에 대한 평가도 괜찮아요”

  광둥성조선민족 연합회 이영춘(56.사진 )회장의 말이다.

  선전에 23년 체류한 한국인 정진배 광둥뉴스 발행인은 “선전 조선족들은 문화수준이 높고 앞서가고 생각들이 밝다. 다른 지역 교포들과 구분된다. 조선족들은 통쾌하다. 한 조선족기업인은 광저우 부근 판위한국학교 건설에 1000만위안을 기부했다. 초기에 만났던 사람들은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는데 지금은 수준이 높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선전서 견디지 못한다. 조선족들은 오랜 시점에 성장해가고 있다. 실제 보인다”며 높이 평가했다.

  반면에 “대도시 한국인들 비슷하다. 처음에는 꿈을 가지고 기대를 가지고 왔는데 지금은 퇴보하는것 같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또한 한국기업들이 인건비가 싼 동남아 국가로 이전하고 있는데 근무하던 한국기업이나 일본기업을 따라 동남아로 가는 조선족 청년들도 적지 않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대홍(오른쪽 첫번째) 전 지회장을 비롯한  월드-옥타선전지회 제4대 회장단이 송년회 모임을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다지고 있다./이수봉 김호 기자 

  조선족 사회를 리드하는 사람들

  광둥지역에도 조선족단체가 적지 않은데 광둥성조선민족연합회(회장 이영춘)와 기업인들의 모임인 월드-옥타선전지회와 광저우지회가 핵심역할을 하는것으로 알려졌다.연합회 산하에는 청년협회, 여성협회, 노인협회(4개 분회 있음) 등이 있다.

  연합회는 2004년 8월 8일 정식 설립됐다. 당시 조선족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현지인들에게 비쳐진 조선족들의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이를 바로 잡기 위해 몇몇 조선족기업인들이 나서 자발적으로 연합회를 조직해 조선족사회 정화작업에 나섰다. 그간 회장이 몇번 바뀌었어도 출범할때의 취지는 바뀌지 않았다.

  연합회는 조선족사회의 단합과 화합을 추진하기 위해 2년에 한번씩 선전에서 조선족운동회를 조직하는데 만여명 조선족들이 모여온다고 한다. 이런 자발적으로 조직되는 운동회를 통해 조선족들이 상호 교류하고 우의를 돈독히하고 있으며 현지인들한테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월드-옥타는 세계한인무역협회인데 조선족 기업인들과 한국기업인들의 비즈니즈를 위한 단체이다. 선전지회( 지회장 박성혁)와 광저우지회(지회장 안금태)가 활발하게 활동하며 비즈니스 기회를 많이 창조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9년 설립한 선전지회에는 66개 회원사가 있는데 회원사들을 위해 더 큰 세계시장 진출의 길잡이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지회장 인사말에 적었다. 그러면서 월드-옥타 중국 선전지회 회원사와 손을 잡으라고 호소한다. 또 실력있는 회원사들이 여러분의 진정한 사업파트너가 될수 있음을 자신하다고 적었다.광저우 지회에는 회원사가 70여개 되는데 한겨레사회의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청년협회(회장 문성국)는 2014년 설립됐는데 현재 회원이 800여명 된다.

  문 회장은 “청년협회 회원가운데서 7-8%가 창업한것으로 추산한다”며 “광둥지역에 45세 미만 청년이 2-3만명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청년협회 회원 구성원을 보면 85후가 주류를 이루는데 여자 회원이 2/3, 남자 회원이 1/3된다. 매년 5-6차례씩 각종 활동을 조직하는데 매번 200여명이 참석한다고 한다. 선남선녀 모임도 조직해 조선족청년들이 배우자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

광둥여성협회 회장단 일부 성원들이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출발을 다지고 있다./이수봉 김호기자  

  “만나서 즐겁게 놀자. 친구가 없다 . 필요한 비용이 없다. 청년협회를 찾아라. 일자리도 찾아준다. 힘들면 찾아라”

  청년협회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아주 현실적이다.

  여성협회(회장 정금자)도 적지 않은 활동을 조직해 여성들간의 화합을 도모하고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90명 여성회원들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사회로 진출하는데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교류와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이로써 여성회원들의 자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경제는 민족사회 발전의 디딤돌

  민족사회의 발전은 경제발전을 떠날수 없다. 광둥지역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조선족 경제인들은 민족사회 발전의 핵심이며 구심점 역할을 한다.

  광저우는 의류 무역이 주류를 이루고 둥관은 제조업, 선전은 전자가 주류를 이룬다. 광둥은 이처럼 지역별로 큰 차이가 있다.

  광둥지역 조선족들의 초창기 창업은 서비스업에 집중되었다. 식당, 노래방, 식품가게, 민박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광저우시에는 웬징루라는 코리아타운이 있는데 여기에는 조선족들이 경영하는식당, 노래방, 식품가게 등 한글간판이 300여개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7년부터 한글간판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중국 최대의 물류, 유통의 집산지에 걸맞게 물류업체가 수두룩하다. 창고와 전화만 있으면 물류회사를 경영할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둥광시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우는 거리에서 한글 간판을 쉽게 볼수 있다./이수봉김호기자 

  1998년부터 광저우에서 물류회사를 처음으로 경영한 김철룡(43. 사진)씨는“광주 물류를 혁신적으로 개혁한데서 많이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3년전부터 물류가 잘 안된다. 그래서 3,4년 전부터 프랜차이즈로 바꾸었는데 한국의 치킨이나 떡복이, 비빔밥 등 젊은 층이 좋아하는 점포 6개 정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연변 화룡출신인 김씨에 따르면 1999년 광둥성에 조선족물류회사가 3-4곳밖에 없었는데 후에 많이 늘어나 최고 많을 때는 200여곳에 달했다고 한다.현재 조선족물류회사가 150곳, 한국인물류회사가 50곳 된다고 한다.조선족물류회사는 언어우세 때문에 한국, 일본 관련업무에서 우세가 있다고 한다.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소비품을 사용안하면 안되기 때문에 조선족과 한국인들이 협력할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또 그래서 살아 남는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삼구김치와 고향 연변 쌀의 광둥총판을 맡아 판매하고 있었다.

  둥관은 제조업의 ‘천국’이다. 이전의 매춘도시로 불리웠던 불명예를 벗어던지고 제조업천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광저우, 선전의 제조업 기업들이 속속 둥관으로 이전하고 있다.

  우리 취재팀은 둥관에 위치한 예지아과학기술그룹유한회사를 방문했다. 헤이룽장성 찌시(鸡西) 출신인 남기학(56) 이사장이 넘겨주는 명함을 들여다 보니 회사가 7개나 되었다. 남 이사장이 직접 우리를 안내하며 회사 전체를 돌아보았는데 1시간반이 걸렸다. 한참돌고 나니 땀이 나고 다리맥이 풀렸다.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초창기때의 금형, 사출생산에서 벗어나 지금은 거금을 투자해 첨단설비를 구입하고 첨단제품 생산에 매진하고 있었다. 노동밀집기업의 늪에서 벗어나 첨단기술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2016년 3억5천만위안의 매출을 올렸는데 지난해에는 이보다 더 늘어났다고 한다. 올해 첨단제품을 생산하면 매출이 배로 늘어날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화합을 다지는 한민족여성골프동호회가 지난해 11월 중순 출범식을 가졌다.

  광둥지역에는 이런 규모를 갖춘 조선족기업이 적지 않은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이 ‘공업의 꽃’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조업은 경제의 핵심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족 제조업이 튼튼해야 조선족 경제발전이 지속 가능하다는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전은 전자관련 조선족기업이 적지 않다. 감시카메라를 생산하는 이대홍 이사장, 그리고 각종 고급이발기를 생산해 전부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하는 지용덕 이사장, 전자 관련 회사 남화섭 이사장, 최용균 이사장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수 있다. 가전, 광전자, 신소재, 드론 등 분야에 뛰여들어 연간 몇억위안의 매출 실적을 올리는 조선족기업인들은 민족경제발전의 무명영웅 임에 손색이 없다.

  풀어야 할 과제, 산 넘어 산

  광둥지역 조선족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자녀 교육과 안정이다. 조선족사회는 유동성이 많고 불안정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찍 광둥지역으로 진출한 조선족들은 그나마 아파트 가격이 쌀때 살림집을 마련했기에 안정한 생활이 보장된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 값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내 집마련이 ‘하늘의 별따기’ 신세기 됐다. 그래서 광둥지역을 떠나는 조선족도 적지 않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인 역시 꿈을 가지고 왔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꿈을 접고 보따리를 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겨레 사회가 발전하려면 안정이 우선시 돼야 한다.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최대 쟁점이다. 전통 거주지역인 동북을 떠나면 민족학교가 없어 자녀들이 우리 말과 우리 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 취재팀이 가는곳마다 가슴아프게 들었던 안타까운 얘기이다. 광저우한국총영사관에 따르면 광둥지역에 한글학교가 13곳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학교는 주말학교이다. 전통교육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녀들을 전부 집부근의 한족학교에 보낸다. 자연히 우리 말과 우리 글을 잊어버린다. 한글주말학교에 다니기는 해도 택 부족이다.

조선족과 한국인이 다소 집중된 광저우 향설상업거리 야경/ 이수봉김호기자

  둥관에 위치한 은혜학원 김혜옥원장은 “우리 아이들이 새로운 걸 배우려온것이 아니라 자기것을 찾으려 왔다”고 일침을 놓았다. 부모님들 한세대의 ‘희생’으로 부를 쌓았지만 그 자녀들은 ‘자기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을 탈할것이 아니라 어른들을 탈해야 할것이다.

  조선족 유지인사들이 대도시에 조선족국립학교를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산 넘어 산’이다.

  또 하나의 격변의 40년이 지난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때도 진달래가 만발해 있을까

  /본사 특별취재팀 이수봉 김호 진종호 김련옥 이흔기자

· 중국의 전면 초요는 세계평화와 발전에 대한 거대한 기여
· 조선 핵문제의 효과적인 방법은?
· “향항 사안 개입하는 ‘검은손’ 떼라”
· 북경, 앞으로 5년 내 1천억원급 상권 2~3개 구축한다
· 중·아 교역액 년 평균 4.5% 성장
· 중국가 여러 나라 대표 인권이사회서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 원주민 인권 개선 촉구
· 똑똑한 신에너지차, 중국 도시 풍경 이렇게 바꾼다
· '중국 예술의 메카' 798예술구서 아트페스티벌 개최
· 제14회 전국체전 폐막식 시안서 열려
· 교통 시스템 파고드는 5G, 빅데이터, AI
회사소개   |   신문구독   |   광고안내   |   제휴안내   |    기사제보    |   편집기자채용   |   저작권규약
주소: 중국 흑룡강성 할빈시 남강구 한수로 333호(中国 黑龙江省 哈尔滨市 南岗区 汉水路333号)
Tel:+86-451-87116814 | 广播电视节目制作经营许可证:黑字第00087号
(黑ICP备10202397号) | Copyright@hljxinwen.cn.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