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의 입에서는 또 이야기가 나온다.
“삼대가 화목하게 사는 한 가정의 젊은 며느리는 저녁 무렵,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올때쯤이면 꽃을 한송이 들고 문가에 서 있다가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두손으로 꽃을 선사하면서 ‘이건 사랑의 선물이래요.’이랬답니다. 매일같이 며느리를 지켜보던 시어머니는 너무도 부러운 나머지 자기도 한번 령감한테 잘 보이려고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다짐했답니다. 마침 아들, 며느리는 손군들을 데리고 어느 외지로 놀러갔습니다. 그러자 로친은 령감한테 선물을 줄 좋은 기회가 왔구나 하고 기뻐했지요. 그런데 어떤 선물을 주면 령감이 좋아 할가 궁리를 하던중 묘한 선물 하나가 머리에 떠올라 ‘옳지!’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까짓 꽃보다도 우리 령감이 제일 좋아하는건 내 이 몸뚱이야.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던겁니다. 그래서 로친은 밖에 나갔던 령감이 돌아올때쯤 시간을 맞춰 몸에 실한오리 감지 않고 문가에 서서 수줍은 처녀애들처럼 발가락을 꼬물락거리며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방안에서 무슨 연극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덜커덕 문을 열고 방안으로 한발 들여놓던 령감이 로친을 보자 그만 초풍할 지경으로 화들짝 놀랍니다.
‘엉? 이 로친이 갑자기 치매가 왔나? 이거 웬일이냐?’
‘오늘 우리 령감님께 드리는 저의 선물이래요.’
로친이 이러면서 얼굴을 붉히자 령감은 홀딱 벗어 알몸이 된 로친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한참이나 훑어보다가 한마디 꺼내는 말이
‘글쎄 선물이 좋기는 좋은데 다리미질 좀 해야겠구만’ 이래더랍니다.”
대머리의 육담에 또 와- 하고 웃음보가 터진다.
그야말로 대머리의 입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만들어내라 해도 그냥 술술 나올 희한한 웃음공장이였다.
량반 동네
얼음에 박 밀듯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대머리의 육담에 동창들은 두손바닥으로 땅을 두드리며 이리 쓰러지고 저리 늘어지고 하는 판인데 갑자기 강현수 허리에 찬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오- 오촌장이구만, 안녕하세요?”
“안녕이구 개나발이구 강기자가 참 영광스럽게 됐소!”
“?... ...”
“강기자가 우리 능달촌의 상주가 되였단 말이여!”
“상주? 무슨 상주?”
“아니 필을 들고 다니며 밥 벌어먹는다는 사람이 초상 치르는 집의 주인도 모르나?”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죽기는 누가 죽고 나는 또 어째서 상주란 말이요?”
“누가 죽었다구? 그건 또 웬 소리냐?”
강현수가 핸드폰으로 떠드는 소리에 동창들은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래서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현수 곁으로 몰려드는데 떠들지 말고 조용들 하라고 강현수가 손시늉을 한다.
“강기자가 우리 능달촌을 신문에다 개망신시키는 바람에 당장 죽어버리겠다고 나자빠지는 사람들이 숱해란 말이여!”
“?!... ”
“그러니 당장 와서 죽은 사람 메 나르는 상여를 멜 준비를 하란 말이여!”
“오, 듣고 보니 오촌장은 내가 며칠전에 신문에 실은 ‘한심한 량반동네’란 그 기사를 가지고 떠드는구만. 그런데 오촌장, 그 기사가 어디 잘못됐는데?...”
“어디긴 개코같은 어디야. 전부 다 거짓말로 도배를 한거지.”
“거짓말로 도배했다? 허! 그럼 오촌장이 한심한 거짓말쟁이구만. 내가 쓴 그 보도중의 허다한 사실은 당신이 직접 제공해준거고 또 내가 취재할 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당신이랑 향의 김향장이랑 함께 다니지 않았는가?!”
“그따위 변명 같은 소리는 듣기 싫고. 이 일을 작게 만들려거든 당장 신문에다 기사가 잘못됐다는 글을 다시 실으란 말이여. 안 그러면 말이여...”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죽는 사람은 죽고 동네에 산 사람은 아이고 늙은이고 다 끌고 신문사에 가서 신문에다 공개적으로 잘못했다고 반성할 때까지 드러누워 있겠단 말이여!”
“마음대로 해보시구려!”
“하라면 못할가봐?”
“글쎄 오촌장 밸이 꼬이는 대로 하란 말이요.”
“좋다. 그래 어디 보자!...”
강현수는 더 듣지 않고 핸드폰을 홱 꺼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 오촌장인지 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죽는다 산다 하며 란리를 번지는거야? 엉?...”
동창들이 황황해서 강현수를 쳐다본다.
“별일 아니야, 열흘전에 내가 칠대하시 교외 능달촌이란 마을에 가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하나 신문에 낸걸 가지고 저렇게 떠드는거야.”
“그 동네사람들이 무리 지어 자네 신문사로 찾아오겠다며?”
“올라면 오라지 뭐, 없는 말 한건 한마디도 없고 또 총편들의 동의를 거쳐 낸건데 뭐. 내 신문사 기자노릇하며 저런 사람 숱해봤어. 우뢰만 요란스레 울었지 비는 없거든. 제 따위 신문사로 감히 와내? 오지도 못해!”
분해서 씩씩거리던 강현수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라 몰켜선 동창들속에서 최윤희를 찾는다.
“지금 전화로 떠들던 그 오촌장이란 사람이 윤희를 잘 안다고 하더구만.”
“칠대하라면 석탄나는 곳이 아니래요? 그곳에 전 아는 사람이 없는데요. 그분 명함이 뭐래요?”
“오만필!”
“어머! 그 사람이 칠대하란 곳에 가 있어요? 그 사람 입으로 저를 잘 안다고 하던가요?”
“내가 목단강민족사범학원 조문전업을 졸업했다고 하니 윤희이름을 꺼내면서 아는가고 묻더구만. 옛날 앞뒤집에서 살았다던가...”
“그럼 윤희! 저 강현수를 도와 그 오만필인지 뭔지 하는 촌장에게 전화한통 쳐주게나. 옛 정을 봐서라도 우리 동창생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이야.”
놀라운 전화한통에 어리둥절해지던 동창들이 좋은 방도라도 생긴듯 이렇게 떠든다. 그런데 최윤희는 쌀쌀하게 머리를 가로 젓는다.
“전 그 사람과 깊은 인연이 없어요. 그저 서로 이름이나 기억하고 있을뿐이래요.”
“괜찮아, 모두 놀라지들 말라구. 나는 이런 일은 숱해 겪어봐서 잘 알아!”
강현수가 도리여 동창들을 위로한다.
“그럼 현수 자넨 도대체 어떤 기사를 썼길래 아래 사람들이 그렇게 야단치는 건가?”
“그제 신문에 나갔어. ‘한심한 량반동네’란 제목으로 사회면에 반면 차지하게 썼고 그 밑에 평론문장도 내가 직접 달았어.”
강현수는 자기가 쓴 그 기사의 내용을 동창들에게 이야기한다...
능달촌이란 칠대하시에서 30리길 상거하고 향정부 소재지에서 1리 떨어져있는 조선족마을이다. 당지 호적에 있는 호수는 207세대인데 최근년간 모두 뿔뿔이 밖으로 나가고 지금 마을에 몸담고 있는 호수는 41세대밖에 안된다. 그래서 마을 소학교도 수년전에 벌써 페교 되였고 학생들은 칠대하시에서 7리 상거한 길승이라고 하는 조선족촌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촌의 수전면적은 370헥타르나 되는데 마을에서 농사짓는 호는 한심하게도 1호밖에 없고(그것도 2헥타르) 나머지 논은 몽땅 린근 한족들에게 양도주었는데 20년, 30년 장기계약에 헐값으로 마구 넘겨준것이 대부분이였다. 그러면서도 오촌장의 말대로 ‘민족심을 지켜’ 한족들은 한호도 마을에서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여 벽돌집이고 초가집이고 주인 없이 텅텅 비여있는 집들이 수두룩했다.
강현수는 아까운 땅을 마구 버리는 촌사람들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고 땅은 개방하고 마을만은 꽁꽁 봉쇄하고 있는 촌간부들의 생각에도 제한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현재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밑천이라면 하나는 땅이고 하나는 입인데(조선말과 한어를 잘하는 이중언어) 동북 3성에 널려있는 조선족농촌의 땅을 다 합치면 어마어마한 재산이 된다. 그런데 능달촌 사람들처럼 한두헥타르 되는 자기한테 차례진 토지만 눈에 보이다 보니 별것 아닌것 같아 마구 한족들에게 넘기거나 20년, 30년 계약으로 ‘팔아 버리고’있다. 이렇게 나가다는 조선족의 엄청난 재부인 이 땅은 조만간에 거덜이 날건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중국의 중경이라는 곳에서는 지금 땅도 주식회사처럼 주식제를 한다는데 우리도 하다못해 주주로 되면 안되는가?
다음으로 능달촌의 간부들은 촌민들이 일손이 없어 한족들에게 토지를 양도해 줄지라도 1년에 한번씩 단기계약을 맺도록 엄격한 제도를 내와야 할것이고 그에 따른 감독이 따라가야 한다는것이다. 또 덮어놓고 마을을 봉쇄하는것도 절대 상책이 아니다. 능달촌이 현재는 41호가 살지만 앞으로도 점점 더 줄어들 기미가 보이므로 이렇게 나가다는 마을조차 없어지기 십상팔구다. 그런데 무턱대고 억지로 버티기보다는 칠대하시에서 7리 떨어진 교통 좋고 환경 좋은 길승촌에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은가. 이것이 바로 린근의 몇개 촌이 모조리 황페해지다가 무너지기보다는 새로운 한마을에 사람들이 몰리는 집중촌 모식이다. 그리고 땅은 버리지 않아 능달촌사람들은 농사는 제 땅에 와 지을수 있으므로 땅도 살리고 훌륭한 마을도 하나 새롭게 살아나지 않겠는가? 이것이 강현수가 보도 뒤에 쓴 론평이였다.
‘한심한 량반동네’란 기사는 기실 지금 조선족 마을들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전형화 한것이였다.
능달촌은 날이 갈수록 마을이 스산하고 황페해지지만 한국 로무바람에 호주머니에 돈들이 있어 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옛날 량반이 왔다 울고 갈 지경으로 호사스러웠다. 이 동네엔 자전거가 없어진지가 여러 해된다. 1리길 되는 향정부소재지로 가도 전부 택시 놀음이다. 그런가 하면 41호가 사는 동네에서 아침밥을 절로 해먹지 않는 집이 14호나 된다. 이들은 전부 향소재지에 있는 음식점을 정해놓고 한달에 한번씩 결산을 한다.(한달에 제일 적게 먹는 사람이 9백원) 그리고 집 이영을 하든 울바자를 하든 전부 일군을 불러다 쓴다. 지어는 겨울철에 곡괭이 두세번 휘두르면 될 바깥 변소 청소도 한번에 30원씩 퍼주며 일군을 불러댄다. 그뿐만 아니다. 그렇게 사치스럽다 보니 저녁이 되면 더 볼만하다. 이 촌의 로인들은 ‘우리 집 며느리는 왜 바람피울줄 모르나?’하며 바람을 피울줄 모르는걸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젊은 부부 둘중에 하나는 한국에 갔으므로 어두운 밤이 오면 ‘사랑의 동네’로 변한단다.(한국은 자본주의 나라이고 훨씬 앞서 개방이 되였으므로 그 나라에 가있는 남편이나 안해는 보나마나 더 할거라는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당당한 리유란다.) 그래서 능달촌은 유일하게 회사가 하나 있는 동네라고 린근에서 소문이 자자한데 그 회사의 이름이 ‘왈바궁쓰(玩吧公司,놀음회사)’라고 한다...
“잠간만 내 전화 하나 치고...”
동창들에게 한창 자기가 신문기사로 펴낸 능달촌이란 조선족마을을 소개하던 강현수는 다급히 또 핸드폰을 꺼내든다.
“여보세요. 김향장이지요?...예, 안녕하세요...방금 오촌장이 전화가 왔는데 절보고 능달촌의 상주가 되였다고 합니다....김향장도 신문기사를 보았다구요?!...그렇지요. 제가 쓴 기사에야 흠잡을데 하나도 없지요. 그런데 오촌장이 왜 그렇게 란리랍니까?...다른 마을들도 다 이런데 왜 자기네 능달촌만 신문에다 굉장하게 망신주는가구요?... 닭을 잡아 먹이고 개를 잡아 먹였더니 좋은 말은 안 하고 전탕 망신만 시킨다구요?...예, 김향장에게 솔직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쓴 보도는 하나 흠잡을데 없지만 인심 좋은 능달촌사람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은것만은 저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예, 예, 감사합니다. 그럼 김향장이 이 일을 잘 처리해 주십시오. 예- 들어가세요.”
강현수는 귀에서 핸드폰을 내리더니 후-하고 긴 한숨을 내쉰다. 오촌장한테는 큰소리 떵떵 쳤지만 그래도 은근히 속으로는 긴장했던 강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