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장은 주먹만큼씩 큰 둥근 자갈을 촘촘히 땅바닥에 깔았고 비를 막고 해빛을 가리우도록 네 귀에 기둥을 박고 대형 양산 같은 풍천을 허공에 높이 드리워 하늘에선 해빛이 자글자글 내리쬐여도 그늘이 지고 시원했다. 그 안에 휴식하고 음식먹기 좋도록 식탁이며 참나무의자들이 줄느런히 놓여있었다.
동창들이 야식장에 모여오자 왕주임은 복무원들을 시켜 주스며 수박이며 기타 과일들을 날라오게 했다.
“야, 동창생이 대학교총장이니 우린 이번에 귀빈대접을 톡톡히 받는구나.”
곁에서 맴도는 복무원들이 깍듯이 부어주는 주스를 마시며 동창들이 하는 소리다.
야식장 바로 서쪽은 아담하게 만든 수영장이 있고 북쪽과 동쪽은 역시 검푸른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자연미와 인공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동창들이 참대나무의자에 앉아 잠간 휴식을 취하자 강현수가 분주스레 지휘를 해댄다. 자갈로 깐 땅바닥 사이사이로 모여 앉아 놀기 좋도록 반듯한 돌들이 널려있었는데 강현수는 대머리랑 뚝배기랑 동원하여 그 돌들을 들어다 둥글게 큰 원을 짓게 하고 동창들을 그 돌우에 둥그렇게 모여 앉게 하였다. 이제 성만이와 송옥이가 돌아오면 보배찾기에 뒤따르는 오락을 놀 참이였다.
그런데 송화강공로대교 남쪽에 있는 거리 가까운 상점들에 가서 인츰 상품을 사가지고 돌아온다던 성만이와 송옥이가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백일호는 이때 자기가 전문용으로 타는 승용차의 운전기사가 야식장으로 걸어오는걸 보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 사이 9시 20분이 되였었다. 10시부턴 대학 총장사무회의에 참가하기로 약속되여 있었다. 그래서 동창들에게 오전만은 청가해야겠다고 사정하고 떠나려고 하는데 강현수가 백일호의 팔목을 꼭 잡았다.
“반장이 이렇게 등 돌리고 훌 떠나면 아니 되는거지. 그대들, 안 그런가?! 회의 가는건 말릴수 없는 일이지만 노래 한곡 부르든지 아니면 장기대로 무슨 절목 하나는 하고 가야 하는거 아닌가?!”
“맞다, 맞아!...반장 절목 하나 하고 가!”
원을 그은듯이 둥그렇게 둘러앉은 동창들이 절주있게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해댄다.
“반장! 반장!...”
백일호는 강현수한테 끌리워서 그런 한복판에 들어와 섰다. 동창들이 같이 서도 머리 하나는 더 큰 백일호인데 모두들 앉아서 올리 쳐다보니 빙 두른 울바자안에 전선대 하나 세워놓은것처럼 하늘을 찌를듯 더 아츠랗게 길어 보였다. 과연 조선족들 속에서는 보기드문 거인이다.
“이 사람들 참, 갑자기 무슨 절목을 하라구 이러는 건가?”
백일호는 난감해서 얼굴을 붉히며 마른 손바닥을 비벼댄다.
“그럼 구금자하구 결혼할 때 부르던 노래를 하라구!”
“이거참, 내가 노래할줄 모르는거야 다들 잘 알지 않아?!...그럼 쥐꼬리만한 짧은 유머 하나 하지.”
백일호는 동창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짧은 이야기를 한토막 꺼낸다.
“여기는 정신병원이네. 정신병환자 한사람이 세수하는 대야에다 물을 떠놓고 거기다 낚시질하고 있는거네. 이때 지나가던 의사가 그 환자의 모습을 보고 하도 우스워서 ‘물고기 몇마리 낚았습니까?’하고 묻는데 그 환자는 곁에 온 의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두 손으로 낚시대를 꾹 움켜쥔채 그 대야안의 물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판이네...
한시간쯤 지나서 의사가 다시 그곳을 지나가게 되였는데 그때까지도 그 환자는 꼭 같은 자세로 골똘히 대야의 물만 들여다보고 있었네. 그래서 ‘지금쯤은 물고기 몇마리는 낚았겠지요?’하고 의사가 또 물어보는데 그럴 때 이 환자가 의사한테로 고개를 돌리며 픽-하고 쓴웃음을 지어보이네. ‘당신이 정신병자 아니오? 이 세수대야에서 어떻게 물고기를 잡는단 말이오!’ 환자가 의사에게 하는 말이였네.”
와- 폭소가 터진다.
“됐지?! 내 절목은 끝났네.”
백일호는 팔을 마구 저으며 도망을 간다. 그러는 백일호를 구금자가 불러세운다. 승용차 안에 넥타이와 양복이 있으니 목이 벌어진 흰 적삼 웃 단추도 잠그고 양복도 입고 머리에 쓴 그 태양모도 당장 벗으라는 분부였다.
“야, 야, 금자 네만 남편이 있니? 시샘이 나고 질투가 난다. 너무 간사하게 굴지 말라야!”
녀성들이 구금자를 손가락질하며 한바탕 란리다.
“나비가 조렇게 간지르니깐 육중한 코끼리도 좋아서 코를 벌름거리는 거겠지.”
남성들도 구금자를 보며 떠들어댄다.
그때까지도 상품 사러 간 성만이와 송옥이는 오지 않는다.
“이놈들은 어디가서 물건을 만들어 오나? 왜 이리 늦어?”
“혹시 상품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어느 호텔에 들어가 둘이 끌어안고 한잠 자는거 아니야?”
동창들이 눈먼 욕을 퍼붓는다.
“자, 조용! 상품 사러 떠난 시간을 보면 이제 둬시간정도밖에 안됩니다. 지금쯤 성만이가 차를 몰고 저 송화강 다리를 넘어오고 있을겁니다. 그래서 이 ‘앉으나 서나’가 생각을 했는데 자, 그대들! 방금 우리 반장이 사색을 던져주는 묘한 유머 한토막 하고 가듯이 지금부터 매 사람마다 한컬레씩 재미나고 우스운 이야기를 합시다. 제일 우습고 재미나는 이야기를 한 사람에겐 1등상으로 가장 좋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백일호의 말대로 어떤 파티에서나 그때그때 분위기를 파악하며 활기 차고 기분 나게 활동을 이어가는 사회자로는 ‘앉으나 서나’ 강현수가 제격이였다.
“그대들, 우리의 위대한 대머리 작가님, 리수길부터 구수한 육담이 나오겠습니다. 뜨거운 박수-!”
“박수 따위는 필요 없고 모두들 배꼽하고 홍문건사나 잘하시구려. 웃다가 잘못하면 앞으로는 배꼽이 터져 나오고 뒤로는 배설물이 국수오리처럼 밀밀 나오기 쉬우니깐.”
강현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둥그렇게 원을 친 동창생들의 한복판으로 대머리가 번들거리는 이마를 슬슬 만지며 스스럼없이 나선다.
“먼저 수수께끼 세개를 내겠습니다. 첫번째 수수께끼는 이 자리에 계시는 성별이 ‘녀’자가 붙은 분들만 알아 맞추시구려. 그런데 이건 빨리 알아 맞추는 수수께끼여서 내 말이 떨어지면 즉시 대답해야 합니다 그려.”
대머리는 둥글게 둘러앉은 그 속에서 무우를 솎아내듯 녀성들만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악수를 청한다. 마치도 명가수가 무대우에서 관중석으로 내려와 관중들과 악수를 청하는 그런 장면을 보는것 같다.
“으흠- 그럼 시작합니다 그려. 한가정에 ‘사랑해요’와 ‘안사랑해요’란 두 쌍둥이 자매가 있었수다. 어느날 아버지가 물었수다. 너희들 두 자매중 하나는 군대를 가야하고 하나는 대학으로 가야 할것 같은데 누가 어디로 가겠느냐?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입이 빠른 동생 ‘안사랑해요’가 제꺽 ‘저는 군대!’하고 손을 들었대유. 그렇다면 대학으로 가야 할 자매는 누굴가유? 시-작!”
대머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마치도 약속이나 한듯 녀동창들이 동시에 ‘사랑해요!’하고 한입처럼 웨친다.
“그러면 그렇겠지, 우리 반 녀성들은 한결같이 이 대머리를 사랑한다니까.”
“야앗, 저 대머리한테 우리 몽땅 속혔구나!”
그제야 녀성들은 대머리의 속임수에 걸려든줄 알고 무릎을 치며 분해서 야단이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주영주도 웃음을 참지 못해 동그스럼한 어깨를 달싹거린다. 어제 밤 숲속에서 대머리와 즐겁게 놀던 일이 눈앞에 삼삼하다.
“으흠- 그럼 두번째 수수께끼가 나온다. 오늘처럼 날씨 좋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노을이 곱게 물든 저녁무렵, 저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송화강변에서 꽃같은 청춘남녀가 나란히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대. 그런데 갑자기 고약한 모기 한마리가 앵-하고 날아오더니 처녀가 입고 있는 짜른 치마속으로 쌩-하고 들어가는거야. 자, 이제부터 수수께끼의 물음이 나오는거야. 그렇다면 모기는 어디를 물었겠는가?”
“어디를 물기는 뭐, 처녀의 허벅지를 물었겠지.”
“아니야.”
“물으나 마나, 녀자의 그곳을 물었다는 말이겠지 뭐.”
“그것도 아니야.”
“그럼 뭐야? 어데도 물지 않았다는 말이야?”
“다들 모르겠지? 그 모기란 놈은 남자의 손등을 꼭 물어 놓은거야.”
“남자의 손등?”
“아직도 모르겠어? 남자의 손이 녀자의 치마속에 들어가 있었지 뭐야.”
와!-
“야, 그 답은 진짜 묘하다! 저 대머리한테서 정말 묘한걸 하나 배웠다. 이제 집에 가선 나도 써먹어야지. 또 세번째 수수께끼 얘기해봐.”
동창들은 수수께끼가 너무나 생각밖이면서도 리치에 신통히 들어맞는다면서 신기해서 어쩔바를 모른다.
“세번째 수수께끼? 너무 지루하지 않아?”
대머리도 신이 났지만 짐짓 안 그런척 시치미를 뗀다.
“에헴- 우리 모두가 조선어를 배운 사람들이 아닌가?! 그럼 말이야, 다섯 글자로 바로 읽어도 말이 같고 거꾸로 읽어도 말이 꼭 같은걸 골라들 보게나.”
“갑자기 그런 말을 어떻게 생각해내나?”
“뭔가? 우린 모르겠어. 이번에도 답을 바로 알려 달라구.”
“‘자지 만지자’ 다섯 글자 맞지?! 바로 읽어도 ‘자지 만지자’고 거꾸로 읽어도 ‘자지 만지자’ 옳지?!”
“야, 두손 바짝 들었어. 저 대머린 정말 못 말린다. 못 말려...”
“그런데 말이야, 지금처럼 다섯 글자를 만들수도 있고 또 여섯 글자로 늘일수도 있으며 일곱 글자, 여덟 글자 그냥, 그냥 늘궈붙일수 있단 말이야. 어디 한번 보라구. ‘자지만 만지자’ 여섯 글자 맞지?! 바로 읽든 거꾸로 읽든 꼭 같고?!... 또 ‘자지만 꽉 만지자’ 이번엔 몇글잔가? 그치 일곱 글자지!... ‘자지만 살살 만지자’ 몇자야? 여덟 글자 아니야?!...”
“나원, 저 대머리의 입은 이제 보니 전탕 오염투성이구나.”
너무 웃어 허리건사를 못하고 돌아가던 뚝배기의 입에서 불쑥 이런 말이 튕겨 나온다.
“뭐라? 오염 투성? 여보시오. 뚝배기선생? 그럼 육담은 전부 오염이란 말씀이슈?”
대머리가 느물느물 웃으며 뚝배기한테 걸고든다.
“그럼 당신이 저녁마다 마누라와 침대우에서 허리춤을 추는것도 더러운 오염이겠구만유? 당치 않은 말씀은 좀 삼가하는게 좋겠슈. ‘무릇 존재는 모두 리유가 있다’고 어느 철학가가 말씀하지 않았슈?! 공자님은 식과 색은 인간의 본성이라 하셨수다. 이 세상 인간들이 먹고 자고 그 다음엔 아마 남녀간의 성생활일겁니다유. 그래서 그 성을 둘러싼 사랑이란 주제는 영원한것이고 또 성과 사랑이 영원하다면 이 육담이란것도 영원히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가유?
존경하는 뚝배기선생님! 문제는 누구한테 어떻게 꺼내냐가 우리 어른들과 지성인들이 선택해야 할 숙제지유. 당신처럼 그 중간의 방치를 나어린 딸애 앞에 체면 없이 꺼내 보인다면 그건 오히려 문제가 되고 쟁론거리가 되겠지만유. 지금처럼 쉰 고개를 넘었거나 그 고개에 턱거리를 하고 있는 우리 동창들 앞에서 육담을 하는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웃음이란 보약을 선물로 주는것과 같다구유...그런데 뚝배기선생이 ‘오염’이라고 구린내 풍기는 말씀을 함부로 던지니 이 대머린 섭섭한 대로 이젠 그만 물러나겠습니다.”
“아니야, 아니, 롱담이야, 나원,”
대머리가 서운한척 손을 내저으며 자리에 들어가 앉으려고 하자 급해난 뚝배기가 달려가서 팔을 쥐여 당기며 다시 대머리를 동창들 한 가운데 세워놓는다.
“허허, 그럼 계속 해야 하는건가? 이 대머리바람에 여기 앉은 어떤 녀성들이 바지에 오줌쌌다고 방치 들고 접어들면 그건 또 어떻게 감당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