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속놀이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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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락적특성으로하여 예로부터 장기와 관련한 흥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있는바 그 일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리조왕실의 집안이였던 서천령이 매일 장기로 세월을 보내다가 수가 높아감에 따라 이 세상에는 자기의 적수가 없다고 자처하게까지 되였는데 그 소문이 온 나라에 퍼지였다. 군역살이를 떠나게 될 한 늙은 농민이 이 소문을 듣고 그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주고싶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던 끝에 좋은 꾀를 생각해내였다. 늙은 농민은 군역살이를 가는 길에 자기가 먹이던 말 한필을 끌고 서천령을 찾아가서 하는 말이 ≪공께서 장기를 썩 잘 두신다니 소인과 한번 대전하여 제가 지면 이 말을 바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서천령이 응락하자 장기가 시작되였는데 늙은 농민은 세번 두어 두번 지자 선뜻 자기 말을 내주고 ≪을을 잘 먹여주소서. 후일에 군역살이기간이 끝난 다음 다시 찾아와서 또 한번 장기를 두고 제가 이기면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장기에 워낙 지신이 있는 서천령은 ≪좋도록 하게≫하고 선뜻이 대답하였다. 서천령은 말을 잘 먹여 살찌게 하였는데 때마침 군역살이를 마친 늙은 농민이 다시 찾아와서 장기를 청하였다. 장기가 시작되자 서천령을 ≪좋도록 하게 ≫하고 선뜻이 대답하였다. 장기가 시작되자 서천령은 늙은 농민의 수에 완전히 제압되여 련속 3전3패로 패배를 당하였다. 늙은 농민이 말하기를 ≪소인은 이말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그런데 제가 군대에 복무하는 기간에 누구도 길러줄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중 마침내 공의 댁에 부탁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것인데 공께서 이렇게 말을 잘 길러주시였으니 무어라고 감사의 마을 드려야 옳을지 알수 없습니다.≫라고는 말을 찾아가버리고 말았다는것이다.
15세기 학자로 이름난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자인 로사신이 리조봉건정부의 높은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장기를 즐겨 신분이 높고낮음을 가리지 않고 놀았는데 ≪차≫가 상대방에게 잡혔을 때에는 언제나 애걸복걸하여 물렀다고 한다. 이로부터 당시 ≪바라건대 로정승의 <차>처럼 되여 불로장생하였으면 좋겠다.≫는 속담까지 생겼던것이다. 16세기 사람인 류희춘의 ≪미암일기≫에는 그가 자기 집을 찾아온 수많은 친구들과 거의 모두 장기를 놀았고 때로는 자기의 안해와도 장기를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리조시기 장기와 관련된 기록들에는 장기씨(장기쪽)와 노는 방법도 전하고있다. 장기는 옛날에 ≪상회≫라고 하였는데 리조중엽부터 ≪장기≫라고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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