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천언만언 다 따르겠사오나 오직 이 일만은 불가당 못 따르겠사오니 그만 영을 걷우옵소서.》
일이 이 지경이 되자 황정승과 더 말해야 쓸데없음을 깨달은 세종임금은 《그럼 이 일에 대해서는 더 말을 말라.》 해놓고 그 첫장날이 되자 궁중의 궁문직이 수십명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돈 한 꾸레미씩 주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물건 팔려 들어오는 장사치들의 반반한 물건을 택해 사서 황정승댁에 가져가도록 명했다.
헌데, 그 날따라 꼭두새벽부터 비비람이 기승을 부리며 쳐대는데 저녁 늦도록 도무지 끊칠 줄을 몰랐다. 하여 그날은 장날이 폐장이 되고 말았다.
세 곳 궁문지기들은 그만 낙담 실망하여 막 회궁하려고 하였다.
바로 이 때 동대문 게로 수염받이 새하dis 파의파림의 시골노인 한 사람이 계란 한 꾸레미를 안고 서울 장거리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저, 노인장. 이 계란은 팔 것이옵니까?》
《예, 급히 팔아 요긴히 쓰려고 이렇게 급급히 달려오는 길이웨다.》
천만 다행으로 궁문직이들은 두말 없이 그 계란을 달라는 값대로 몽땅 사가지고 황정승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것이나마 황정승에게 대접시키시라고 했다.
그러나 뉘 알았으리요. 그 달걀은 맹랑하게도 몽땅 곯아빠진 썩은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세종임금은 못내 탄식해 마지 않았다.
《안되겠구나. 짐이 황의 정승을 각별히 생각하여 그런 묘안을 내었건만 하필이면 그 계란마서 곯아빠져 유골이니….》
하여, 세종임금은 그 다음 장날 또 그리해 보려던 계획을 깨끗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세종으로서도 어찌 알 수 있었으랴! 그 날 곯아빠진 썩은 계란을 가지고 뒤늦게 장에 들어선 시골 노인 인즉 바로 변장한 황희 정승 자신이었다는 것을.
아무튼 이로부터 항간에는 계란에 유골이란 속담이 널리 퍼지게 되었으니 원래는 골다의 조선음 그대로를 따서 골자를 쓴 것인데 그 뒤로는 골자를 아예 뼈골자로 치부하여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것으로 쓰게 된 것이다.
이 속담의 뜻인즉 소위 운수가 나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나 이래 저래 안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