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고려교향악단·서울교향악단·해군정훈악대·방송교향악단·국립교향악단·국제오페라사·국립오페라단·김자경(金慈璟)오페라단 등과 이화여자대학교·서울대학교·연세대학교·한양대학교·경희대학교 등의 음악대학을 통하여 서양음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안익태·윤이상(尹伊桑)·김영욱(金永旭)·정명훈(鄭明勳)·정경화(鄭京和)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음악가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또한, 레코드와 라디오·텔레비전 등 대중전달매체의 보급과 함께 대중가요도 크게 성장하였다.
〔연 극〕
광복과 함께 연극계는 다시 소생하여 역사상 처음 누리는 자유로운 활동기를 맞아 우후죽순처럼 수많은 극단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상황과 마찬가지로 연극계도 좌·우익으로 양분되는 시련을 치른 끝에, 1948년 정부수립 후 민족극 수립을 표방한 극예술협회, 민족진영의 총집결체인 한국무대예술원이 발족되었고, 1950년 대초 국립극장이 설립되어 그 전속극단으로 신협(新協)이 등장, 〈원술랑元述郎〉·〈뇌우 雷雨〉 등을 공연하였다.
6·25전쟁 이후 유치진·김영수(金永壽)·오영진 등의 희곡이 많이 공연되었고, 신협을 중심으로 미국 현대극이 점차 활기차게 수입되었다. 또한, 대학생이 중심이 된 제작극회(制作劇會)는 오스본(Osborne,J.)의 ‘앵그리 영맨’ 계통의 작품을 소개하는 한편, 창작극을 통하여 본격적인 소극장운동을 꾀하였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실험극장(實驗劇場)에 이어 산하(山河)·민중극장·자유극장·광장(廣場)·가교(架橋) 등 동인제 극단시대가 전개되었고, 까페 떼아트르는 전위극과 창작극·전통극을 배합하여 소극장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