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돐에 즈음해 연길에서 당대중국조선족무용포럼 및 공연이 펼쳐지게 된다. 4일에 펼쳐지는 이 행사는 중국무용가협회, 주당위 선전부에서 주최하고 주문련에서 주관하며 연변가무단과 연변대학 예술학원, 주교육국에서 협조하는 것으로 2011년에 첫 포럼 및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데 이어 10년 만에 두번째로 펼쳐지게 된다. 전국 무용계 전문가들이 포럼에 운집해 중국조선족무용의 지난 10년간 발전을 전면적으로 회고하고 총화를 지은 후 2012년부터 2021년까지의 국가급 수상작품으로 편성된 공연을 펼쳐 자치주 창립 70돐에 헌례하게 된다.
8월 30일, 민족무용우수작품공연의 총감독을 맡은 연변가무단 창작실 김희(59세)는 오후 3시에야 부랴부랴 점심식사를 마치고 인터뷰에 응했다. 정년퇴직이 래년이고, 건강도 안 좋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의연히 날파람 있는 모습이였다.
그는 이번 공연의 주제는 <연변무용, 중화를 수놓다>인데 두가지 표현형식으로 보여주게 된다고 소개했다.
공연은 서편 ‘자취를 찾아서’로 막을 연 후 연변무용의 60여년을 보여주는 사진, 영상자료들을 묶어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준다. 상편 ‘향토를 수놓다’에서는 향토적인 지역풍속을 보여주게 되고, 하편 ‘온누리를 수놓다’에서는 현대무용과 힙합, 몽골무용 등 미래지향적인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종편 ‘천년을 수놓다’에서는 <장고행>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김희는 이번 공연에 필요한 지난 10년간의 자료를 까근히 수집하면서 로일대 춤군들의 희로애락이 묻어있는 자료 한장 한장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터놓았다.
“이번 공연의 준비과정에 무용계 로선배들이 전업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다시 되새겼고 우리 세대도 참 열심히 뛰였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바톤을 넘겨줄 든든한 차세대가 있다는 것 또한 나의 존재감을 재확인시켜줬죠.”
김희는 소학교 시절부터 학교 예술단에서 무용, 노래, 가야금 등 다양한 예술쟝르를 익히고 련습하면서 예술의 꿈을 키웠고 그 길을 쭉 견지했다. 1982년에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의 무용수로 분배받으면서부터 정식으로 연변의 무용계에 신고식을 한 셈이니 장장 40여년간 우리 민족무용의 발전과 변화와 함께 한 셈이다.
초기에 김희는 15년간 무용수로 활약하면서 무대경험을 충분히 쌓았고 조선무용의 유명한 교육가인 박영원 선생이 일찍 연변 각 현시의 안무가, 무용가들을 위해 조직한 무용리론창작연수반에 가장 나어린 학생으로 참가해서 무용리론과 창작기초를 다졌다.
“그때 다진 무용리론 및 창작기초가 저에게는 큰 밑거름이 됐죠. 1992년에 연변예술학원에서 조선무용강사로 교편을 잡다가 1997년에 연변가무단 창작실로 옮겨 안무가가 되고 싶던 꿈을 이뤘습니다.”
리승숙, 허숙, 송미라 등 선배 안무가들의 작품에 조안무로 참여하면서 어깨너머로 경험을 쌓고 무용창작의 토대를 닦았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무용창작전공 석사과정을 밟았는데 그 3년이 김희가 무용창작에 대한 지식을 쌓고 시야를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연변가무단에 돌아온 김희는 2006년 제3회 소수민족문예회보공연에 음악무용시 <천년아리랑>의 조감독으로 참여해 대상을 수상, 그중 직접 안무를 맡은 부채춤과 북춤은 단일종목 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 부채춤을 다시 <서혼>으로 각색해서 2007년 제6회 중국무용 ‘련꽃’상에 참가해 작품 은상을 수상했다.
“남성무용작품으로는 전에 남성3인무 <영각소리>에 이어 오랜만에 수상한 작품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2008년부터 연변가무단 창작실을 이끄는 리더가 되였고 대형 창작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에서 송미라선생과 함께 총감독을 맡아 제4회 전국소수민족회보공연에서 금상을, 2013년 문화대상에서 우수극종목상과 ‘문화’ 안무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무극 <아리랑꽃>으로 제5회 전국소수민족문예회보공연에서 극종목 금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무용 <장고행>이 중국 전업무용예술의 최고상인 제11회 ‘련꽃’상에서 민족민간무용 부문 1위를 차지하며 금상을 수상했다.
<장고행>에 대해서 김희는 유독 애착이 깊다. 건강이 안 좋아서 출전을 포기했다가 다른 지역의 단체에서 장고춤종목을 준비해서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준비했던 작품이였다.
“외곡된 조선족무용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우리가 나서서 진정한 조선족무용의 정수를 보여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 준비한 작품이 현장평의에서 참가작품들중 최고점을 받자 모두 부둥켜안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모든 스태프들의 피와 땀으로 바꿔온 영예였기 때문이다.
“조선족무용은 문화함양이 특별히 깊어요, 그 매력 때문에 모두 다루기 좋아하지만, 우리가 적극 나서서 국내외에 널리 알렸기 때문에 조선족무용의 오늘의 위치가 있는 게 아닐가 싶어요.”
김희는 무용을 “뼈를 깎아서 만들어진 예술”이라고 말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서 정말 지옥 같은 련습을 견지해야 하죠. 하지만 그것이 성공적으로 무대 우에서 꽃으로 피여나게 되면 우리는 부둥켜안고 웁니다. 그런 감동이 습관처럼 몸에 배서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요.”
김희는 현재 중국무용가협회 회원, 연변무용가협회 부주석이며 연변대학 예술학원 초빙교수, 길림성무형문화재인 ‘조선족부채춤’ 전승인이기도 하다.
출처:연변일보
편집:김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