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지난달 24일 중한 수교 2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을 대표하는 베테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년 전 중국으로 건너와 포스코 성공신화를 일군 정길수 포스코차이나 대표(63)와 (주)대우 상사맨으로 출발해 중국한국상회 회장을 역임한 박근태 CJ차이나 대표(58)는 한국 기업인들의 큰형님으로 통한다. 이춘우 카라카라 대표(50)는 중국 전역에 100여 개 화장품 매장을 개설한 소매 유통 전문가다. 중국에서 토종 종자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박상견 세농종묘 대표(54)와 박진형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54)도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중한 수교 새로운 20년의 과제에 대해 속시원한 해답을 제시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춘우=한국 기업들은 현재 '비용'과 '지역'이라는 벽을 만나고 있다. 저임금, 저비용 이점 때문에 중국에 진출했지만 더 이상 중국은 저비용의 땅이 아니다. 지역적으로도 대부분 칭다오와 톈진, 다롄 등 대도시에 포진해 있다 보니 저비용 이점을 누리기가 더욱 어렵다. 3~4년 전만 해도 화장품 용기를 상하이에서 구매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륙의 작은 도시로 들어가지 않으면 원가를 맞출 수 없다.
▶박근태=외자기업으로서 누리던 혜택이 완전히 사라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자기업이 들어온다고 하면 대부분 지방에서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환경오염, 과잉생산 등을 엄격히 따진다. 개발구에서도 세금을 적게 내는 업종에는 용지를 내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대기업 명함만 들이밀면 지방정부 국장을 쉽게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목적과 이유가 확실하지 않으면 얼굴 한 번 보기도 어렵다.
▶박진형=가공무역의 세 가지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지역적 쏠림현상이다. 땅값이 비싼 대도시에만 몰려 있다. 둘째, 제3국 수출 위주 영업을 하다 보니 내수시장 개척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마케팅, 광고, 홍보, 유통, 브랜드 관리 등 모든 게 취약하다. 셋째, 중국 시장을 이해하고 있는 현지화된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중국에서 어떤 실패를 겪고 있나.
▶정길수=어떤 업종이든 간에 사업 파트너를 잘못 선택해 실패한 사례를 무수히 지켜봤다. 파트너를 한 번 잘못 만나면 헤어지기도 쉽지 않다. 갈라서기로 하고 청산절차를 밟는 데만 수년 이상 허송세월 할 수 있다. 그동안 시간과 비용 낭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파트너를 사전 검증하는 데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한다.
▶박근태=사전 준비 없이 진출했다가 실패한 네이멍구자치구 밀가루 사업을 예로 들고 싶다. 주변에 소맥이 많이 생산되고 있어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네이멍구에 밀가루 공장을 지었다. 나중에 공장을 가동하고 보니까 소비시장과 거리가 멀어서 물류비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다.
▶박진형=모 유통업체가 중국 지방정부가 제공한 정보만 믿고 백화점을 냈다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당초 들었던 설명과 달리 손님이 많이 모일 수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사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철저히 시장 조사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실패한 경우다.
-성공으로 꼽을 만한 사례는.
▶박상견=중국 현지기업들과 동반성장을 추진했더니 성과가 좋았다. 중국에는 채소회사만 8700개가 있다. 이들과 거래를 하면서 종자만 납품한 것이 아니라 재배기술까지 제공했다. 다른 다국적 기업들은 종자만 팔아치우는 데 급급했다. 동반성장 전략이 회사 매출 확대로 이어졌다.
-중국 시장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이춘우=흔히 한국이 만든 고품질 제품을 저가품의 나라인 중국으로 가져오면 잘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고품질 제품을 싼 가격에 만들지 못하면 중국에서 설 자리가 없다. 중국 제품의 품질 수준이 한국 제품과 거의 대등하게 향상됐다. 따라서 이제는 중국보다 싸게 만들 자신이 없으면 경쟁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
▶박상견=중국을 절대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품에 대한 경쟁력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시장이 크니까 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덤비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중국에서 중소기업에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유통망이다. 유통망 확보가 쉽지 않다. 딜러를 잘못 써서 제품이 사장되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유통망에 대한 충분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중국 진출을 앞둔 한국기업의 필승전략은.
▶정길수=중국 정부와 시장이 원하는 아이템을 들고 들어와야 한다. 이 말은 중국 사람이 원하는 것을 갖고 들어와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범용기술로는 안 된다. 정부와 시장이 원하는 것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육성해 들여와야 한다. 철강의 경우 연간 2억t 이상 공급과잉이 발생하고 있지만 새로운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다. 또한 내수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자면 기술과 인력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박근태=이미 국내외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1선 도시보다는 2, 3선 도시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중국에 투자를 시작해 완전히 안정화 단계에 진입할 때까지 본사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 사람만 보내놓고 A부터 Z까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는 더 이상 중국에서 곤란하다.
현지화된 인력 확보 방안으로는 한국에 와 있는 6만여명 중국 유학생들을 적극 활용할 것을 권하고 싶다.
/정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