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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 - 동북항일투쟁의 탁월한 지도자
http://hljxinwen.dbw.cn   2009-12-29 09:57:50
 
 

중공북만성위   서기의 중임을 떠메고

서정부대가 흑눈평원에 도착하여 새로운 유격활동이 개시되자 중공북만림시성위에서는 1939년 3월 9일 철리에서, 4월 12일에는 통하에서 제9차상무위원 2차집행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는 중공북만림시성위를 정식으로 북만성위로 개칭하고 김책을 서기로, 장수전을 조직부장, 풍중운을 선전부장으로 선거하였다. 김책은 북만성위서기로 된후 주요하게 경성, 수릉, 철리 산구에서 활동하면서 전반 항일투쟁과 지방사업을 지도하였다.

그는 항일부대에서 골간을 선출하여 3조(조원, 조주, 조동현)를 경성, 눌하 등지에 파견하여 항일을 선전하고 군중을 발동하여 중공3조지구 공작위원회(룡강공위라고도 불렀음), 중공눌하현위, 중공경성지부 등 당조직을 건립하였다. 북만성위에서는 북만항일구국총회도 건립했는데 김책이 회장직을 맡았다. 하여 지방에서 당원 수십명, 항일구국회원 수백명을 발전시켰다.

그 간고한 나날에도 김책은 들끓는 항일열정과 책임감으로 북만성위의 기관간물인 《통일》을 꾸렸는데 1939년 6월부터 1940년 8월까지 도합 10기를 출간하였다. 그는 《통일》에다 “당조직을 건전하게 하기 위해 투쟁하자”란 글을 발표하여 북만당 투쟁의 력사경험을 총화하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명확히 제기하였다.

김책은 일을 처리할 때 아주 침착하고 결단성이 있고 모략이 있는 령도인재였다. 1940년 가을, 하루는 그가 로금구(일쏜B") 심산밀영에서 문건을 쓰고있는데 돌연히 12명의 농민차림으로 손에 총을 든 사람들이 나타나 항일부대를 찾아온 산림대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비록 농민옷차림을 했지만 언행이 자연스럽지 못했기에 김책의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때 성위의 주재지에는 김책과 그의 부인 안경숙과 비서 김창택뿐이였다. 김책은 모르는척하고 그들과 숨박곡질을 하였다. 기실 일전에 안방하상류에 있는 3로군 총참모장 허형식이 소진붕을 위수로 하는 경성의 12명 특무가 로금구성위 주재지에 잠입했다는 정보를 받고 인차 교통원을 파견하여 적들 먼저 김책에게 소식을 알리고 특무들을 대체하도록 하였다. 이튿날 저녁무렵에 교통원 유란각이 700여리의 길을 뛰다싶이하면서 성위주재지에 도착했다.

그는 비밀리에 김책에게 급보를 전했다. 원래 이놈들은 변절자의 고발로 성위를 털러 왔던 특무들이였다. 김책은 특무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유란각과 대책을 상론한후 식사지점을 바꾸는 방법으로 적들이 총둔 곳을 떠나게 한후 무기를 압수하고 지혜롭게 특무들을 몽땅 생포했다.

김책은 옳바른 결책으로 북만당과 항일부대를 지도하였다. 당시는 일제가 대쏘전쟁준비를 위해 동북에 대량의 병력을 증파하였는데 1934년의 30만 병력으로부터 1941년에는 70만으로 증가되였다. 이런 준엄한 형세하에서 김책은 3로군 제6, 12지대를 지휘하여 줄곧 1943년말까지 소부대활동을 견지하며 일제의 후방을 부단히 교란시켰다.

1938년 6월이후 동북항일련군은 일제의 끊임없는 “토벌”과 “소탕”으로 유격근거지는 거의 파괴되고 양정우, 왕덕태, 하운걸, 리복림, 등 우수한 고위급지휘관들이 희생되였고 1940년말에 이르러 부대는 천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정황하에서 1940년초와 1941년초, 쏘련 하바롭스크에서 중공 북만, 길동, 남만성위와 각로군의 책임자가 참가한 두차례의 대표대회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김책, 위증민, 주보중으로 3인위원회를 구성하고 쏘련경내에로 항일부대를 이동시켜 장기투쟁을 견지하자는 방침을 제출하였다.

1941년 7월 10일 야영당조직과 주보중의 건의에 의해 쏘련방면의 대표 왕신림은 김책을 제3로군 정위로 임명하는데 찬동한다고 하였다. 김책은 7월 13일에 쏘련을 떠나 중국동북으로 돌아왔다. 여러가지 악렬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10월중순에야 김책은 수릉, 경성일대에 있는 제3로군 총부에 도착하여 장수전과 만나게 되였다. 그는 장수전과 토론한후 3로군총참모장 허형식에게 편지를 띄워 3로군의 주력부대를 쏘련경내로 이동하도록 하였다. 허형식은 총부의 편지를 받은후 제6, 9, 12지대 인원을 집중하여 6지대 정위 우천방의 인솔하에 백여명의 관병을 11월에 쏘련으로 보내여 휴식정돈하고 학습하도록 하였다.

북만항일련군의 주력부대가 철거한후 김책은 허형식과 함께 계속 북만에 남아서 2개 소부대를 인솔하여 항일구국회를 발전시키고 량식을 장만하고 적정을 정찰하면서 투쟁을 견지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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