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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 - 동북항일투쟁의 탁월한 지도자
http://hljxinwen.dbw.cn   2009-12-29 09:57:50
 
 

 

1938년초, 일위군은 병력을 집중하여 송화강하류일대의 항일유격구와 근거지에 발광적인 토벌을 감행하여 항일부대의 손실은 날로 커갔다. 이런 형세하에 북만림시성위는 6월에 통하현경내에서 제8차 상위회의를 열고 항일련군 제3, 6, 9, 11군을 조직하여 서북으로 두번째 원정을 하여 적들의 포위를 뚫고나갈데 대하여 결의를 지었다.

회의결정에 따라 김책은 하강지구에서 3군의 제3, 4, 10사를 정돈한후 1938년 8월 7일 원 3군3사 정치부주임 후계강 등 70여명 대원을 이끌고 보청으로부터 출발하여 송화강을 건너 라북 오동하하류에서 6군3사 사장 왕명귀의 부대와 같이 서북의 원정길에 올랐다. 9월 6일 원정전사들은 한사람이 옥수수 네이삭과 약간의 식량을 가지고 련속 며칠간의 행진을 거쳐 수빈에 도착하여 거기에서 장수전(리조린)의 부대와 합친후 계속 서정하였다. 

김책이 거느린 부대가 수빈1, 2, 3구평원의 좁은 삼각지대에 이르렀을 때 일본위군의 2개 퇀과 국경경찰부대의 추격을 부단히 받았다. 김책은 급행진으로 적들을 떼버렸다. 그때 부대는 련 며칠간 식량이 떨어지고 게다가 늘 비가 왔기에 악렬한 환경에서 행군은 아주 간고했다. 그러나 항일전사들은 누구나 동요하지 않고 산나물, 과일로 때를 이으면서 계속 전진하였다. 

9월 10일 김책이 부대를 거느리고 도로하(떼?붉)북쭉에  도착했을 때 강물이 불어서 전진도로가 가로막혔다. 마침 당지 군중들의 지원하에 자그마한 배로 30여차례에 걸쳐 부대와 말들은 강을 건너게 되였다. 부대는 계속하여 학립방면으로 진군했는데 학립부근의 왕싸즈툰에서 위자위단을 쳐부시고 군사물자를 얻게 되였다.

부대가 류가툰부근에 이르렀을 때 탕원현의 300여명 위치안부대가 뒤를 쫓아왔다. 적의 예봉을 피하고 병력을 보존하기 위해 김책은 소수 기관총사수들을 조직하여 석장골에서 저격하게 하고 대부대는 에돌아 전진하게 하였다. 과연 적들은 매복에 걸려 몇십개의 시체를 던지고는 산아래로 도주했다. 아군은 한명의 상망자도 없었다. 김책은 부대를 거느리고 무인지경에서 가시덤불을 헤치며 간고한 행진을 거쳐 1938년 10월 8일(음력 8월 15일) 수릉현 장가완 강가의 백마석일대에 도착하여 풍지강과 새로 평성한 3군 3사 사장 허형식, 부사장 장광적과 회합하였다. 
압록강 수풍댐을 시찰하고있는 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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