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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책 - 동북항일투쟁의 탁월한 지도자
http://hljxinwen.dbw.cn   2009-12-29 09:57:50
 
 

 

1933년 10월 10일 주하중심현위에서 창건한 주하항일유격대는 13명밖에 안되였지만 한달만에 40여명으로 발전하여 유격대대로 편성되였고 1934년 6월 29일에는 이미 500명의 대원을 가진 동북반일유격대 합동지대로 재편성되였다. 지대산하에는 3개 종대, 9개 대대, 27개 중대가 있었는데 조상지를 사령으로, 리조린을 정위로, 리복림을 당위서기로 임명했고 김책은 제3대대 정치지도원으로 파견되였다가 7월에는 지대사령부 군수처장으로 임명되였다.

1935년 1월 합동지대는 삼고류에서 청년의용군을 받아들인후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으로 확건되여 산하에 1개 사, 3개 퇀을 두었는데 김책이 제2퇀 정치부 주임, 3월에는 1퇀 정치부 주임직을 맡았다.

1935년 10월 새로운 투쟁에 적응하기 위해 3군은 원래의 3개퇀으로부터 5개퇀으로 확건되였다. 김책은 제4퇀 정치부주임으로 임명되였는데 퇀장은 호귀림이고 전퇀의 70여명 관병들은 의란, 벌리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듬해 봄, 김책은 부대를 이끌고 보청, 밀산 일대로 원정하여 새로운 유격구를 개척했다. 당시 보청현일대에 국민당반일병사들로 구성된 《천덕대》란 부대가 있었는데 지휘자 리명순(그때는 천덕이라 불렀음)은 일군과 자위군을 몇번 습격하여 일정한 전투성과는 올렸으나 내부 대원들이 소질이 낮고 규률이 산만하고 명령에도 제대로 복종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그는 군중들의 찬사를 듣고 김책이 인솔하는 부대에 호감이 생겨 부관 진유재를 파견하여 김책을 찾도록 하였다. 리명순의 요청에 의해 김책은 전체 관병들에게 형세보고를 하였다. 김책의 생동하고 구체적인 강연은 관병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어떤 병사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김책의 연설을 통해 리명순과 그의 대원들은 공산당은 나라와 인민을 사랑하고 문무에 정통하고 흉금이 넓으므로 그야말로 전민족의 항일의 령도중임을 떠멜수 있다고 인정하고 천덕대대호를 취소하고 무조건 3군4퇀에 편입하였다.

김책이 이렇게 항일무장력량을 장대시킨 실례는 한두번이 아니였다. 1935년 10월 3군 각 퇀은 사로 개편되였는데 김책은 제4사 정치부 주임으로 임명되였다. 6월 4사는 60여명 전사들을 의란, 벌리에 남겨 투쟁을 견지하는외에 나머지 부대는 김책과 호귀림의 인솔하에 제4군의 리연록부대와 같이 보청현으로 원정하였다. 김책은 원정할 때 4군군부와 같이 행동하면서 4군의 정치사업도 책임졌다. 하여 그때 4사는 3군의 모범부대로 되였다. 7월중순 간고한 원정을 거쳐 부대는 보청현 란화정자동부("뇔?t앺?{1꼬)에 도착하여 새 유격구를 개척했다.

1936년 8월 1일 동북인민혁명군 제3군은 정식으로 동북항일련군 제3군으로 개편하고 산하에 10개사를 두었다. 김책은 제4사 정치부주임직을 맡았다. 4사와 10사는 의란, 화천, 벌리, 보청, 부금, 수빈, 라북, 밀산, 호림, 요하 등 현에서 활동하였다. 

1936년 가을 위만주국군정부는 일본관동군사령부의 “치안숙정강요”(撈갛X??V몎?에 따라 빈현, 목란, 통하, 탕원, 의란 5개현을 중심으로 하는 토벌계획을 제정하고 9월부터 항일유격구를 포위하고 진공했다. 이때 항일부대는 중공중앙과 련계가 끊어지고 만주성위는 국제공산당주재 중공국제대표단의 직접적인 령도를 받게 되였다. 형세를 바르게 인식하고 금후의 방침정책을 결정하고저 9월 18일 3, 6군당위와 주하, 탕원 중심현위에서는 탕원 모아산 3군피복공장에서 련석회의(주탕련석회의라고도 간칭)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는 중공북만림시성위를 성립하고 풍중운을 서기로 하는 7명 상무위원을 선거하고 조상지를 집행위원회주석으로 하는 15명 집행위원을 선거했는데 김책이 집행위원으로 당선되였다.

  1937년 “7.7”사변후 3군4사는 대부분이 기병으로 편입되여 밀산, 호림 변경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부단히 적들을 타격하며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동년 10월, 일위군들은 집중하여 보청일대로 진공하여왔다. 적들을 효과있게 견제하고 동시에 강적과의 정면접촉을 피면하기 위하여 김책의 제의하에 4사의 부분 기병과 6군1사의 도합 250여명 인원을 모범사로 련합편성시킨후 요하 무원경내로 들어갔다. 그해겨울 제7군과 합동하여 우쑤리강연안에서 적들을 습격하여 역시 일정한 승리를 거두었다. 

1937년 10월, 중공북만림시성위 제6차상무위원회의에서는 김책을 성위에 전근시켜 성위상무위원, 선전부장 겸 3군정치부주임을 담임하게 하였다. 조상지는 3군 선전과장 우보합을 파견하여 벌리4사 밀영에 가서 김책을 대체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당시 김책의 발상처가 채 낫지 않았고 사업도 미처 교대하지 못했기에 조상지에게 편지를 띄워 아직은 떠나지 못하겠다고 기별을 보내고 계속 4사를 거느리고 밀산, 호림 변경지구에서 적들을 족쳤다.    서정하여 적들의   “토벌”과 “소탕” 분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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