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9월3일, 정무원(현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성립되였고 1955년 12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명, 현재 연길, 돈화, 훈춘, 화룡, 도문, 룡정 6개 시와 왕청, 안도 2개현을 관할하고있다. 1993년말, 연변의 조선족은 85만4천여명으로 전국 조선족총수의 43%를 차지하였고 연변총인구의 39.9%를 차지하였다. 1996년부터 연변의 조선족인구는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고있는데 2004년말 조선족인구는 82만481명(호적인구)으로서 총인구의 37.7%를 차지했다. 현재 연변의 조선족들은 대부분 연길, 룡정, 도문, 화룡시에 분포되어 있는데 조선족인구비례를 보면 연길 59%, 룡정 67%, 도문 58%, 화룡 60%를 점하고있다.
자료에 따르면 1930년 흑룡강의 조선족은 4만5천명에 달했다. 1931년 9.18사변이후부터 1945년 8.15광복까지 일제의 강제이민정책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흑룡강에 정착하게 되였다.
1940년 흑룡강성의 조선족인구는 15만3천여명에 달했다. 여러민족과 함께 피흘리며 항일투쟁을 견지하고 이 땅에서 새중국의 탄생을 맞이한 흑룡강조선족사회는 부단한 성장을 거쳐 인구가 1982년 43만1644명, 1990년에는 45만4091명에 달했다가 이후 감소세를 타면서 2000년에는 38만8458명에 달했다. 현재 실제거주인구는 25만명선에 불과할것으로 추측하고있다.
료녕지역은 19세기말 대규모의 이주가 이어졌다. 1910년 전후 서탑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한 조선인은 50여가구에 달했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 의해 합병된후 조선의 농민과 수공업자, 독립투사들이 대거 료녕지역으로 류입됐다. 1945년 8월 15일전 안동(단동)지역에 20만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있었으며 봉천(심양)지역에 10만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후 많은 조선인들이 귀국하고 새중국이 탄생되면서 중국 소수민족의 일원이 되여 현지사회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하면서 성장했다. 1990년대에 이르러 료녕지역의 조선족인구는 23만여명에 달했다. 내몽골에 조선인들이 정착한 력사는 동북과 비슷한 시기로서 100여년 력사를 가지고있다.
1897년 러시아와 청정부가 공동으로 중동철도를 부설할 때 많은 조선인들이 철도공사에서 로역을 하였는데 공사가 마무리되자 일부는 철도에서 일하게 되였고 일부는 강을 따라 수전을 개척하고 논농사를 지으면서 정착하게 되였다.이들이 처음 내몽골에 뿌리내린 다음 20년대와 30년대에 동립운동지사들이 내몽골에 농장을 꾸리고 운동자금을 마련하였고 같은 시기에 많은 조선인들이 일제를 피해 내몽골지역의 눈강, 송화강을 따라 수전을 개척하고 새로운 삶터를 만들었다.
1926년 칭기스칸진에서 조선인 14가구가 수전농사를 시도했으나 기후가 맞지 않아 실패하고 1939년에 동북 각지에서 떠돌던 조선인 300여명이 재차 칭기스칸에 들어와 물을 막고 수전을 개척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집단적인 이주로는 1947년 목단강지역의 자발적으로 조직된 조선인 난민 200여가구가 아영기 신발에 정착하여 수전농사를 개척한것이 지금 전 내몽골자치주에 유일한 조선족향으로 남아있다.
해방후에도 포두강철공장건설, 초원건설, 제지공장, 고무공장건설을 지원하여 동북3성의 조선족들이 내몽골에 갔으나 대부분이 서부 내몽골에 산재하여있다.
조선족들이 동북3성 및 내몽골지역에 정착, 이들 지역도 1949년 새중국성립부터 점차 안정된 거주지역으로 자리잡았고 농경생활은 생계를 유지하는 주요 방식으로 되였다. 그러다가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기존 안정된 국면이 타파되기 시작, 수많은 조선족농민들이 농경생활을 접고 연해지역, 국외로무로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