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최고 학부 연변대학
연변대학은 1949년 4월에 정식 설립, 당시 동북지역에서 많지 않는 종합대학으로 손꼽혔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손수 창건한 조선족을 위주로 한족과 기타 여러 민족의 각 류형의 고급전문 인재를 육성하는것을 목표로 한 성직속 중점종합민족대학이다.
1958년, 길림성위원회의 비준을 걸쳐 연변대학은 연변대학,연변의학원,연변농학원,연변공학원 등 4개 학원으로 분리됐다. 1959년 연변공학원은 또 다시 연변대학에 합병됐다. 1983년1월과 1988년6월을 선후로 연변사범고등 전과 학교와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이 설립됐다.
1996년 국가교육위원회의 비준을 거쳐 연변대학,연변의학원,연변농학원,연변사범 고등 전과학교,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은 합병되여 새로운 연변대학으로 거듭났다. 같은 해 10월, 연변의 첫 중외 합작- 연변과학기술대학이 연변대학에 합병되여 연변대학 과학기술학원으로 됐다.
1999년 12월 '211공정'에 들어 전국 100대 중점대학으로 자리 매김했다. 연변대학은 장덕강, 리덕수, 전철수 등 중앙지도자를 비롯한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다.
조선족 전국 로력모범들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조선족 전국로력모범들이 적지 않다. 여기서 전국 로력 모범들을 일일이 적을수 없어 각 분야의 대표적인 모범들만 적는다.
흑룡강성 목단강시 목공기계공장 기술원 안태준과 흑룡강성 대경1205시추대 대장 신관은 공업분야의 대표로 꼽힌다.
할빈제1백화상점 판매원 전옥순(녀)은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을 맞이, 상업분야의 '한떨기 꽂'으로 불리운다.
사법분야에서는 백성법관-김계란과 김광진을 들수 있다. 흑룡강성 녕안시 인민법원 동경성 법정의 김계란(녀) 법관은 1000여건 사건을 처리했는데 오판 등 사건이 한건도 없는 4가지 '없다'를 기록했다. 그는 선후로 '전국 10대 우수법관' 등 60여가지 영예 칭호를 지녔다. 연변조선족자치주 검찰원 검찰장 김광진은 전국우수인민경찰 등 칭호를 받았다.
료녕성 무순시 김죽화(녀)교장은 시종 교단을 굳건히 지켜가며 교육사업에 혼신을 다해왔다.
흑룡강성유기벼협회회장 홍상표 농민과 중국 최초로 농민중개 사이트를 개설한 심양 조동철농민은 2008년 '전국 100명 농촌우수인재' 로 뽑혔다.
/본사기획: 박일 리수봉, 취재: 윤운걸, 진종호, 김호, 윤선미 기자, 박룡수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