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인생의 가장 큰 대사라 불리우는 결혼, 그 잔치에서의 먹거리들 ― 큰상과 음식상은 60년 먹거리변천을 잘 보여줄수 있는 일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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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결혼식에서 큰상 받기 |
시대별 큰상과 음식상을 회고해 보기 위하여 할빈시의 최룡철로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50년대 결혼잔치-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대사답게 치를수 있었다
“50년대에는 그래도 큰상이 있는 결혼잔치를 할수가 있었습니다.”
최룡철로인의 회억에 의하면 그때는 지금처럼 먹거리가 풍부하지는 않았어도 큰상에는 사과, 귤, 대추 등 네댓가지 과일이 오를수 있었고 과자와 사탕도 당시 있는 종류를 몽땅 동원시켰다. 과자나 사탕의 모양을 그대로 이름 딴 고양이똥과자라든가 신발깔개과자, 개눈깔사탕 등등이 있었다.
그외에도 과줄은 큰상을 장식하는 중요한 음식이였다.
손님대접 음식상에 오르는 음식으로는 뎀뿌라, 두부구이, 고사리볶음, 도라지무침, 돼지고기편육, 녹두나물랭채, 콩나물볶음채 등이 있었다.
큰상은 멋부리기였던 70~80년대
최룡철로인에 따르면 문화대혁명이후로 큰상을 받는 풍속이 사라졌다. 큰상을 받는것도 수정주의라고 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70년대중기로부터 큰상이 다시 나타났다. “그때의 큰상은 멋부리기가 주로였습니다.”
큰상에 멋을 부리기 위해 색과자를 사용하였는데 이런 과자는 고기모양이나 닭모양, 주로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이나 파란색으로 동물의 모양을 그렸다. 하지만 이런 과자들은 모양뿐이지 맛은 별로였다.
잔치음식으로 찰떡, 시루떡, 증편 등 떡을 했고 배추에 돼지고기를 조금 넣고 볶은것이라든가 고사리무침, 감자볶음, 콩나물찌개 등등이 올랐다.
농촌에서는 잔치를 하게 되면 이웃에 가서 밥상과 그릇, 저가락, 숟가락을 빌려오는것이 상례였다.
먹거리가 중시받지 않는 지금의 결혼잔치
90년대부터는 먹거리가 풍부해져 큰상도 더 커지고 화려해졌다. 각종 과일을 예쁜 색상으로 사서는 보기 좋게 올리는가 하면 닭, 물고기 등 없는게 없다. 손님음식은 더 말할것도 없이 기본상 식당에서 치르는데 참으로 풍성하다. 하지만 건강을 챙기려는 손님들은 오히려 담백한 료리만 집어서 랑비가 심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