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새중국건설의 우수한 민족간부
◆ 민족사업에 혼신 바쳐
건국 후 리민주임은 선후하여 흑룡강성 민족사무위원회 주임, 성정협부주석 직을 맡았고 그 직무에 충성과 열정을 다했다.
문혁기간 진뢰성장은 물론 리민주임도 억울하게 《쏘련간첩》 모자를 쓰고 5년간 감금되어 모진 고초를 다 겪었다.
리민이 민족사무위원회 주임 재직시기(80년대 초) 흑룡강성에는 오르쳔족, 다우르족, 허저족, 몽골족, 회족, 바이족, 조선족 등 소수민족 30여만명이 소수민족 촌, 향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특히 오르쳔족, 다우르족, 허저족 등은 문화수준이 낮고 경제가 락후하며 생산할줄도 모르고있었는바 그들은 고기잡이거나 사냥, 양, 소 사양 등으로 겨우 연명하는 상황이였다.
그들을 이러한 상황에서 해탈시키기 위해 리민주임은 전 성내 소수민족 마을마다 지어 십여호밖에 안되는 러시아국경의 편벽한 산골짜기마을까지 찾아다녔다.
하루 빨리 그들의 문화수준을 제고시키고 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해 리민주임은 각 소수민족촌마다에 소학교를 건설하고 향에 중학교를 세웠으며 성민위 산하에 성민족간부학원과 민족연구소를 설립하고 각 촌의 소수민족 간부들을 양성했다.
리민주임은 고기잡이, 사냥으로 겨우 연명하며 농사지을줄 모르는 오로죤족 등 경제가 낙후한 소수민족 촌과 향의 간부들을 이끌고 타촌에 가 농사와 임지경영 등 생산활동경험을 학습하게 함과 아울러 직접 소수민족촌의 촌민들을 이끌고 대흥안령에 들어가 벌목하고 버섯 등을 따 팔아 수입하게 했다.
리민주임은 국가투자를 쟁취해 각 소수민족촌마다 새로 벽돌기와집을 짓게 했다. 당시 그 돈 마련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았다.
당시 소수민족 마을마다에는 전기가 없어 해가 떨어지기만 하면 온 마을이 칠흙같이 어두었다. 그런 소수민족마을에 리민주임은 전기를 전부 들여왔다.
그녀는 전 성 20여개 조선족마을을 일일이 찾아가보았고 지어 흑하의 편벽한 산골 10여호밖에 안되는 조선족마을에도 찾아가 어려움을 해결해주었다.
특히 리민주임은 흑룡강성 조선족들의 뒤심이 되어 조선족단위의 건설과 자금조달 문제들을 일일이 해결해주었다.
소수민족이 우매하고 락후한 원인은 결국 편벽한 고장에서 사는 환경탓이라 여긴 리민주임은 해마다 여름방학때면 각 소수민족촌 소학교 2학년 이상 학생들을 대도시 하얼빈시와 외지사람들이 많이 오는 경박호에 불러다 하령영행사를 가지고 여태 기차도 보지 못한 그애들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흑룡강성 소수민족들에게 있어 그녀가 민족종교사무위원회 주임으로 부임돼 있은 기간은 실로 천지개벽의 시기였다.
◆ 청렴했던 고위관원
리민과 진뢰 부부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그들 부부가 성민위 주임 성정협 부주석, 성당위 부서기 성정부 성장이라는 고위공직자임에도 그들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공직과는 거리가 먼 일반 직장생활을 하고있고 출국해본적도 없었다.
맏이인 딸은 현재 상해 모 방직품염색공장에서 꽃천설계를 하고있다. 큰아들은 능력이 있어 성당위 조직부장 자리에 추천하는것도 그들 부부가 거절했다. 큰아들은 끝내 공직을 버리고 하해했고 현재 심수의 한 회사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있다. 작은아들도 현재 남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우리들의 선택은 옳은 것 같다. 특히 탐관으로 감옥에 간 자식이 없어 생활이 안정되어 만족한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리민 여사는 이렇게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 여생을 항일정신 전수에
2004년 10월 27일, 항일련군 후대와 선전대를 이끌고 빙탕자전역 항일유적지를 찾은 리민 여사.
67세에 리직한 리민녀사는 리직후 오늘까지 18년간, 항일전쟁 14년의 정신 전수와 고양에 열과 성을 다 하고있다.
그녀는 선후하여 항일전쟁시기 널리 불렸던 항일가곡들을 수집하고 항일련군에서 불렸던 노래, 팔로군, 신사군에서 불렸던 노래, 외국가곡 등 도합 205수를 정리하여 동북항일련군가곡집(교재)을 편찬했고 하얼빈시노인대학에 성악반을 꾸리고 항일가곡들을 배워주기도 한다.
2002년에는 항일가곡공연단을 설립하고 선후하여 하얼빈사범대학, 석유학원, 공정대학, 광대대학, 항공학원 등 5개 대학에 가 대학생들에게 항일의 노래와 춤을 공연하여 항일정신을 전파했다. 또 여러 기관과 가두에도 내려가 공연하고 성내 60개 현과 시, 대흥안령의 림산작업소와 노북국경지역에까지 찾아가 공연했다.
항일정신공연단원들을 조직하여 산속 동북항일련군 유적지들을 답사하면서 동북항일련군 14년간의 분투사를 널리 선전했다.
리민 여사는 대학교, 기관, 가두에 다니며 항일련군 분투사와 항일정신을 강의하기도 한다.
리민 여사는 흑룡강성 경박호유람지내에 있는 항일련군 유적지에 항일의 노래들을 새긴 비석 10개를 세워 항일정신이 세세대대로 전해내려가게 했다.
맺는 말
그날 아침 8시 반부터 시작한 기자와의 인터뷰는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점심식사를 하면서도 취재를 했던 그 반시간까지 합쳐 장장 다섯시간 반동안 이야기를 해준 리민 여사, 85세 고령이라 하기엔 젊은이들을 릉가할 비상한 기억력과 체력이였다.
전쟁년대에는 목숨걸고 싸워 공화국창립에 기여했고 평화시기에는 당과 정부, 인민에 충직했던 리민 여사께 기자는 깊이깊이 머리숙여 인사올리고 장춘행기차에 몸을 실었다.
여사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이번 취재에 도움을 준 흑룡강신문사 리수봉, 김해란 부장들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