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에서의 학습과 훈련
1942년 리민을 포함한 중국 북만(동북)항일련군은 소련 하바로프스키에 야영지를 설립하고 소련원동홍기군 88특별려로 개편되어 그 곳에서 일본침략군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여태 유격전에만 익숙했던 리민은 그 곳에서 정규군의 전략전술을 배우고 현대화무기 사용법을 배우며 전부 무장한채 공정부대 건설과 공중락하훈련, 수영도강훈련, 스키훈련을 받으며 수륙공격 준비를 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중공당사와 소공당사 등 정치 이론을 배웠다.
그렇게 소련에서 현대군인으로 거듭난 리민은 340명의 항일련군 전사들과 함께 세번째패로 파견을 받고 소련홍군 제1, 제2, 제3 방면군과 함께 중국의 흑룡강, 우수리강, 대흥안령 등지로부터 동일시간에 진격하여 일본침략자에 대한 총 공격을 개시한다. 리민은 이때 무선전보원으로 중국에 낙하한다.
제2부 두 전사의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
2002년 년초 하얼빈을 찾은 호금도총서기에게 흑룡강성 전임 성장이며 남편인 진뢰와 함께 동북항일련군 역사자료와 《동북항일련군가곡집》을 드리는 리민 여사.
◆ 결혼
리민이 항일련군에서 지식있고 진취적인 진뢰청년(한족)을 만난 것은 1938년 봄.
몰락지주 가정에서 태어난 진뢰는 1936년 중공당원에 가입, 지하당사업을 하다가 일본관동군이 3강지역 지하당원과 항일분자들을 대대적으로 체포하면서 체포를 피해 항일부대를 찾아 입산, 6군에 가입했다.
6군 군부에서 그는 당위 총지서기, 조직부장 겸 군부 정치교도관으로 전사들에게 강의를 했고 그때 리민은 학생이였다.
그후 1941년 년초, 소련 극동지역 항일련군 북만야영지에서 무선전을 배우던 리민은 그 곳에서 두 번째로 진뢰를 만난다. 둘은 서로 상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제3로군 총지휘인 리조림을 따라 스키를 타고 동북에 갔던 진뢰는 1942년 3월, 항일전선에서 적들의 사격에 손동맥이 끊어나자 피가 콸콸 쏟아지는 팔의 동맥에 나무가지로 솜을 쑤셔넣고 전투를 계속했다.
소련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군부 위생소에 근무하던 리민은 중상입고 돌아온 진뢰를 치료해 주며 가슴아파 한없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