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연안에 총부를 둔 조선독립동맹과 중공해외공작위원회의 파견으로 동북에 온 중국공산당 당원 김택명(즉 리상조)이 파언현 서집진 동성툰에 와 발을 붙이고 조선독립동맹 제12지부를 내온후 할빈에 들어와서 조선독립동맹 북만 특별위원회를 성립하였다. 1945년 6월에는 소련이 독소전쟁에서 승리한후 일본에 대하여 선저포고를 할것이 틀림없으리라 분석하고 새로운 형세하에서의 항일투쟁을 조직하였다. 2000여명의 조선청년들을 강제적으로 끌어 일본군 훈련을 하고 있는 관동군 서란징병훈련소에 조선독립동맹 비밀소조를 내오고 강제병에 대해 사상사업을 진행하여 조선청년들이 훈련소에서 도망치게 하였다. 파언 12지부에서는 이미 조경형, 김철준 등을 자위대에 넣어 무장을 가지게 했고 일단 유사시에는 자위대 무장을 리용하여 일경의 무장을 빼앗아 유격전을 전개할 준비사업을 계획하였다.
제6국민고등학교 4학년 학생가운데는 아성현 취원창에서 온 데쯔시로(铁城,즉 리상세)란 학생이 있었다. 리상세는 큰아버지가 조선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놈들에게 살해당하였기때문에 해방후 한국의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여났다. 파언현 동성농장에서 온 조성섭이란 학생은 동성농장에 있는 조선독립동맹 제12지부 서기 조경형의 조카이다. 그는 김택명의 비밀교통원이였다. 일요일이나 방학에 집으로 돌아가는 편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김택명과 조경형사이의 비밀련락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할빈시내에 집이 있는 히라누마(平沼, 즉 홍원표)는 인물이 잘났으며 공부도 잘하고 주먹이 세서 전교 학생들이 존경하면서도 무서워하는 학생이였다. 조선독립동맹에서는 진보적인 리상세, 홍원표, 조성섭 등 학생과 교원을 조선독립동맹 맹원으로 흡수하여 학생들속에서 반일투쟁을 조직하도록 하였다.
리상세와 홍원표는 학생들이 몹시 증오하는 아오마쯔와 기요하라 두 친일파를 학교에서 쫓아버리기로 다짐하였다. 1945년 6월, 4학년에서는 장개석을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부교장 아오마쯔와 학생들사이에 치렬한 의견분기가 생겼는데 이 기회를 리용하여 전교 학생들에게 동맹휴학을 호소하였다. 학생들은 일치하게 호응하여 나서 투쟁에 궐기하였고 두 친일파를 학교에서 쫓아낼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일본인 교장 다나까는 도외구에 있는 일본헌병대를 동원하여 무고한 학생들을 탄압하였다. 이어 10여명 학생이 퇴학 또는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는데 4학년은 거의 해체되다싶이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