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까지는 이제 4시간반이 남았다. 그 시간까지 범인을 체포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해보는데까지 최선을 다 해보는 수밖에 없다. 녀자 한명이 죽어갈 때까지 가만히 앉아 기다릴순 없지 않은가.
그는 갑자기 밥맛이 떨어져 더 이상 식사를 계속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저를 놓고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가자 이미 두개의 비닐봉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 옆에 자신이 가져온 봉지를 내려놓았다.
“의외로 쓰레기가 많더군요. 그래서 모두 걷어가지고 왔습니다.”
왕반장이 신문지를 책상우에 펴면서 말햇다.
병호는 매직펜을 꺼내 백산부인과앞에서 수거해온 쓰레기봉지에는 ①이라 적었고 럭키클러과 온천탕쪽에서 가져온 쓰레기봉지에는 각각 ②와 ③이라고 써두었다. 그렇게 번호를 붙여두면 편리한 점이 많았기때문이였다.
쓰레기를 만지는 일은 흔한 일이기때문에 화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봉지속의 쓰레기를 신문지에다 모두 쏟아놓았다. 쓰레기는 서로 섞이지 않도록 장소에 따라 세무더기로 나뉘여졌다. 그리고 종류별로 분류되였다.
병호는 우선 ①번쓰레기를 꼼꼼이 살펴보았다. 휴지는 펴서 앞뒤면을 찬찬히 살폈다. 껌껍질도 펴서 무슨 껌인지 일일이 체크해 나갔고 담배꽁초도 그것이 무슨 담배꽁초인지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①번에서 ③번까지의 쓰레기를 살펴본후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만일 주목할만한 사실이 발견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단서가 될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실날같은 단서일지라도.
“먼저 ①번 쓰레기를 검토해보죠. 백산부인과 병원앞은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쓰러기가 별로 없습니다. 보다싶이 담배꽁초가 아홉개, 주스캔이 한개, 휴지쪼각이 두개 있습니다. 휴지는 코를 풀어서 버린것들이라 고려해볼 가치가 없습니다.”
왕반장은 찌그러진 주스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캔에는 지문이 묻어있을지 모르기때문에 검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담배꽁초는 88라이트가 단연 많습니다. 88라이트는 모두 4개이고 엑스포 골드가 1개, 한라산이 1개, 하나로가 1개, 글로리가 1개, 그 다음 카멜이1개입니다.”
“카멜은 양담배가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락타그림이 그려진 아주 오래된 미국담배죠.”
“카멜은 여기도 있는데요.”하고 ②번 쓰레기를 정리하던 문형사가 말했다.
“여기도 있어.” 병호는 ③번 쓰레기에서 담배꽁초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들은 잠시 시선을 주고받은 다음 다시 쓰레기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병호는 ①번 휴지를 살펴보았다. 모두 세개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젖어있었다. 그중 두개는 코를 풀어서 버린것 같았고 나머지 하나는 신문지 쪼각이였는데 피가 조금 묻어있었다.
“이 종이들은 버리지 말고 검사를 시켜보는게 좋겠어.”
“모두 젖었는데 지문이 나오겠습니까?”
“피가 묻어있잔아.”
“그건 코를 풀다가 나온것 같은데요?”
“코물도 검사대상이 될수 있잔아.”
구경군들은 그 이상한 벽보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그 아래에다 담배꽁초를 버린것 같았다. ②번쓰레기에도 담배꽁초가 단연 많았다.
“이 지저분한것들속에서 범인을 찾으려니 벌써부터 구역질이 나는데요.’
문형사가 껌을 요란스럽게 씹어대면서 말했다.
“하수구속으로 안들어간것만도 다행으로 알아.”
왕반장이 눈을 흘겼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것 같아요.”
그 말에 병호만 빼놓고 모두가 웃었다. 그큰 카멜 꽁초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②번 쓰레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았다.
담배꽁초:14개(88라이트 4, 글로리 3, 하나로 2, 88디럭스마일드 2, 말보로 1, 메리트 1, 카멜 1).
종이류: 8개(휴지 2, 비행기표 1, 령수증 1, 껌껍질 2, 약봉지 1, 명함 1).
기타: 3개(OB 맥주캔 2, 볼펜 1).
③번 쓰레기는 ①과 ②에 비해 훨씬 많았다. 뒤골목의 으슥한 곳이라 사람들이 함부로 쓰레기를 버렸기때문인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