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팡에 보고 있으면서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지 못했어요. 사람의 눈이란 정말 믿을게 못돼요.”
화시의 말에 조형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왜 이상하다는거지? 우리 나라 사람들은 한자를 많이 섞어 쓰잖아? 한자를 혼용하는게 우리 말의 특징이잖아?”
“그렇게 보면 이상한게 하나도 없죠.” 왕형사가 불만스러운듯 그를 막고 나섰다.
“난 녀자를 한자로 쓴게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아. 뭐가 이상하다는거지? 다시 한번 보라구.”
조형사의 말에 모두가 다시 한번 복사지를 들여다보았다.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이상하지 않다면 이상하지 않고 그런데요.”
문형사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병호는 누가 뭐래도 좀처럼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는 별로 내색을 하지 않는 타입이였다.
“만일 범인이 아주 무식한자라면 녀자를 굳이 한자로 표현하지 않았겠지. 여기 보면 녀자라는 한자 단어가 모두 세개 있는데 이걸 모두 한글로 바꿔봐요. 만일 한글로 썼다면 다른 한글속에 묻혀서 별로 눈에 띄지 않을거야. 범인은 녀자라는 말을 강조하고싶었고 그 단어를 눈에 띄게 하고싶어서 모두 한자로 표현한것 같아. 만일 범인이 지식수준이 낮은 자라면 그런 생각까지는 못하겠지.”
“그렇죠.”하고 문형사가 병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협박같은것은 편지나 전화로 하기 마련인데 놈은 왜 벽보를 붙였을가요?” 정문자가 핼쑥한 얼굴로 물었다.
“그야 뭐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싶어서 그런거겠지. 영웅심리에 사로잡힌 정신병자의 짓이야.”하고 화시가 말했다.
“그리고 범인은 벽보를 붙이면서 짜릿한 스릴을 느꼈겠지. 범인은 스릴을 즐기는 대담한 놈 같아. 그런데 왜 벽보를 하나만 붙였을가.”병호는 손가락을 하나 세워보였다.
“하나만 가지고는 별로 효과가 없잖아?”
“네. 그렇겠는데요.”
“이렇게 글자를 정성들여 오려붙인거라면 벽보를 많이 만든다는게 어렵지 않을가요?”
“복사를 해서 뿌리지 않는 한 어렵겠지. 하지만 몇개정도느느 만들었을것 같은데 한번 알아보라구. 이런 벽보 다른 곳에도 붙어 있다면 경찰에 신고전화라도 있을거야.”
“우리 관할구역내에 붙어있다면 지금쯤 무슨 련락이 있을텐데. 다른 구역에 붙어있다면 일부러 알아봐야 할겁니다.”
“빨리 좀 알아보라구.”
안형사가 재빨리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당직형사는 뚱뚱한 남형사였다. 40대초반의 그는 머리가 벗겨져서 실제 나이보다는 댓살정도 더 들어보였다. 그는 책상앞에 앉아 쉴새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고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와 잠자코 서있는 안형사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나서 그는 전화기에 대고 하던 말을 계속했다.
“어제밤에 송치됐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건 물라요… 아마 몇달 고생해야 할거예요. 더구나 지금은 특별단속기간이라 잘못 걸렸어요… 그럴 필요 없고 우선 변호사를 선임하세요. 그게 제일 빨라요… 글쎄, 한번 알아보죠. 련락을 해드릴테니까 전화번호하고 성함을 말씀해보세요.”
그는 메모지에다 상대방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재빨리 갈겨 쓰고나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쉬였다.
“아이구 죽겠다. 뭐야?”
“저기, 혹시 오늘 아침에 이상한 전화신고 없었나 해서요.”
대답은 하지 않고 담배를 한대 피워 물더니 한숨과 함께 연기를 기분 좋게 내뿜는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