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10월26일,평화와 정의를 향한 안중근의사의 할빈의 총소리가 세계를 진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더우기는 많은 중국인들은 안중근이 누군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륙속 문장을 발표해 안중근 알리기에 팔걷고 나섰다. 1989년5월14일,할빈일보(중문판)의 '태양도'문예란 제28기에 '안중근의사 할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격사'란 문장을 발표해 80년전 할빈역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안중근이란 위대한 인물이 있었음을 독자들에게 알렸다. 1990년 6월에는 할빈시정치협상회에서 꾸리는 내부간행물 '할빈문사자료'(중문판) 제14기에 '안중근의사 이토히로부미를 격사 '란 문장을 발표하여 할빈의 정계인사들에게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했다. 또한 1992년 12월, '안중근의사 이토히로부미를 격사'란 문장을 청소년독물로 개편하여 '얼음도시열혈보'아동총서 제4권 '흑토의 수리개'(중문판)에 발표하여 광범한 청소년들에게 안중근의사의 영웅업적을 소개하였다. 이외에도 수십차례의 크고 작은 강연회와 안중근의사관련문장 련재를 통해 각계 각층의 사람들에게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함으로써 안중근의사에 대한 긍지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활약했던 안중근연구회, 후날에 설립된 할빈조선민족예술관 안중근전시실, 안중근의거현장표지물설치, 할빈조린공원 안중근기념석설치 등에도 모두 그의 직, 간접적인 노력이 슴배여 있었다.
또한 서명훈선생은 안중근의사가 의거를 실행한 할빈 현장에 거주하는 리점을 적극 활용해 한국, 중국, 일본,조선, 미국의 각종 자료를 실증적으로 검증해 왔다. "력사는 진실을 토대로 한다. 잘못된 서술 하나 하나가 모이면 다른 력사가 되고 만다. 오류를 바로 잡아 제대로 된 력사를 후대들에게 남겨야 한다."며 각종 출판물가운데 나타난 안중근의사 의거에 관한 잘못된 서술을 밝혀놓았다. 이렇게 밝혀놓은것이 지금까지 20여가지에 달한다.
서명훈선생은 “안중근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사이의 거리에 대해 어떤 자료는 1m, 어떤 자료는 2m, 또 어떤 자료에는 8발짝, 5발짝, 10발짝 제각각이였다”면서 “할빈역사 보수전 수십번 안중근의거현장을 답사하고 각종 자료와 상황을 종합해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5m였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년세도 많으시고 황반성병변으로 시력이 급속히 감퇴되여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지 말라는 가족과 주변의 반대도 불구하고 서명훈선생은 살아 있는 날까지 안중근연구를 견지할것이라며 강행군을 거듭했다. 2005년 8월 병상에 있으면서도 '안중근의사 할빈에서의 열하루'란 책을 중한문으로 출판한 기초우에서 2009년 안중근의사 의거 백주년을 맞이하는 할빈시의 최대선물로 출판되는 '중국인 마음속의 안중근'(중문판)력사자료집을 펴내기 위해 지난한해 홍콩, 광주,상해, 북경, 천진, 심양, 장춘 등 도시들의 도서관과 당안관을 전전하며 100년전의 자료를 수집정리했다. 서명훈선생에 따르면 안중근의사 의거 당시 각국 언론들은 이를 특대소식으로 게재, 일본신문들은 이토라는 자국의 대정치가를 추모하는 문장을 싫었고 서방국가들에서는 '아시아의 위인'이 죽어 애석함을 보도했다. '대한매일신보','제국황성신문' 등 한국의 신문들은 안중근의사의 할빈의거와 려순공판을 공정하게 보도했으나 일제의 탄압하에 기사를 대대적으로 취급하지 못했지만 중국의 진보적인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특히 상해에서 중국의 언론활동가 우우임(후날 국민당정부 검찰원장 력임)이 꾸리는 '민우일보'는 1909년 10월 3일에 창간되였는데 안중근의사의거 다음날인 10월 27일부터 11월19일까지 54편의 문장을 실어 안중근의사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1909년 11월19일 중국정부에 대한 일제의 압력으로 정간당했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자료를 남겨놓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인 마음속의 안중근'이란 책에 수록되는 글들은 사상 처음 발표되는 학술편으로 중대한 력사적의의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안중근의사에 대한 주은래총리등 중국명인들의 평가에서도 볼수 있는 바와 같이 안중근의 의거는 중요한 력사적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이를 백번 천번 강조해도 과분하지 않다고 봅니다. 력사적인 현장-할빈에 있는 우리로서는 당연히 앞장서서 안중근의사를 널리 알려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젊은이들의 관심이 부족한것이 아쉽습니다. 만약 젊은 학자들이나 지성인들이 안중근연구에 나선다면 백방으로 지지할것입니다. "서명훈선생이 남기는 간곡한 부탁이다.
/안중근의거 백주년 기념행사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