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옛날에도 넌, 넌, 이짓만은 날 그냥 죽여줬어!”
“그렇겠지, 다른 사내들보다 내가 멋진거 확실하지?”
“어머! 난 몰라...”
( 아니, 세상에 저런 인연도 있단 말인가? 결혼해서 같이 살다 싫어서 리혼을 했으면 남남이 된거 아닌가? 그리고 지금도 다시 회복할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다면서? 그런데도 저렇게 좋아 한몸이 되여 딩군단 말인가?...)
성만이는 세상을 오래 살다보니 별의별 인간들을 다 보게된다는 종작없는 생각에 어리둥절해진다.
... ...
안개가 자욱한 이 아침, 성만이가 만약 입을 연다면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동창들이 깜짝 놀랄 폭탄 같은 뉴스가 바로 간밤에 훔쳐본 대머리와 주영주의 비밀이였다. 하지만 그는 목구멍이 간질거리는것도 가까스로 꾹 참고 있다. 사내라는 놈이 참새주둥이처럼 입이 빠르다는 대머리의 비난도 듣고 싶지 않거니와 그보다도 주영주는 스스로 싫다고 차버린 전 남편의 품에도 안기는 녀자이니 자기가 놓는 덫에는 영낙없이 걸릴거라는 뒤넘스러운 생각이 꿈틀거렸던것이다.
동창생과 사돈
동창들이 삼삼오오 별무리호텔 정원에 흩어져 신선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강현수와 최윤희는 둘이서 어디론가 조용히 산책을 하고 돌아오고 있었다. 남자인 강현수는 키가 겨우 최윤희의 어깨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시절부터 성격이 외진 최윤희는 남자건 녀자건 많은 동창들과 휩쓸리려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유독 난쟁이 키를 겨우 면한 강현수하고는 남달리 친근하게 지냈었다.
그렇게 둘이 걸어오는걸 보고 구금자가 다가갔다.
구금자는 어제 오후부터 최윤희를 조용히 만나려고 했는데 최윤희가 시내로 나갔다가 연회를 시작할 때에야 돌아오는 바람에 그럴 기회가 없었다.
“현수, 윤희를 잠간 저한테 빌려주겠어요?”
“금자 얘 말하는걸 좀 봐. 내가 뭐 물건이야?”
“호호, 현수는 자리를 좀 비키고 시간 좀 빌리자는 말이야,”
“그래 물건을 마스지는 말고 마음대로 가져다 쓰게나.”
강현수는 눈치를 채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한다.
그러자 구금자는 정답게 최윤희의 손을 잡고 동창들과 거리가 조금 떨어진 화단쪽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내 어제 오후에도 윤희 널 찾았는데 네가 보이지 않더구나.”
“응! 아는 사람 만나러 잠간 할빈시내에 나갔다왔어. 그런데 무슨 일로 날 찾았지?”
최윤희는 이상스러워서 구금자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이제 알고 보니 지금 우리 대학에서 석사공부를 하는 박화라는 처녀애가 너한텐 조카벌 되는 애라더구나.”
“맞아, 그런 조카애가 있어. 그런데 네가 그걸 어찌 알지?”
“이틀 전에 현수가 알려주더구나.”
“오, 그랬구나. 맞아 현수한테 그런말 했어.”
“윤희야, 그럼 정말 잘됐다.”
“뭐가 잘됐다는 거니?”
구금자는 반가와서 얼굴이 환해지는데 최윤희는 점점 이상한 느낌에 두 눈이 쪼프러진다.
“그 박화란 앤 오래전부터 내 잘 알고 있어.”
“?... ...”
“다른 뜻이 아니고 내 너하고 사돈맺고 싶어 그래.”
“사돈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호호 그 앨 내 며느리로 삼고 싶단 말이다. 너네 그 조카앤 키는 조금 작은 편이지만 볼수록 귀엽고 반듯하게 자란 애더구나.”
“오- 그런 일이였구나. 그거 참, 반가운 일이네. 동창생끼리 사돈까지 되면야 금상천화겠네. 그럼 너네 아들도 북방사범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거니?”
“아니야, 우리 아들은 백청아라고 하는데 지금 상해 교통대학에서 연구생공부를 하고 있어.”
“그럼 애들끼리는 만난적 있고?”
“지난 겨울방학때 내 우리 대학 도서관에서 조용히 둘을 대면시켰는데 둘은 서로 마음 들어하는 눈치인것 같더라.너도 이제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만 우리 아들도 참 훌륭하거든.”
“그래?”
최윤희는 약간 당황한 눈치를 보이더니 이윽고 깊은 상념에 잠기는듯 싶었다.
“왜 말이 없는거니?”
“호- 우리 조카애가 싫어하지 않는다니 조금 이상해서 그런다. 내가 알기로는 그 애가 이미 다른데 대상자가 있다는것 같던데...”
최윤희는 그냥 긴장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아닐건데... 대상은 없다고 그 애 입으로 똑똑히 말하던데, 너네 그 조카앤 그런 거짓말을 할 앤 아니지 않나?”
이번엔 구금자도 가슴이 섬찍해 난다. 아들이 머리가 커서 대학생으로 된 후부터 대학 도서관에 출근하는 구금자는 은근히 며느리감을 물색하느라고 조선족녀학생이라 하면 두번 세번 눈길을 더 주며 관찰해왔었다. 그러던 와중에 박화라는 처녀애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구금자 다운 섬세한 눈길로 그 애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관찰하면 할수록 어데 하나 나무랄데가 없이 마음에 들었던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어느 휴일날엔 박화를 다른 녀학생과 함께 자기네 집으로 놀러오게 한적도 있었다. 유독 흠 아닌 흠이라면 박화라는 처녀애는 아들 청아보다 나이가 한살 이상인 그것뿐이였다.
“그래서 지금은 그 애들이 사귀고 있다는 얘기니?”
“그럼, 그렇게 만나본후 그 애들 둘은 날마다 메일을 주고받고 있거든.
며칠전에 내가 도서관에서 책장들을 정리하다가 볼라니 언제 들어왔는지 너의 조카애가 도서실 한 모퉁이에서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것이 눈에 띄우더구나. 그래서 그 애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내 사무실로 데리고 갔지 뭐야. 그런데 그 애가 하는 말에 조금 실망이 드는거야.”
“왜서?...”
“글쎄 우리 청아하고 결혼까지는 생각해본적이 없다는게 아니겠니.”
“호- 내가 방금 뭐라 하던. 그 앤 따로 사귀는 총각이 있을거라고 하지 않았나.”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디 다른데 봐둔 대상이 있는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직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하더구나 뭐.”
“그럼 왜서 싫다고 하더니?”
“싫다는건 아니고 우리 청아가 자기보다 나이 한살 어리길래 귀여운 동생처럼 생각하지 그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거였어. 그래서 마침 네가 왔으니 좀 도와 달라는거야, 녀자가 나이 한살 이상인게 무슨 대수야. 그리고 남자켠에서도 전혀 꺼려하지 않는데 그 애가 절로 고민할게 뭐 있나 말이다. 그러니 네가 이제 그 조카애를 만나거들랑 한번 좀 잘 말해달라는 부탁이야. 상해에 있는 우리 아들 청아도 전화통화를 해보면 박화하고는 이젠 정이 많이 든것 같아 보여서 이러는거야.”
“글쎄다. 나는 우리 조카애가 북경엔가 어딘가 대상이 있다고 우리 오빠한테서 들은적 있는것 같아서 하는 소리다. 그리고 연분이란건 하늘이 정해주는 일이지 억지로 마주 세워놓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지 않니. 설사 다른데 대상자가 없다고 해도 접촉을 해보니 너네 아들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지만 차마 너한테 속마음을 드러내기가 어려워서 그랬을 수도 있는 일이고 또 너희 아들의 립장에서 봐도 전화야 어찌 했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할수도 있지 않겠니...만약 정말 다른 속셈들이 있다면 이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것 같구나. 난 우리 조카 얠 못 본지도 여러해 되거든. 그러니 내가 찾아가서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애 마음을 돌려세울수 있을는지 파악이 전혀 없다는 얘기야.”
“그렇지 않아, 내 느낌으로는 애들 둘이 다 서로를 좋아하는것만은 사실이야. 내가 너의 조카애가 하는 소릴 듣고 우리 청아한테 전화를 했더니 우리 앤 펄쩍 놀라는 눈치더구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별로 그 애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 박화란 애가 죽자 살자 자기를 따른다고 하더구나. 물론 그 말이야 날 들어라고 해보는 소리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부탁하는거야.”
“그래, 내가 이제 조카애를 만나면 잘 말해볼게.”
“고맙다. 윤희야!”
“그런데 말은 해보겠다만 나한테 너무 큰 기대는 걸지 말거라. 다시 한번 내 견해를 말한다만 처녀, 총각의 혼사란 어디까지나 연분이 있어야 되는거야. 그런 연분이 없으면 말이 아니라 금산을 안겨줘도 안될걸.”
“알았어, 어제부터 이말 하려고 윤희 널 조용히 만나고 싶었던거야.”
“사돈을 맺으려고?!”
“그래!”
둘은 마주보며 기분 좋게 웃는다.
주정뱅이 이야기
별무리호텔 정원 한가운데 있는 분수못가에는 안송옥이 김순애 전수향이랑 몇몇 녀성들이 모여 서서 안개가 피여오르는 분수못 수면우의 련꽃을 흔상하고 있었다.
“나원, 뭘 그렇게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거야?”
이때 뚝배기가 끌신을 질질 끌며 녀성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우- 이 익살꾸레기를 어쩔가? 동창들이 모여들어 뚝배기를 이 련꽃못에다 거꾸로 쳐넣었으라면 속 시원하겠다.”
장난이 심한 뚝배기가 이른 아침부터 방마다 다니며 문을 두드려 대는 바람에 새벽잠을 설쳤던 동창들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투덜거리는척 해도 무랍없는 장난이여서 밉지가 않았다. 그래서 안송옥이는 주먹으로 때리는 흉내를 내는데 뚝배기는 한발 피하며 물러선다는것이 그만 끌신이 발에서 쑥 빠져 나왔다.
“어머나!”
안송옥이 뚝배기의 발을 가리키며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곁에 있던 김순애, 전수향이도 일시에 새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모두들 여기 와서 이 뚝배기를 보거라!”
“저쪽에 반장이랑 교수님이랑도 빨리 여기 와서 희한한걸 구경해요!”
분수못가에 있던 녀성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야단이다.
그 소리에 안개 덮인 별무리호텔의 너른 정원에 저마끔 흩어져 놀던 사람들이 왁작 고아대는 분수못 주위로 모여들었다.
안송옥이와 김순애는 지금 막 오고있는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려고 땅바닥에 펄렁 들어앉은 뚝배기의 두 다리를 한사람이 하나씩 허공에 쳐들고 있다.
뚝배기는 한쪽발에 하나씩 목이 긴 흰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량쪽 발 모두 발바닥은 새까만 때가 다닥다닥 들어붙은 맨발이고 두 발등과 발목만 살이 안 보이게 양말목을 차고 있었던것이다.
“어머! 왜 이렇게 된거예요?”
최윤희와 사돈맺을 이야기를 하고 이리로 오던 구금자는 단통 두눈이 휘둥그래진다.
“어제 밤에 나원! 구두를 벗어 던지고 양말바람으로 춤을 췄더니 이 모양이 된거야.”
와- 정원이 떠나갈듯 웃음소리가 터진다. 그 소리에 꼬리를 까닥거리며 울고있던 까치란 놈도 놀라서 어느 사이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하긴 나도 딱 뚝배기처럼 양말이 이렇게 밑바닥이 없어진적 있었어.”
강현수가 모여든 동창들 한가운데 나서며 하는 말이다.
“너는 또 어쩌다?...”
“너희들이 내 옛말을 들으면 기가 막혀 죽어들 번져질거야.”
강현수가 몽통한 팔을 내저어가며 옛말을 시작한다...
사진기를 둘러메고 벌리현으로 취재를 갔던 강현수는 점심때가 되여갈 무렵, 왜긍진 민주촌이라고 하는 조선족마을에 들어섰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마을 큰길에는 가마며 불룩한 자루며 어깨와 등에 둘러멘 마을사람들이 나와있었다. 그래서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어제까지 모내기가 끝나서 사십대 부부들이 함께 들놀이를 간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발이 긴 신문사 기자도 면바로 시간 맞추어 왔으니 함께 가자며 무작정 팔을 끌었다. 어디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소라면 절로 어깨춤부터 나오는 강현수인지라 그런 떡판을 마다 할리 만무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 따라 동네에서 북으로 펼쳐진 넓은 벌을 지나 왜긍하 강변으로 갔다. 기나 긴 은띠마냥 기름진 벌을 길게 끼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니 강현수는 기분이 날것 같이 좋았다. 눈만 뜨면 사람과 차들로 붐비는 대도시에서 개미 채바퀴 돌듯 분주히 돌아치다가 눈앞이 확 트이는 대자연의 품에 안기고 보니 쪼그라들던 숨통이 펴지는듯 가슴이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마을사람들은 개도 한마리 잡아 네각을 뜯어 들고 왔고 국을 끓일 메기에 생회를 칠 붕어도 수두룩이 가지고 왔다. 그렇게 풍성하고 기분 나는 들놀이라 강현수는 사람들이 권하는 사발들이로 독한 소주를 마셔댔고 마시다는 춤을 추고 춤을 추다는 또 마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이제는 그만들 돌아 가자며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그런데 강현수는 그새 아래다리뼈가 물러났는지 걸음을 걸을수가 없었다. 더구나 길이란 좁은 논뚝길이여서 거퍼 둬 발작 걸음을 떼다는 물이 고인 논판으로 허망 고꾸라지군 했다. 그래서 결국은 누군가의 등에 업혀 마을로 돌아가게 되였다.
그렇게 남의 등에 업혀 얼마를 갔는지 눈을 게슴츠레 떠보니 민주촌이란 동네가 가까이에 보였다. 강현수는 누군가의 등에서 내리겠다고 발버둥질 쳤다. 뇌의 세포마다 알콜이 그득 그득 고인 의식에서도 신문사 기자라는 놈이 술에 취해서 남의 등에 업혀 오는걸 마을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웃으랴 하는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은 단순한 생각만은 간들간들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강현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밤이였다. 그런데 한쪽 다리는 좁은 도랑물에 푹 잠그어져 있었고 몸체는 풀이 무성한 도랑언덕에 비스듬히 누워있었는데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어두운 벌에는 반디불 같은 손전지불들이 도처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건 또 웬 일일가?)
강현수가 도처에서 반짝거리는 손전지불들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 있는데 마을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고요한 벌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전체 민병련 동무들! 전체 민병련 동무들! 다시 한번 알립니다만 낮에 우리 민주촌에 오신 손님 한분을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전체 민병동무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속히 뒤벌로 손님찾으러 나가기를 바랍니다! 속히 손님 찾으러 나가기를 바랍니다!”
(저게 무슨 소리야?...)
강현수는 정신이 펄쩍 들었다. 지금 마을 확성기에서 찾는 손님이란 바로 술에 취해 도랑뚝에 이렇게 자빠져있는 자기를 말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던것이다.
“그래서 말이야...”
흥분해서 얼굴이 벌개진 강현수는 손짓 발짓 해가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나는 어둠을 타고 슬며시 마을 뒤동네에 사는 차지서네 집으로 도망을 갔지 뭐야. 그 마을은 전에도 둬번 취재를 간적 있어 내가 차지서네 집을 잘 알고 있었거든.
아마 모두들 날 찾으러 나갔는지 방안은 텅텅 비여있었어. 그래서 너른 방구들에 올라가 올방자를 틀고 점잖게 앉았지, 뭐야. 그런데 그때 말이야 발을 내려다보니 지금 저 뚝배기가 신고있는 양말처럼 양말바람으로 모래밭에서 춤을 춰재껴 양말바닥이 싹 다슬어 없어졌더란 말이야...
소 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지. 글쎄 비맞은 솜뭉치처럼 온 몸이 축 처진 나를 등에 업고 논뚝길을 걸었던 그 량반도 아마 술은 어지간히 되였던 모양이야. 그러니 나를 분명 어느 풀밭에다 눕혀는 놓았는데 그 눕혀놓은 자리가 도대체 어딘지를 모르는거였어.”
“그래서 어쨌는데?...”
“어쩌긴 뭘 어째? 이 ‘앉으나 서나’가 술 먹고 그렇게 온 동네가 들썽하게 망신을 당한적도 있었단 얘기지.”
“어머- 현수가? 어쩜 그런 일도 다 있었어요?”
강현수를 바라보는 구금자는 눈이 동그래진다. 같은 할빈에서 살고 있어 자주 만나지만 이처럼 기막히게 술주정을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정말이지, 술을 마시면 못하는 짓 없어. 우리 옆집엔 말이야...”
강현수의 이야기에 모두들 재미나서 넋을 잃고 듣자 도수 높은 안경을 눈에 건 맥주병밑굽이 입을 연다.
“내가 사는 바로 옆집엔 우리 학교 우씨라는 수학선생이 살고 있는데 그 우선생의 안해가 한국으로 가는 날이였어... 그날 자기 안해를 기차역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온 우선생은 기분이 몹시 쓸쓸했던지 혼자 음식점에 들어가 술을 기껏 퍼 마신거야. 그리고는 비틀비틀 팔자걸음을 하며 제집을 찾아왔는데 이 한심한 량반이 글쎄 무작정 출입문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구두발로 걷어차는 판이야. 그 투당탕 요란한 소리에 내가 밖으로 뛰여 나가 ‘우선생 왜 그래?’하고 물었더니 이 량반이 뭐라 하는줄 알어?! 네편네가 귀구멍에다 옥수수쐐기를 틀어박았는지 문을 당쳐 열어주지 않는다는거야. 그래서 내가 ‘당신 안해 오늘 한국으로 가지 않았소?’이랬더니 ‘허, 그랬던가...’하면서 바지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길래 나는 열쇠뭉치를 꺼내는가 했더니 열쇠뭉치가 아니라 핸드폰을 꺼내는거야. 몸이 흐트러져 비틀거리면서도 핸드폰을 귀에 대고 뭐라 하는줄 알어? ‘여보! 비행기 탔어? 그 옆자리에 한국놈 앉았지? 그놈하구 오입하면 안돼!’ 이러질 않겠나. 그래서 내가 그 핸드폰을 빼앗았는데 빼앗고 보니 이 량반은 지금 핸드폰은 근본 켜지도 않고 고아대고 있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