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말이다. 우리도 좀 알자?”
낮에 동창들이 모여서부터 수련이와 철규가 죽었다는 소리에 모두들 크게 놀랐지만 미처 상세하게 물을 사이가 없어 속으로 궁금해하던 참이다.
“수련이는 처음에 정신병에 걸렸어...”
“정신병? 어쩌다?”
순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첫마디부터 충격적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학다닐 땐 그렇게 얌전하고 조용하고 또 수줍을 많이 타던 수련이가 아니였던가?! 언제던가 물리반의 한 남학생이 련애편지를 보내왔는데 스무살도 넘은 다 큰 처녀가 련애편지를 받은것이 너무나 남보기에 부끄러워 하루종일 얼굴도 못쳐들던 그런 수련이가 말이다.
그래서 모두들 숨을 죽이고 김순애의 입만 재촉하고 있다.
순애는 대학을 졸업할 때는 수련이와 다른 현의 한 중학교에 배치 받았었다. 후에 친척의 소개로 수련이가 있는 계동현중학교의 한 총각선생과 결혼을 하게 되자 남편 따라 수련이네 학교로 전근되여 4년이나 한 교실에서 공부한 두 동창생이 또 같이 한 사무실에서 사업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래 수련이는 결혼 했댔어?”
“결혼을 하지 않구. 딸애가 다섯살 나던 해에 그렇게 정신이 잘못 되였어!”
“그럼 걔가 병에 걸릴 때도 넌 곁에 있었겠구나?”
“있다뿐이겠니, 그 당시 내가 제일 먼저 발견했는데...”
김순애는 그때의 일이 떠올라 도리머리를 달달 떤다.
“어느날 오후부터였어. 나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수련이가 갑자기 허허, 허허 하고 너털웃음만 자꾸 웃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별난양 하지 않겠니. 그래서 저 애가 왜 저럴가 하며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튿날 아침 출근을 하는데 어쩌겠니. 한광주리 북데기처럼 머리를 마구 풀어헤친 수련이가 글쎄 숱한 학생들이 한창 등교하고 교원들이 출근하는 긴 복도에서 두 팔을 너펄거리며 마구 뛰여다니지 않겠니. ‘저애가 왜 저래?’ 나는 깜짝 놀랐어. 그래서 마구 달려가 두손으로 수련이를 꼭 잡은거야. ‘야, 수련아, 네가 이게 웬일이야?’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수련이는 내 말에는 응대도 않고 눈을 희번득거리며 나의 어깨를 꾹 움켜쥐더니 엉뚱한 질문을 들이대는게 아니겠니. ‘얘 순애야, 사람의 피는 무슨 색갈이야?’ 이렇게 엉뚱한 질문 말이야. 그래서 내가 ‘너 미쳤니? 사람의 피야 붉은색이지 무슨 색이겠니?’ 그랬더니 그 애는 그런게 아니라며 헝클어진 머리를 마구 휘젓는거야. ‘사람의 피는 시누-런 색갈이야. 하하. 야, 순애야! 황금색이 시누런 색갈이지? 그치?! 그치?! 그리구 사람이 변소간에서 누는 똥두 시누런 색갈이구. 맞지?! 그치?! 그치?!’ 이러는거야.
너희들 생각해보렴. 마침 아침 등교시간에 복도에서 이렇게 야단을 치니 학생들이고 선생이고 우리 두사람 주위에 물샐틈없이 꽉 몰려들었던거야. 수련이는 그때까지도 두손으로 나의 어깨를 꾹 움켜쥐고는 그냥그냥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내 몸을 죽기내기로 흔들어만 대는거야. 그제야 나는 얘가 정말로 정신이 잘못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 뒤엔 또 어쩐줄 아니? 그 애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꽉 몰려선 사람들을 마구 헤집고 빠져나가더니 곧추 자기가 맡고 있던 초중 3학년 2반 교실로 뛰여 들어가는거야. 그러더니 분필지우개로 교탁을 탕탕 두드리면서 먼저 일찍 등교한 몇명 안되는 학생들을 향해 ‘너희들 아느냐? 사람의 피는 누런색이야! 누런색은 똥색이야! 사람 똥! 개 똥! 돼지 똥!...’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거였어.”
이렇게 수련이가 정신병이 발작하던 그 장면을 생동하게 그려보이던 순애는 이어서 동창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성에서 그리 멀지 않는 시골에 사는 수련이네 친정집엔 어머니와 우로 오빠 둘이 있었다.
그런데 큰 오빠는 나이 서른다섯이나 먹었고 작은오빠도 서른두살이나 되였지만 시골에 처녀라고는 씨가 말라 두 오빠 모두 여직껏 장가를 못가고 있었다. 과연 이처럼 과년한 아들이나 딸을 두고 있는 집이라면 그런 집 부모들은 속이 타서 재가 될 일이련만 수련이네 친정집에서만은 이웃을 웃기는 희한한 일이 생겼다.
전에 여러해 동안 마을에서 부녀주임사업까지도 해왔다는 수련의 어머니는 본 마을은 물론, 린근 조선족동네들까지 참빗질하며 조선족처녀를 장가 못간 한국사람들한테 소개해주느라고 눈에 쌍불을 켜고 돌아다녔는데 일단 혼사가 성사되면 한국측으로부터 인민페 5천원씩 얻어가지는 국제 중매군이 되였던것이다.
그렇게 돈에 환장을 한 친정 어머니의 행실을 고깝게 생각한 수련이는 가끔 휴일날 친정집으로 가게 되면 ‘과년한 나이에 아직도 장가를 못든 오빠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런 재간이 있으면 오빠들에게 며느리나 하나씩 얻어주지 그래요.’ 하면서 친정어머니를 애끓게 타일렀다. 그랬어도 이제는 돈맛에 혼이 나간 친정어머니는 딸애의 말은 아예 귀등으로 듣고있었다.
물이 끓어 백도가 넘으면 김으로 변하듯이 무슨 일이나 ‘도’(度)라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으면 더 엄청 무서운 부작용이 찾아오는 법이다. 마침내 수련이네 친정집에는 날벼락이 떨어지고 온 가정이 풍지박산 나는 전대미문의 비극이 벌어졌다.
그때쯤 이 마을엔 시집가서 3년만에 리혼을 하여 젖먹이 어린애를 품에 안고 친정집으로 온 나젊은 과부가 있었는데 그 과부와 수련의 큰오빠가 눈이 맞았던것이다. 하여 그 젊은 과부도 수련이네 집으로 자주 찾아오고 수련이 큰오빠도 매일같이 어두운 밤이 오기를 기다려서는 슬금슬금 그 과부네 집 뜨락으로 들어가서는 그녀가 애를 껴안고 자는 안방문을 톡톡 두드리군 했다. 그런데 수련의 친정어머니는 그렇게 큰아들과 한창 사랑이 무르익어 가는 그 젊은 과부마저 어떤 뱀새눈을 가진 한국의 어느 산골에 사는 늙은 총각한테 붙여놓았던것이다. (하긴 수련의 어머니가 자기의 큰아들과 그 젊은 과부가 좋아하는 관계를 눈치 챘었는지는 영원히 해명할수 없는 일이다.) 여하튼 그 젊은 과부는 결국 마음이 변해서 한국으로 시집가는데 동의하게 되였다.
그러자 어느날 밤, 수련의 큰오빠는 시퍼런 도끼를 들고 그 과부네 집에 뛰여 들어 그녀와 젖먹이 어린애를 란도질해 죽인 다음 그길로 집으로 돌아와 가마목에서 고양이처럼 잠을 자는 어머니를 도끼로 사정없이 내리찍어 생모의 머리를 박산냈다. 그리고는 자기도 그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농약을 먹고 자살했던것이다. 수련의 작은오빠는 그날 밤, 그 피비린 란동을 직접 목격한 뒤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졌는데 지금까지도 종무소식이라고 한다...
김순애가 무겁게 꺼내는 수련이와 그 가정의 처절한 이야기에 동창들은 놀라움과 애절한 심정이 뒤엉켜 숙연히 머리들을 숙인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사람의 피는 누렇다!
누런것은 금색갈!
누런것은 똥색갈!
그렇게 얌전하던 수련이, 그렇게 조용하고 수줍던 동창생 수련이...
생명이 멈춰선 그 수련이는 지금도 저 하늘 나라에서 뇌리에 앙금처럼 남은 이 말만 그냥, 그냥 부르짖고 있는듯 싶다.
“야- 수련이가 불쌍하구나!”
김순애가 들려주는 너무너무 끔찍한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누군가 감탄을 자아내는데 강현수가 무겁게 입을 연다.
“철규의 일은 들으면 더 한심하다구!”
... ...
철규
민철규도 대학시절 대머리처럼 문학을 즐겼다. 시도 쓰고 수필도 쓰고 소설도 썼다. 그는 졸업을 앞두고 두달씩 실습을 할 때 할빈에 있는 ‘진달래’잡지사에서 편집 일을 하였다. 그때 철규의 문학재능을 발견한 ‘진달래’잡지사의 주필들은 졸업하면 철규를 잡지사에서 정식 편집으로 받기로 결정지었다. 그런데 정작 졸업을 하게 되자 철규는 할빈이란 대도시의 유혹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집 쓰고 고향인 의란현에 돌아가서 북평촌이란 시골마을에 있는 향 조선족중학교의 어문교원으로 되였다.
철규는 대학으로 오기전에 한마을에 있는 처녀와 약혼을 했었는데 4년간 그 처녀는 남편도 없이 외동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외롭게 사는 철규의 어머니를 저녁마다 동무해주며 친어머니보다도 더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그 당시 도시호적과 농촌호적은 하늘과 땅처럼 너무나 엄연한 계급으로 갈라져있었는데 ‘진달래’잡지사에서는 철규는 정식 받기로 결정하되 할빈 녀성을 제외한 외지녀성과 약혼을 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는 까다로운 조건부를 내놓았던것이다. 그래서 철규는 할빈이냐 미혼부냐를 놓고 남몰래 여러날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흔연히 미혼부를 택하게 되였던것이다.
“철규는 시골에서 교편을 잡으면서도 ‘진달래’잡지사와 우리 신문 문학작품지면에 시, 수필을 여러 편 발표했어.”
강현수의 말이다.
“그리구 철규는 학생들의 작문지도도 아주 뛰여나게 잘했어. 비록 시골학교지만 철규가 가르친 그 학교 학생들은 어느 작문콩클에든 나서기만 하면 번번이 상을 탔던거야... 난 말이야. 의란현에 취재를 갈적마다 꼭꼭 철규네 집에가 하루밤 같이 자군했어.”
이렇게 서두를 떼는 강현수는 동창들에게 철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
강현수가 취재차로 의란현 농장촌이란 마을에 들어서는데 촌사무실 뜨락에 숱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떠들고 있었다.
“저 강북에 있는 북평학교의 소설 잘 쓰는 철규란 선생이 죽었다며?!...”
그 소리에 강현수는 자기 귀를 의심할 지경으로 깜짝 놀랐다.
“방금 뭐라고들 하셨습니까? 철규선생이 죽었다니 지금 민철규선생을 말하는겁니까?”
“예...”
“그 사람이 언제? 어떻게 죽었단 말입니까?”
“글쎄 대련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밀입국하려고 컨테이너 안에 숨어서 가다가 산소가 모자라 숨이 막혀 요절했다지 뭡니까.”
“뭐라구요? 철규가? 철규가 어떻게 그런 짓을?...”
“아마 죽은지는 여러 날 되는것 같구. 그래서 시체를 확인하고 후사에 참여하라는 한국정부의 특별초청을 받고 보름전에 그 선생의 부인되는 사람하구 이상처남이 부랴부랴 한국으로 나갔댔는데 어제저녁에 마을로 돌아왔다구 방금 전에 그 마을을 다녀온 이 동네 사람이 얘기합디다.”
(아니, 지난 봄에 왔을 때도 펀펀 하던 철규가? 그것도 한국으로 밀입국하려고 컨테이너 안에서?... 그자식 죽자고 환장했구나!)
강현수는 그 소리를 듣자 정신없이 의란현으로 달려갔고 또 배를 타고 송화강을 건너 북으로 십여리길 되는 북평촌으로 찾아갔다. 철규네 집은 마을에서 제일 동쪽에 있는 허리가 내려앉은 초가집이였다.
이젠 민철규란 이름 석자만 남은 이 써늘한 상사집에는 비보를 확인하려고 황황해서 달려온 일가 친척들이 맥없이 한구들 앉아있었다.
그 숱한 사람들속에서 철규의 어머니가 강현수를 알아보고 마구 앞으로 쓰러지며 현수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옛날부터 이 마을의 오랜 부녀주임, 지난봄에 보았을 때만 해도 정정하시던 로인이 며칠사이에 그만 십년은 폴싹 늙어버린듯 싶었다.
“어후-우리 철규가...우리 철규가 정말 갔다고 하네...수속밟으러 심양으로 간다기에... 그 수속이 다 됐다며 심양에서 기뻐하며 전화까지 오길래... 어우-어우- 남들처럼 한국 가 돈벌어 이 에미, 이 에미를 만년에 호강시켜 주겠노라고 하더니만 어쩜 이 에미 먼저... 이 에미 먼저...”
철규의 어머니는 육신이 찢기는듯한 이 괴로운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흐트러진 몸매를 자꾸자꾸 뒤틀고 있었다.
애수에 잠겨 푹 꺼진 두눈에서는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다 묻는다는걸 자네 젊은 사람들은 알기나 하느냐?” 라고 말씀하시는것만 같았다.
현수는 오래오래 철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가 지치고 맥없는 로인이 그만 잠이 들어서야 그의 곁을 물러났다. 현수는 이윽고 피기 없는 면상에 맥을 잃고있는 철규 안해의 곁에가 조용히 앉았다. 그러자 기미를 눈치챈 친척들이 약속이나 한듯 주섬주섬 방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