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한침실의 친구들이 목단강 시내에 있는 영화관으로 영화구경을 가게 되였다. 그런데 두루 어찌하다보니 영화 상영시간이 분초를 다투고 있는지라 모두들 급해서 주먹을 쥐고 뛰여 가게 되였다. 그런데 제일 뒤에서 꾸물거리는 철준이 때문에 친구들은 하는수 없이 뛰다가도 한참씩 서서는 기다려야만 했다.
“제길할, 떠날 때 축구뽈 하나 가지고 올걸 잘못했다. 저 철준이 녀석 앞에는 축구뽈이 있어야 정신이 펄쩍 드는건데...”
누구의 입에선가 이런 말이 나왔다.
그런 일이 있은후부터 무슨 일에 철준이가 꾸물거릴 때면 ‘축구뽈을 안겨줄가?’가 전 학급의 공용어로 되였다.
그런 철준이는 바로 앞 책상에 앉은 미란이를 미칠지경으로 사랑했다. 미란이는 키도 녀성들중에서 작은 편이였고 인물도 수수했지만 글씨를 곱게 쓰고 그림을 아주 잘 그렸다. 그래서 학급의 벽보는 미란이가 도맡았었는데 수업시간이 끝난후 가끔 미란이가 여러가지 색분필을 들고 벽보앞에 서있을 때면 어김없이 철준이가 마치도 경호원처럼 곁눈 한번 팔지 않고 그 뒤에 말뚝처럼 서있었다. 아니, 동창들의 말대로 한다면 침을 게질게질 흘리며 축구뽈을 바라보듯 했다. 하지만 미란이는 철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 철준이를 너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니?”
“뭘 말하는지 난 듣고도 모르겠다.”
“너의 마음속에 철준이란 사람이 콩알만큼이라도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있냐 없냐 말이다.”
“호- 넌 그저 한반 동창일뿐이야, 나한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나는 너를 진짜 좋아하는데두?”
“나는 너를 진짜 싫어하는데두?”
“차츰 좋아 보일 가능성도 있지 않니?”
“차츰 미워 보일 확률이 더 커지면 어쩌구?”
“그럼 이후에 또 보자!”
“보고 또 봐도 너는 장철준이고 나는 고미란인걸!”
교실에 다른 동창들이 없을때 둘 사이엔 이러루한 말이 여러번 오고갔다.
그러다가 어느날, 철준이는 미란이한테 귀쌈까지 얼얼하게 얻어맞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날 밤, 저녁자습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철준이가 또 미란이를 붙잡고 싱갱이질 하다가 그런 망신을 당했던것이다...
대학시절 그런 짝사랑이 있었기에 세월이 흘러 25년만에 만났어도 둘 사이는 다른 동창들보다 조심스러웠고 상대방에게 쓰는 언어도 남들처럼 허물없는 ‘야, 자’ 돌이가 아니라 반쯤은 존대말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몸이 어디가 좋지 않은거요?”
“글쎄 이 애는 초중 1학년부터 목단강조중에 기숙을 붙이고 공부를 하는데 일주일전에 방학을 하고 돌아온걸 보니 한창 자라는 애가 몸이 앙상하게 여위였고 끼니마다 밥도 고양이처럼 몇술만 뜨는척 하다는 수절을 놓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번 동창모임에 오는 걸음에 여기 할빈에 있는 큰 병원에 데리고 가서 한번 시원히 전면 검진을 해보려고 해요.”
“그래야지, 한창 자라는 애들의 몸은 절대 등안시 해서는 안된다니까.”
“호-그럼요. 얘 동길아, 얼른 밥을 먹으래두?!”
미란이는 눈을 흘기며 아들을 재촉한다.
그랬어도 핸드폰 메시지에 정신 팔린 아들녀석은 요지부동이다.
“검진은 시간을 재촉하는거요. 내 생각 같아선 동창들은 오늘 이미 만나보았고 래일 저녁에도 함께 보낼 시간이 많으니까, 래일 낮에는 다른 일을 다 제쳐놓고 먼저 애를 데리고 병원부터 다녀왔으면 좋을듯 싶구만.”
“호-고마와요, 그렇게 하지요.”
“그럼 내 먼저 우리 술상으로 가오!”
“예, 저도 인츰 그리로 갈게요.”
철준이는 미란이와 아들이 있는 그 식당에서 나왔다. 등뒤에서 미란이가 얼른 밥부터 먹으라고 아들을 또 재촉하는 소리가 안타깝게 들려온다.
돼지족발
“이보라구, 송옥이, 그런데 ‘족발’ 그 자식은 도대체 왜 동창모임에 안 온다는거요?”
누군가 연수현 민위 부주임으로 있는 안송옥에게 이렇게 묻자 모두들 그 일이 궁금해서 안송옥이를 쳐다본다.
“글쎄 말이래요, 제가 할빈으로 떠나오던 그 전날 저녁에도 직접 상인이네 집에까지 찾아가서 함께 가자고 그렇게 동원했는데도 요지부동으로 끝끝내 버티며 안오는걸 저라고 무슨 방법이 있어요.”
...
‘족발’의 이름은 리상인이다. 그것은 먼 옛날, 대학 1학년후학기쯤 될때의 일이였다.
하루는 리상인이가 한 기숙사에 있는 성만이랑 수길이랑 모두 다섯 친구를 데리고 거리에 있는 음식점으로 술 마시러 가게 되였다. 그때는 대부분이 가정형편들이 어려워서 함께 따라나선 다섯은 전부 빈 털터리였고 유독 리상인의 호주머니에만 5원 하고 10전짜리 거스름돈이 들어있었다. 그런 주제에도 인심 좋은 상인이는 음식점에 들어서자 뭘 먹고 싶느냐며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성만인가 누군가 목구멍으로 마른침을 꿀꺽 넘기며 돼지족발을 먹고 싶다고 했다.
푹 삶은 돼지족발은 저울에 뜨지 않고 한 개에 1원씩 팔았다. 상인이는 돈 3원을 주고 족발 세개를 사서 절반씩 쪼개 여섯 몫으로 나누고 한근에 1,02원씩 하는 근들이 소주 두근을 샀다.
그런데 줄창 옥수수떡에 풀 채소만 먹어 창자에 곱덩이라고는 쌀알만큼도 붙어있지 않는 청년들이라 소주는 아직 한근도 채 마시지 못했는데 반쪽씩 차려진 돼지족발은 게눈감추듯 벌써 다들 먹어버리고 사람마다 상 앞에는 뼈다귀만 한무더기씩 놓여있었다. 그런데 상인의 호주머니에 남은 돈이란 이젠 1전짜리 각전 여섯잎 밖에 없어 다른 안주는 바라볼 엄두조차 못낼 형편이였다. 그래서 얼굴이 벌개서 슬금슬금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만 살펴보던 상인이는 어망결에 자기가 먹고 앞에 놓은 돼지족발 뼈다귀에 손이 갔다. 상인이가 그렇게 뼈다귀를 주어들자 친구들도 덩달아 자기 앞에 있는 뼈다귀를 다시 주어들고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정말 돼지족발은 먹을것이 많다. 응?!”
상인이가 그때 만들어낸 명언이였다.
그때부터 리상인에게는 이름대신 ‘돼지족발’이란 별명이 붙게 되였고 후에는 ‘돼지’라는 앞의 두자는 아예 삭제해버리고 다들 그저 ‘족발’이라고 불렀다.
안송옥이와 리상인이는 연수현 가신진의 한고향 사람이였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자 둘은 고향인 연수현으로 돌아가 함께 현조선족중학교에 배치 받았었다. 2년 후 상인이는 현방직공장에 출근하는 한 처녀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였고 슬하에 귀여운 딸 하나를 두기도 했다. 그러던 상인이는 남들처럼 돈을 벌어볼 욕심에 안해를 한국으로 보내려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형님과 처가편의 처남들한테서 돈을 꿨다. 한데 재수가 없을라니 그만 사기군한테 사기를 당해 상인의 안해는 남들이 다 가는 한국은 구경도 못해보고 7만원이란 뭉치돈만 허망 날려보내고 말았다. 한국으로 나간다고 안해는 이미 방직공장에서 사직을 하고 난 뒤여서 상인이 혼자 버는 월급으로는 그 많은 빚을 갚기는커녕 가정생활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상인이는 생각하던 끝에 쓰고 살던 3칸짜리 벽돌집을 팔고 그 돈에다 4푼짜리 고리식 태돈을 꿔서 재차 안해를 한국으로 보내기로 작심했다. 아무리 머리를 짜며 궁리해봐도 이 길 내놓고는 다른 구멍수란 도저히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그리했던 상인이의 애끓는 노력을 하느님도 알아주었던지 마침내 그번에는 안해의 한국꿈이 이루어졌다. 상인이는 날것만 같이 기뻤다. 이제 안해가 한국가서 몇해 일하고 돌아오면 빚도 말끔히 청산할수 있고 가정살림도 얼마든지 남의 흉내를 내며 살아갈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은 상인의 생각처럼 풀리지 않고 엉뚱하게 꼬여갔다. 이제는 한국 나간지 5년이나 되는 상인의 안해한테서는 가던 첫해에 두번에 꺾어 미국 돈 3천딸라를 보내오고는 여직껏 돈이라고는 1전 한푼도 보내주지 않고 있었다. 듣는 소문에 의하면 상인의 안해는 한국에 군서방이 있어 서울의 청량리라는지 하는 어느 깊숙한 골목에 세방을 잡고 동거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멀쩡하던 상인이는 결국 타락이란 내리막길로 곤두박질 치게 되였던것이다. 쓰고 살던 집마저 잃고 남의 집 세방살이를 하는 상인이는 몇년째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아 연수중학교 부교장자리에서 떨어진지도 3년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 상인이는 지금은 날마다 술과 마작판에서 세월을 보낸다는것이다...
“내가 여기로 떠나오기 전날 상인이네 집에 갔을 때도 상인인 글쎄 마작군들을 한구들 불러다 놓고 담배연기가 새뽀얀 방안에서 마작을 놀고 있었어요. 페가 나쁘다는 상인이는 링게르주사까지 맞아가면서 마작을 놀고 있었는데 이 손등에다 주사침을 꽂으면 두손으로 마작쪽을 주무르지 못한다고 아니 글쎄 링게르주사침을 발등에다 꽂고 마작을 노는거래요.”
한심한 그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온 안송옥이는 너무도 어이없어 도리머리만 달달 떤다.
“상인이 그 자식, 인젠 완전히 타락이구나.”
“우리가 ‘돼지족발’이라고 너무 천하고 불미스런 별명을 지어주어 상인이 팔자 그렇게 사나운거 아니야?”
“글쎄 말이다. 정말 그 자식 일이 안됐다.”
“그럼 상인의 딸애는 지금 얼마나 컸어?”
“걔가 올해 스물한살에 나던가?! 이름은 청미라고 하는데 얼굴이 납작하고 참, 귀엽게 생겼어요, 어릴적엔 춤도 잘 췄고 공부도 아주 잘했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곁에 없고 아버지까지 저렇게 되자 고중에 올라가선 공부는 안하고 몇몇 남학생들과 붙어 다니며 전탕 련애질만 했나봐요. 그래서 결국엔 고중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청도인지 어딘지 나갔는데 듣자니 지금 어느 술집에서 아가씨로 있대요.”
“술집에서 아가씨라면, 몸파는 기생 아니야?”
“아마 그리 된것 같해요.”
“저런, 저런, 딸애까지도 다 벼렸네. 쯧, 쯔...”
송옥이의 이야기에 모두들 착하고 인정 많던 동창생, 리상인의 일이 너무 안타까와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악연
“야, 인제 보니 우리반 남성들중에서 우리 둘 하고 저 대머리가 제일 담배 지골인것 같구나.”
“난 내 혼자만 애연가인줄 알았더니 담배동무도 몇이 나졌네.”
“자넨 하루에 담배를 몇대 태우나?”
“몇대라는게 뭐야, 하루에 두곽을 피워.”
“난 요즘엔 두곽도 더 피우는것 같애.”
나란히 앉은 ‘한근짜리’ 김성만이와 ‘맥주병밑굽’ 리두성이다.
저녁 무렵, 동창모임 첫 연회를 벌려서부터 7~8명 남성들이 입으로 연기를 뿜어대고 그 중에서도 대머리, 성만이 그리고 맥주병밑굽까지 셋이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바람에 자그마한 귀빈식당안엔 담배연기가 새뽀얗게 들어 찼다. 하긴 방안 시설이 좋아 천장 한 모퉁이에선 통풍기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줄창 뿜어내는 구멍은 여러개지만 빨아들이는 구멍은 하나뿐이여서 그놈의 통풍기도 아무리 땀흘리며 팽이처럼 돌아쳐도 감당해기가 여간 힘든 모양이다. 그래서 담배연기가 질색인 몇몇 녀성들은 제발 담배만은 조금씩 적게 피우라고 사정사정한다. 그 중에서도 구금자는 백일호가 담배라고는 전혀 입에 대지 않다 보니 집에서나 도서관에서나 담배연기를 전혀 맞지 않으며 살아왔고 최윤희 또한 담배연기를 맡으면 아예 취해서 머리가 흐려지는 체질이라고 한다. 그런 최윤희가 교장으로 있으니 최윤희네 학교에서는 무릇 실내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금연학교’로 만든지도 벌써 여러해 된다고 한다. 그러자 백일호까지도 눈이 아리고 목이 캐해서 술상에 앉아있기가 과연 힘들다면서 담배를 정 피우고 싶은 남성들은 밖에 나가 한대씩 피우고 들어오는게 좋겠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성만이와 맥주병밑굽은 담배피우러 호텔밖으로 나왔다.
밖은 어느 사이 어둠이 깃을 내린지 오래된 고요한 밤이다. 머지 않은 숲속에서 풀벌레 우는소리가 여름밤의 고요를 한층 짙게 하고 있었다.
“성만이 자넨 어쩌다가 심양까지 굴러갔어? 학교를 졸업해선 방정현에 배치 받았다가 얼마 안돼 연변방송국으로 전근했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대충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됐어. 하기야 심양에서 산지도 이젠 이십년이 넘지.”
“어, 맞다. 이제 생각나는데 자넨 심양에서 어떤 고위간부의 사위로 되여 잘산다는 소릴 누구한테선가 들은적 있은것 같네.”
“그래 맞어, 이 코 큰 김성만이가 살기야 누구보다도 잘살았지...”
성만이는 대학다닐 때 마음이 후덥고 남의 사정 잘 리해해주어 곁에 친구들이 많았던 동창생이였다. 당시 성만의 부친은 방정현조선족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어 가정살림 형편도 반급 동창들중에서는 괜찮은 축이였다. 그래서 한 학기에도 두세번씩 남학생들은 대여섯명씩 무리 지어 장거리버스를 타고 성만이 따라 방정으로 놀러가군 했는데 갈때마다 친구들의 왕복려비까지 다 책임지는건 더 말할것도 없고 자기네 집에 들어설때면 언제나 술병이며 사탕과자봉지를 친구들의 손에 쥐여주군 했었다. 그리고는 모르는척 식구들 앞에서 “이 친구들은 돈도 없으면서 올때마다 이런걸 들고 와요.” 이랬던 성만이다.
“그래 방정에 배치 받았다가 어떻게 연길로 갔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심양의 처녀하고는 또 어떻게 장가를 든거냐?”
“허, 속담에 뒤에 오는 범은 막을수 있어도 앞에 오는 팔자는 막을수 없다는 말 있잖은가? 어쩌다 보니 대충대충 그렇구 그렇게 된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