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객들이 국내 출구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기를 손에든 강현수는 키가 작아 누군가를 마중하려고 출구밖에 몇겹으로 서있는 사람들 속에서 발레무를 추듯이 두 발끝만 땅에 대고 발뒤축은 동동 쳐들고 있다. 하면서도 이제 동창생 주영주가 출구쪽으로 얼굴이 보이면 제꺽 사진기 샤타를 누르려고 만단의 준비를 하고 있다.
바퀴 달린 려행용 가방을 한 손으로 끌고 나오는 사람, 멀리서부터 마중 온 친인척을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젓는 사람, 줄지어 통일로 노란 태양모를 쓰고 나오는 관광단...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온다. 그런데 웬일인지 백여명도 넘는 길손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다 살펴보고 제일 마지막 사람으로 젖먹이 어린애를 안고 나오는 젊은 녀인까지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고 있지만 유독 동창생 주영주의 얼굴만은 보이지 않았다.
강현수는 급급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금자요? 주영주가 전화로 알려주던 이번 비행기엔 오지 않는구만...”
“그럼 청도에서 오는 다음 비행기는 몇시에 또 있어요.”
“한시간 후에 있구만, 혹시 그걸 타고 오는지 이 공항에서 계속 기다려야겠네.”
“그러세요.”
강현수가 이렇게 구금자와 통화를 하고 있을때였다. 별안간 누군가 뒤에서 강현수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알라뷰!”하고 영어로 말한다.
바로 다름아닌 주영주였다.
새노란 태양모에 깜찍한 핸드빽을 달랑 손에 들고 금빛으로 물들인 굽실굽실한 파마머리우에 색안경을 꽂은 주영주는 첫눈에 벌써 광채치는 멋쟁이였다. 그런데 구금자의 뒤엔 어떤 점잖은 남성도 한 사람 서있었다.
“제가 두분 소개 드리지요. 이쪽은 저의 대학 동창생이래요. 신문사에서 기자로 있어요. 그리고 이쪽은 한국분인데 청도에서 큰 의류회사를 경영하는 리사장이셔, 전에부터 잘 아는 분인데 오늘 면바로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게 됐어.”
주영주의 소개로 강현수는 성이 이씨라는 한국기업인과 명함장을 교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그 리사장이란 사람은 밖에서 마중온 사람들이 기다린다며 함께 챙기고 있던 주영주의 려행용가방을 돌려주고는 먼저 떠나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너 혹시 다른 출구로 나왔어?”
“호호 아니야, 바로 이 출구로 나왔어. 난 나오면서 너를 봤는데...”
“뭐라구? 첫 사람부터 눈이 째지게 살펴봐도 네 얼굴은 보이지 않던데? 거참, 귀신이 곡할 일이네.”
“호호호... 방금 한무리 관광단이 줄을 서서 이 출구로 나왔지?”
“그래 몽땅 노란색 태양모를 머리에 쓰고...”
“그 사람들이 나올 때 숱한 사람들이 조명등을 들고 촬영기를 메고 따라다니지 않더니?”
“글쎄 정신없이 네 얼굴만 찾느라고 그런건 상세하게 눈돌리지 않았거든.”
“호호 이번 동창모임이 진짜 재미나겠다. 내 글쎄 동창모임에 오다가 난생처음 드라마배우로 돼봤어. 방금 관광단이 여기 출구로 나오는건 할빈과 청도 텔레비젼방송국에서 련합으로 ‘아버지는 할빈에, 아들은 청도에’란 20집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그중의 한 장면이래. 내가 비행기에 앉아 오는데 감독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객석을 올리훑고 내리 훑으며 한사람 한사람 살펴보더니 날보고 1분간 드라마배우가 되여 달라는거야. 호호, 그래서 관광단 중에서 앞으로부터 여섯 번째로 색안경을 끼고 나오던 사람이 바로 나였어.”
“그래?!”
생각과는 너무나 왕청으로 그렇게 변복을 하고 관광단성원이 되여 출구로 나왔다는 주영주를 강현수가 알아볼리 만무했다.
“응! 네가 가져, 이 모자가 드라마를 찍은 팁이래.”
주영주는 손에 들고 있던 노란색 태양모를 강현수의 머리우에 씌워놓는다.
“그럼 동창들은 다 왔어?”
“지금 한창 네처럼 오고들 있는 중이야. 송옥이랑 김순애랑은 제일 먼저 장거리뻐스로 도착했고...”
“야, 좋아라, 걔들이 이미 왔구나. 빨리 가서 보고 싶네. 그런데 순애 걔는 생활이 몹시 구차하다고 하더구나.”
“아니, 청도에 있는 네가 그런걸 다 어찌 아나?...”
“순애가 가르쳤다는 학생이 지금 내가 경영하는 음식점에서 일하거든...그 다음 또 누구랑 왔어?”
“영주 널 만나면 냉큼 키스해줄 사람...”
“대머리 리수길이? 어머- 누가 누구를 키스해준다고 그래?”
“그럼 대머리는 도로 쫓아 보낼가?”
“아니, 그 자식은 리혼한 전 남편이지만 그래도 은근히 보고 싶다...그런데 이번 동창모임에 우리 선생님들은 모시지 않았니?”
“김만융교수 한분만 모셨어, 이미 최윤희하고 함께 도착했구. 하긴 여기 할빈에 있는 손오식선생도 구금자가 련락은 했다는데 집에 무슨 일이 있어 참가할것 같지 않다고 하더구나.”
“오, 손오식선생이라면 우릴 문법을 가르쳤던 그 좁쌀선생 말하지? 아이고- 제발 그 선생만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다음엔 또 누구를 묻고 싶은데?...”
“됐어, 됐어. 빨리 가서 누구나 다 만나보고 싶어.”
강현수는 주영주의 바퀴 달린 려행가방을 한 손으로 끌며 주영주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앉았다.
승용차는 만남의 기쁨으로 설레이는 또 한패의 동창들을 싣고 태양도를 향해 질주했다...
별무리호텔
웃음이 헤픈 계집애들이 말똥떼 굴러다니는걸 보고도 눈물을 쥐여 짜며 깔깔 거린다더니만 할빈 태양도 북단에 자리잡은 여기 북방사범대학의 휴양소인 별무리 호텔에는 만나자부터 입이 귀에가 걸릴지경으로 그저 좋다고 웃을 줄밖에 모르는 한 무리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치마고 바지고 꼭 같은 초록색으로 통일복을 입은 호텔복무원들은 이 한무리 사람들이 점심무렵부터 해가 서산으로 기울때까지 처음엔 서너 사람이 나타나 웃어대기 시작하더니 다섯사람, 열사람, 그 사람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미치광이들처럼 호텔이 떠나갈듯 요란스레 웃어대는걸 보고 저희들도 희한해서 끼리끼리 입을 싸쥐고 실룩거린다. 아마도 이렇게 웃음 헤픈 손님들은 별무리호텔이 서서는 처음 보는 모양이다.
왕주임은 그러는 복무원들에게 차거운 눈총을 쏜다. 우리 북방사범대학 백일호부총장이 모셔온 귀한 손님들이니 너희들이 함부로 홀대하거나 실수해서는 큰일난다는 엄한 귀띔이다.
이제 서른 하고 두세 살쯤 되여 보이는 나이 젊은 왕주임은 이 별무리호텔의 책임자가 아니라 백일호가 관리하는 북방사범대학 교육심리학원의 반공실 주임이다. 오늘부터 이틀간 이 특별한 손님들을 주숙으로부터 화식, 오락장소, 거기다 마중하고 바래주는 차량안배까지 후근 일을 전부 책임져라고 백일호가 미리 임무를 주었던것이다.
사면이 느티나무, 들메나무, 보리수나무 그리고 소나무와 백양나무들로 검푸른 숲을 이룬 그 한가운데 자리잡은 별무리호텔은 유럽풍격의 4층 건물로 되여있었는데 면적은 별로 크지 않지만 할빈 도심에 있는 샹그릴라, 복순천천, 화기호텔 같은 5성급 호텔들은 왔다가 울고 갈지경으로 화려하고 아담졌다. 호텔앞의 공원같은 정원 한 가운데는 물줄기가 십여미터 높이로 올리 뿜는 둥근 분수못이 있고 못의 수면에는 련꽃과 풍안란이 보기 좋게 떠있었으며 그 주위에는 관상용 나무들인 노각나무, 철쭉나무, 까치밥나무들에 국화, 백일홍, 봉선화 등 갖가지 꽃들이 아름답게 화단을 이루고 있었다. 별무리호텔 북쪽에는 수영장에 천막을 친 야외 화식장이 있는가 하면 호텔안엔 도서열람실, 미용실, 안마방, 노래방...거의 없는것 없이 구전히 갖춰져있는 대형 별장이였다.
왕주임은 며칠전에 벌써 호텔 3층에 있는 방 16개를 (2인방 10개, 독방 6개)몽땅 맡아놓았고 오늘부터 2일간은 수영장, 야식장, 안마방과 노래방에다 큰 상을 두개를 놓을수 있는 귀빈식당 한 칸은 다른 손님들이 얼씬 못하게 미리 챙겨놓았다. 그래서 점심부터 손님들이 들이닥치자 3층을 오르내리며 방을 안배해주고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한편 려로의 피곤들을 풀라고 안마방을 대기시키고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라고 수영복들도 준비해 놓았지만 먼저 온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몇술 뜨는둥 마는둥 하고 오후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방에다 들고 온 려행 짐들을 훌훌 메쳐놓고는 약속이나 한듯 1층에 있는 너른 휴게실에 모여 앉아 줄창 요란스레 웃고 떠들기만 하는 판이다.
오후 4시가 되자 백일호와 구금자 그리고 강현수는 비행기, 기차, 장거리버스 편으로 오는 동창들은 몽땅 마중해 왔다. 그러는 사이 손에 들고있는 휴대폰이 쉴새없이 울려 그 시끄러운 휴대폰은 그냥 귀에다 대고 있어야 하는 백일호는 손님마중에다 단위일들까지 한데 겹쳐 팽이처럼 바삐 돌고 있었다. 방금전에도 교육심리학원 부원장이란 사람이 백일호를 찾아 여기 호텔까지 쫓아왔었다. 전국범위에서 모집하는 20명 심리의사 초빙은 오늘로 결정을 지어야 한다며 심리의사 이름들이 수두룩 적혀있는 서류를 내놓았던것이다.
“와- 범이 제 흉을 하면 온다더니 우리 반장이 면바로 오네.”
“글쎄, 뒤에서들 내 흉을 봤길래 이 귀가 그냥 가렵지.”
백일호가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휴게실로 들어서니 한창 웃고 떠들던 동창들이 일제히 백일호에게 눈길이 쏠린다.
“이 금자가 우리 보다 어디가 더 잘났기에 반장은 금자를 택했냐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던중이예요.”
이젠 모두 슬하의 자식들도 자기의 키를 훌훌 초월하는 중년 녀성들이라 비유와 익살은 여간 내기들이 아니다.
“체격으로 보면 해발이 높은 반장은 응당 최윤희를 선택해야 안성맞춤 했고 희고 부드럽고 젖이 좔좔 나오는 이 펑퍼짐한 젖가슴이나 활달한 성격을 보아서는 내 이 안송옥이를 안해로 맞았어야 딱 맞고 똑 떨어지는게 아니였는가요?”
예나 지금이나 웃음소리가 크고 성격이 남성들처럼 덜렁덜렁한 안송옥이가 백일호에게 정색하고 대든다.
“글쎄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네.”
백일호는 씨물씨물 웃기만 하는데 안송옥이 뒤에도 주영주, 고미란이 김순애 하며 녀성들 모두가 원통하고 분해서 못살겠다며 백일호와 구금자를 한바탕 골려준다.
이럴때 구금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 한복판에 멀쩡히 서있는 백일호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발뒤꿈치를 동동 쳐들고 아직도 백일호의 목을 조이고 있는 넥타이를 풀어주고 흰적삼 웃단추를 벗겨준다.
“야!- 저렇게 요사스러우니까 구금자한테 홀딱 반한거겠구나.”
길고 짜른 쏘파들에 줄느런히 앉아 녀성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흐뭇이 듣고만 있던 남성들이 이번엔 고함을 지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도 한치의 오차 없이 면바로 자기가 앉을 자리를 찾아 내린다는 말이 있네.”
점잖게 앉아 제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만 있던 김만융교수가 한마디 한다.
“연분이란 따로 있다는 말일세. 저 백일호와 구금자는 어찌 봐도 천생배필이 틀림없네.”
그런데 김교수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약속이나 한듯 방금 떠들던 녀성들이 일제히 반대해 나섰다. 하긴 대학시절 삼십여명 한반 동창들중에서 백일호와 구금자가 짝을 무을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다. 키가 크고 체격이 우람진 백일호를 코끼리에 비유한다면 머리가 겨우 백일호의 겨드랑이 밑에 오는 구금자는 코끼리의 기둥 같은 네 다리 사이를 깡충깡충 뛰여 다니는 토끼 같았고 백일호는 키가 걸대처럼 클뿐만 아니라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광을 친다면 구금자는 보기 좋은 포실한 몸매에 자태가 예쁘고 복스럽게 생겼을뿐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 고운데는 별로 없었던것이다.
“야, 반장! 우리도 금자 못지 않게 얼마든지 반장을 씹어주고 빨아주고 할수 있어!”
“그건 자네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네.”
김만융교수는 녀성제자들이 그럴수록 백일호네 부부를 두둔해 주고 싶어한다.
“자네들의 몸에는 없어도 유독 저 구금자 몸에만은 신통한것이 하나 있네.”
“그런 말씀 어디 있어요? 우리 다 꼭 같은 녀성인데 금자만 뭐가 다를게 있나요?”
“아무렴, 있구말구.”
“그럼, 그게 뭔가요?”
“그것이 뭐인가구? 바로 백일호 모친의 몸에서 나는 냄새네. 인간은 모두 모친의 몸에서 잉태되고 모친의 몸에서 나와 모유를 먹으며 자라나네. 그러기에 누구라 없이 자기 모친의 몸에서 나는 냄새에 특별히 민감하고 또 그 냄새를 좋아하거든. 자네들이 얼핏 보기엔 인물체격이 구금자쪽이 조금 짝지는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 저 백일호가 왜서 자네들, 그리고 자네들밖에도 주위에 숱한 녀성들이 있었을텐데 그 중에서 유독 구금자를 선택했겠는가? 그 비밀이 바로 구금자의 몸엔 백일호의 모친과 근사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는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