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원명이 당년 인원, 군수품운송으로 자주 도강하던 파주강 |
1907년 5월, 리원명은 조선의병에 참가하여 청천강에서 군수품을 운송하면서 때론 평양에 내려가 무기와 약품을 구해오기도 하였다. 어느날 우연히 조선독립운동지도자 리동휘의 연설을 들은 뒤 항일구국의 도리를 깨우치고 조선독립운동조직 신민회에 가담하였고 안중근의사가 이도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실을 알리는 삐라를 살포하는 등 반일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
당년 리원명이 항일하던 활동중심 태평초 |
1910년 8월 28일, '합병조약'후 의병운동이 좌절되여 일부 애국지사와 진보적인사들이 중국 동북지역에로 들어와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였다. 그때 리원명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동북지역으로 호송했는데 어부로 가장하고 압록강, 훈강에서 1910년 4월, 리동휘를 동북지역으로 호송했고 1911년 저명한 의병지도자 리진룡을 관전경내까지 호송하였다.
이 과정에서 리원명의 전처, 누나와 두 녀동생도 모두 일제와의 작전이나 일본군경의 추격을 피하는 과정에 피살되거나 실종되였다.